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북유럽 커리어 라이프는 지금부터.
2020년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이주를 하고 가장 두려웠던 것은 다름이 아닌 나의 '커리어'였다. 사랑을 위해 한국을 떠나 오면서 과연 내가 이곳에서도 잘할 수 있을까, 내게 다시, 이 새로운 땅에서 기회가 올까라는 두려움과 걱정이 참으로 컸다. 이제 더 이상 일과 포지션은 나를 대변하지 않지만, 한때는 일은 나의 정체성 그 자체였기 때문에 타이틀이 없어진다는 것이 참으로 두려웠던 시기였다. 그래서 덴마크에 이주하자마자 인터뷰를 보기 시작했었다. 비자가 아직 채 나오지도 않았는데 내 경력이 단절될까 봐 두려워서 급한 마음에 이곳저곳에 인터뷰를 보았고, 받는 제안은 모두 승낙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핏이 맞는 곳을 찾을 수 없었고 고민 끝에 또 다른 지구 반대편의 나라와 원격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호주.
호주에 본사를 둔 싱가포르 지사와 함께 지난 1년 간, 덴마크에서 리모트 근무를 했었다. 비록 1년이지만 2-3달마다 싱가포르에 출장을 가는 조건이었고, 갈 때마다 최소 2주에서 한 달을 지내다 왔기에 대략 3-4개월은 거의 싱가포르에 살았던 것 같다. 여러모로 근무 조건이 참 괜찮았다. 100% 원격으로 근무하기에 알프스에 스키를 타러 가서, 독일과 라트비아에서 등 어디서든 근무가 가능했고, 싱가포르로 출장도 가는 삶은 완벽한 디지털 노매드 생활이었다.
사실 회사에서 싱가포르 이주의 오퍼를 받았었고, 몇 달간 남편과 함께 고민을 하기도 했다. 싱가포르에서의 삶과, 커리어도 참으로 멋질 것 같았지만 나는, 나의 행복은 덴마크에 있다는 것이 명확해지면서 이곳에 남기로 했다. 그리고 결심을 하나 하게 된다.
'2022년 12월 전까지 덴마크에 본사를 둔 덴마크 회사에 이직하기'
이 결심을 하고 난 후, 바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다시 링크드인을 열어서 오픈된 포지션을 살펴보고, 종종 들어오는 리크루터의 인터뷰 요청에 모두 답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인터뷰를 정말 많이 봤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게 순탄하지 않았고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도 않았다.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는 나를 원하지 않기도 했고, 나를 원하는 회사는 내가 관심이 없기도 했다.
온전히 그냥 '덴마크에서 회사 다니기'가 목표가 되어버리자, 나도 모르게 그냥 아무 곳에나 지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고, 안 되는 이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전략을 세웠고, 목표를 조금 더 세분화 하기 시작했다.
큰 목표가 '12월 전까지 덴마크 회사에 이직하기'라면, 그 아래 세부사항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왜?"라는 질문이었다. Why가 분명해야 했다.
그래서 명상을 하며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얘, 써니야. 너는 왜 덴마크에 본사를 둔 덴마크 회사와 일하고 싶니?" 스스로에게 몇 차례 물은 결과, 여러 이유들이 나왔다.
1) 덴마크에 살고 있으니까, 덴마크에서 일하고 싶어.
2) 여전히 오프라인 생활이 좋아. 사람들과 '함께' 만나서 근무하고 싶어.
3) 말로만 듣던 덴마크 회사 생활이 사실 너무 궁금해. 아시아와는 근무 문화가 다르다는데, 나도 그걸 겪어보고 싶어. 남편에게, 친구들에게 듣던 것 말고 내가 직접 겪고 싶어.
"그럼 써니야, 너는 무슨 업무를 앞으로 하고 싶어? 그리고 어떤 회사 혹은 서비스에 가고 싶어?"
1) 나는 퍼포먼스/그로스 마케팅을 해왔지만, 더 이상 하고 싶은 직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나는 더 넓은 마케팅 포지션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걱정도 돼, 이제 6년 차가 되는데 이제 와서 커리어 전환이 가능할까? 안된다고 하더라도 도전 해볼래!
2) 여태 스타트업에서 근무해봤으니, 더 큰 기업도 궁금하기도 해. 그래서 조금 더 규모가 큰 곳에 가고 싶어
3) 처음엔 테크, 두 번째는 리테일(소비재)에 있었으니 색다른 분야를 경험하고 싶어.
4) 여태 B2C, D2C만 경험했으니, B2B도 겪어보고 싶기도 해.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 시간들을 거쳤고, 스스로 정리를 하고 나니 내가 가고 싶은 회사와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첫 직장을 선택했던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처음 마케터가 되었던 시절:
https://brunch.co.kr/@cmk5604/1
나는 내가 원하는 회사를 구분하기 시작했고, 꼭 반드시 그들이 나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나의 강점들과 경험들을 나열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가 된 상태로 원하는 회사에 지원을 했고, 두 달간 총 4차의 인터뷰를 거쳐 'Global Marketing Manager' 포지션 합격 통보를 받았다.
1) 덴마크에 본사를 둔 덴마크 회사
2) 7,000명이 넘는 규모의 회사
3) 퍼포먼스 마케팅이 아닌 더 넓은 포지션
4) 새로운 분야: 메디컬 산업
4가지에 모두 충족하는 회사에 나는 오늘 2022년 10월 10일, 떨리는 첫 출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