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Choi 메덴코 Dec 23. 2021

서른 살,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

나의 서른의 끝자락, 친구들은 어느덧 부모가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타이틀로 서른한 살을 맞이할 것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가족들과 떨어져 산지 10년 내겐 평범한 일. 사회에서는 '어른'인 척을 행세하며 살고 있는 '어른이'는 오늘 오랜만에 별 것도 아닌 이유로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고 보니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것 같다. 어쨌든 울면서 "나도 엄마 아빠 보고 싶어."라며 남편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남편은 향수병이 찾아왔나 싶어 얼른 한국에 다녀오자고 했지만 사실 향수병이 아니다.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유럽의 연례 가장 큰 행사이자 연휴인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남편의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덴마크에서 라트비아로 오게 되었다. 한국인인 내게는 낯선 문화이고, 신기하고 약간은 수고스럽다고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오랜만에 라트비아에 와서 너무나도 행복해하시는 남편의 부모님을 보며 연휴가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시부모님이 우리가 와서 활짝 웃으시는 모습, 자꾸 먹을 걸 챙겨주시는 모습, 남편을 아기처럼 바라보며 자꾸만 대화를 하고 싶어 하시는 모습 등. 그게 너무 사랑스러웠고 마음이 찡해졌다. 어찌나 아들을 꿀 떨어지듯 바라보시는지.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 신경 안 쓰는 척 흘린 말에 다 챙겨주시는 모습 그런 것들이 이번엔 유난히 더 잘 보였다.

날이 추워서 더 그런가, 유난히 멜랑꼴리 하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한국에 갈 때마다 또는 부모님 집에만 가면 더 유난하셨다. 정말 갓난아이 다루듯이 나를 대하셔서 친구들도 남편도 놀랐었다. 그리고 그게 너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 엄마 아빠의 과한 애정표현이 나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요 며칠 라트비아에서 남편의 부모님의 눈빛, 행동 표현들을 보며 우리 엄마 아빠가 오버랩이 되면서 마음이 아려왔달까. 부모와 자식 간의 그 설명할 수 없는 사랑과 애착이 유난히 더 다가왔달까. 국적, 인종, 나이 불문 부모는 다들 저렇게 내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는 것이 경의로웠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과 표현들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도 놀 스스로 놀라웠다. 나도 집에 가면 우리 엄마 아빠가 저렇게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도록 나를 바라볼 거고, 먹고 싶은 거 다 사 주실 거고 해 주실 텐데. 내가 필요한 것도 말 안 해도 알아주시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보물일 텐데! 이런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약간의 질투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그렇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을 테고.


그런 나이가 되었다.

아직 젊다면 젊고 살아갈 날들이 훨씬 많지만, 어느 정도는 부모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그런 나이. 늘 차갑고 무뚝뚝해 보였던 남편의 부모님의 사소한 행동과 눈빛에서 보이지 않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읽을 줄 아는 그런 나이. 부모라는 존재와 그들이 주는 사랑은 절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도. 그래서 나도 나의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쏟아졌다. 부모가 주는 사랑이 너무 경의롭다는 것을 비록 서른 끝자락에 느끼다니. 아직 늦은 게 아니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한국에 가면 엄마 아빠 품에서 오래오래 따뜻하게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렇게 서른이 끝나가며 나는 또 한층 성숙해졌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른한 살의 끝자락에서는 또 무엇을 배우고 알게 될까.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가 아닌 누군가의 보물이자 똥강아지로 돌아갈 시간이 온 것 같다.

오랜만에, 정말 많이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 그런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포대교에서 모르는 사람을 안아주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