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만에 겪은 북유럽 근무 환경과 문화
입사 한 첫날, 동료에게 근무시간이 어떻게 되는 건지 물었다. 근로 계약서에 출퇴근 시간은 적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주 37시간을 근무해야 한다고만 적혀 있었다.
질문을 받은 동료는 내게 아주 쿨하게 이렇게 말했다.
"음, 저는 주로 9시에서 9시 30분 사이에 오는데 8시 30분에 오시는 분들도 있고.. 편할 때 오시면 돼요. 일찍 오면 일찍 퇴근하시면 되고, 늦게 오면 조금 더 근무하다가 가셔도 되고.. 다들 천차만별이에요."
그래서 둘째 날은 조금 일찍 출근을 해보기로 했다. 또 오전 5시 30분에 눈이 떠져서 명상하고, 차 한잔도 마신 후 중간고사 첫째 날이라, 온라인 시험도 끝내고 집에서 7시 50분쯤 나와 8시 20분쯤 회사에 도착했다. 이미 오피스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속으로 다들 몇 시에 온 걸까 궁금했고, 다들 언제 퇴근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잘 살펴보기로 하고, 홀로 자리에 앉아 또다시 끝이 안 보이는 온보딩을 시작했다. 그렇게 홀로 근무를 하는데 [URGENT REQUEST]라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바로 열어 확인을 해보았는데, 한국 바이어가 다음 주에 코펜하겐 본사에 방문하는데, 프로젝트에 참여해줄 수 있냐며 급하게 미팅을 요청한 것이었다.
미팅룸으로 달려가 보니, 인상이 아주 선한 여성분 한분이 너무 나를 반겨주시며, 한국어로 내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나도 똑같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 후, 함께 자리에 앉았는데 그녀가 내게 본인은 한국인/ 스페인 혼혈이라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20대에 처음으로 아빠를 만나러 한국에 갔었던 것이 전부고, 전혀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고 했다. 문화적으로도 본인은 그저 스페인 사람이라고 설명해주셨다. 그러한 이유로 나의 도움이 너무 절실했다고,오늘이 나의 둘째 날인 것을 알지만 이렇게 미팅을 요청했다고.
그녀의 팀은 각 나라의 바이어와 파트너사를 담당하고 있는데, 우연의 일치로 그녀의 마켓 중 한 곳은 한국 시장이었고 처음으로 다음주에 코펜하겐 본사에 VIP들이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딱 그날이 그녀의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는 날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 방학과 회사 프로젝트가 무슨 상관인가 싶었는데, 여기서 문화 충격을 받게 되었다. 덴마크의 부모들은 아이가 방학을 하면 주로 휴가를 낸다고 한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나 시스템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국과 다르게 유럽의 가을, 겨울 방학은 굉장히 짧은데 그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남편의 상사도 마찬가지로, 다음 주에 휴가를 냈다고 한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더욱더 놀라웠던 건, 그녀뿐만 아니라 사내에 아이를 둔 모든 부모들이 동시에 그 주는 휴가라는 것이다. 그 말로만 듣던 가정, 가족 중시 북유럽 문화가 이런 것인가 싶었던 순간이었다.
아무쪼록 그래서 그녀가 패닉 상태였는데, 첫 번째로 한국인 바이어가 오는 기간이 그녀의 휴가라는 점. 두번째로는 예전에 처음 만난 한국인 아버지와의 문화 차이로 문제가 있었는데, 그 이유로 한국인을 대하는데 지레 겁이 난다고 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는 어떤 문화 차이가 있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꽤 큰일이었던 것 같다.
아무쪼록 그리하여 내가 그 프로젝트에 투입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첫 번째 미팅을 마치고 함께 그녀의 팀원들인 덴마크인, 호주인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밥을 먹으며 그녀가 사실 본인이 곧, 한국에 두 번째로 가게 되었는데, 지난번처럼 문화 차이로 힘들까 봐 걱정이 된다며 혹시 본인에게 팁을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진지하게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둘이 점심 약속을 따로 잡고 다음주 바이어 방문의 관한 두 번째 미팅으로 들어갔다.
미팅의 어젠다는 꽤나 심플하고, 재밌고, 솔직히 허무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방문하는 한국인 바이어이자 파트너사를 위해 평일 대낮에 맥주를 준비해도 문화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밥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등을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했다.
나도 아직 이 회사 프로덕트를 잘 모르는데, 어쩌면 통역까지 도맡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잔뜩 긴장을 해서 하루 종일 열심히 온보딩에 매진하며 난생처음 듣는 의학용어들을 배웠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오후 3시쯤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퇴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오늘 아침에 나보다 먼저 왔던 사람들이 퇴근을 하고 있었고,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아무리 일찍 오긴 했지만.. 오후 3시에 퇴근을 한다고? 이게 정말 그 북유럽의 근무문화구나라고 생각하던 차, 앞에 앉은 동료가 내게 물었다.
"써니, 퇴근 안 해요? 오늘 엄청 일찍 왔잖아요."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도 오후 3시 30분에 퇴근을 했다. 내가 해놓고도 믿기지 않는 현실. 남편에게 나 지금 퇴근했다고 문자를 보내니, 남편은 아주 자연스럽게 잘했다며. 아침 일찍 갔으니까 퇴근시간이라고 당연하게 대답했다. 막상 퇴근을 하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코펜하겐 시티를 걸으며 이전 회사 싱가포르 동료들에게 전화를 했다.
다들 받자마자, "써니, 지금 점심시간인데 점심 먹으러 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빵 터져서, "저 지금 퇴근했는데요?"
라고 하자 다들 덴마크로 이직하겠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렇게 시티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고작 오후 6시였다.
남편이 종종 회사에서 1시에 점심을 먹자마자 집에 오기도 하고, 때론 3시에 오기도 하고 가끔은 늦게 7시에 오기도 하는 걸 봤지만 그 회사는 스타트업이라 더 자유롭구나 생각했었고 이렇게 규모가 큰 회사도 출퇴근이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구나를 처음 깨달았다.
이게 그렇게 사람들이 말하던 북유럽식 워라벨인가.
아무튼 나는 오후 3시 30분에 퇴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