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쭉 오지라퍼로 살기로 했다.
덴마크에 이민을 오면서 겨울마다 계절성 우울증을 겪었다. 생각보다 너무 아팠고, 외로웠고 죽을 것 같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그리운 건 한국의 '정' 그리고 '오지랖'이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과하다고 생각했던 관심들이 필요했다. 개인주의가 편하다고 했지만 태어나 인생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보낸 한국이 때때로 많이 그리웠다. 처음으로 다녀본 덴마크 회사에서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했고, 그 계기로 잠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한국에 오자마자 나는 불편한 것들이 참 많았다. 그토록 그립던 관심이 귀찮게만 느껴졌다. 왜들 그렇게 남에게 관심이 많은지, 개인에 대한 존중이 없는지 오자마자 나의 부모님부터가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국에 오자마자 다시 덴마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참 이중적인 생각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와 함께 '세치혀'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다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의 '죽음과 자살'의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야기 끝에 장동선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없다. 자살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오지라퍼가 돼서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손을 내밀어 주는 게 중요하다.
이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나도 조금 더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손을 내밀어야겠다고 생각을 문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틀 후, 여의도 한강공원에 운동을 가게 되었고, 자살의 다리로 알려진 마포대교를 걷고 있었다. 'SOS 생명의 전화'를 보면서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대학생 시절 주변에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내 눈앞에서 목격된 적은 없다. 다들 얼마나 힘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걸까 또는 하려고 하는 걸까.. 마음이 아파왔다.
그런데 1-2분 후, 내 눈앞에 어떤 사람이 마포대교 한가운데 꾸부리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멈칫했다. 혹시 잠깐 다리가 아파서 앉아 계시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힐끗 보고 지나가거나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가 어떻게 되었던 그래도 말이라도 걸어봐야 할 것 같아서 이어폰을 빼고 그분께 다가갔다.
"저기 혹시.. 괜찮으세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그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나와 나이대가 비슷하거나 더 어린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눈은 새 빨게 졌고, 얼굴에 온통 눈물이 범벅된 상태였던 그분은 내게 괜찮다고 말했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놀란 나도 갑자기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홀로 저렇게 앉아 있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걸 테다. 그게 어떤 일이던 속상한 일이 있으셨던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말하고 싶지 않으시면 안 해도 돼요. 그냥 제가 옆에만 앉아 있을게요."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냥 정말 혼자 있고 싶을 수도 있을 텐데, 괜히 내가 옆에서 더 심난하게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냥 토닥토닥해 주며 울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10분이 흘렀을까. 내게 추우실 텐데 얼른 가시라며 괜찮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길래 나도 따라 같이 울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어차피 저는 겁쟁이라 자살도 못할 사람이라고, 자살할 용기가 안 나서 이러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그냥 가던 길 가시라는 말씀에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시각은 밤 10시였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아서 끝까지 곁에 있기로 마음을 먹었다.
"밥은 먹었어요? 같이 차 한잔할래요? 아니면 술 사줄까요? 여기 너무 추운데 우리 같이 따뜻한 데로 가요. 네?"
내가 묻자 그분이 내게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저는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사람이에요. 말동무가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다 들어드릴게요."
5분의 정적 후, 그분은 내게 마음을 열고 말을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들어줄 수 있는 것뿐.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또다시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았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다시 마주치지 않을 사람이라지만, 누군가가 힘들어서 마포대교 다리 위에 홀로 앉아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그러다 지나가는 또 다른 행인이 오셔서 그분을 안아주셨다.
그분은 한참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하셨다. 몸이 너무 차서 정말 너무 걱정이 되었지만, 그분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어 함께 마포대교 한가운데 앉아 셋이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설득해서 그분을 집 앞까지 모셔다 드렸다. 그분이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고서 그제야 다리가 풀렸다.
처음에는 정말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몰래 카메라이길 바랐다. 어쩌다 보니 그분의 성함을 알게 되고 직업도 알게 되었는데, 약속대로 나는 잊었다.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고, 그리고 그분의 이야기도 글로 쓰지 않을 거다. 그분의 아픈 이야기를 내 글감으로 쓰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좋은 일을 했다고, 착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더 나은 세상, 아직 살만한 세상은 나처럼 평범한 아무개라도 할 수 있으니 조금만 더 용기를 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장동선 박사의 말처럼, 우리 조금만 더 오지라퍼가 돼도 될 것 같아서다. 정말 손 한 번만 용기 내서 내밀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세상 사는 게 정말 버거울 때가 많지만 누군가의 아주 작은 용기로 또 힘을 얻고 희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나도 겪어봤고, 실천했다.
이 계기로 나는 한국에서든, 덴마크에서든 혹은 전 세계 어디를 가던 나는 앞으로도 더 오지라퍼가 되기로 했다. 아무리 개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도, 나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할 거고 위로를 할 것이며 따뜻한 포옹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이 세상에 생명보다 소중한 건 없다.
우리 서로에게 조금만 더 따뜻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