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회사에 취업을 했다.
일주일 전,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디컬 분야의 기업에 입사했다. 나는 개발자도 아니고, UX/UI 디자이너가 아닌데 말이다. 그것도 본사의 '유일한 한국인 마케터'로서.
나는 덴마크어를 할 줄도 모르고, 덴마크에서 공부를 해본 적도 없으며, 심지어 석사는커녕 학사 학위도 없는 한국 검정고시 출신 즉 고졸에 대학 중퇴자인데 말이다.
몇 년 전 검정고시 출신, 26살이었던 내가 무경력으로 한국 IT 스타트업 마케터가 된 여정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그 글이 누군가에겐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의 경험과 이직 여정을 솔직하게 남겨보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직 한국만 혹은 아시아만 '학벌주의와 학력주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느 나라를 가던 '학력'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단지 국가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덴마크는 '학력주의 그리고 능력주의 사회'다. (학벌은 특정 학교 및 출신을 뜻한다면, 학력은 말 그대로 학교를 다닌 경력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신뢰를 중시하는 연결주의 사회로 네트워킹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신뢰 문제로 아는 사람을 통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쉬울 정도다. (연고주의가 아니다. 연결주의다)
한국 구인공고 살펴보면 대부분의 회사가 '전문대 혹은 4년제 졸업 이상'이 기본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덴마크도 똑같다. 아니, 심지어 덴마크는 더 고학력인 '석사'가 디폴트인 곳이 정말 많다. 덴마크 내 많은 유럽인둘이 고학력자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먼저 그들(EU국가 시민)에게는 학비가 전액 무료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학교를 다니면 정부에서 매달 보조금(생활비)가 나오며, 취업을 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석박사를 마친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 사이이서 내 자리가 하나쯤은 있응까 생각과 함께 겁도 났다. 내겐 무조건 지는 게임이라고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석사까지 하고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도 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늘 그랬듯 나는 일단은 경력이 있으니 부딪히고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실력을 검증할 수도 있는 좋은 기회라고도 생각했다.그러다 정말 정 안되면 그때 나도 다시 학교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덴마크에 왔을때 오자마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처음 취업에 성공했었을 때처럼 구인공고에 나와있는 '4년제 졸업 이상' 혹은 '석사 이상'을 모조리 무시한 채, 그냥 넣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첫 스텝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 이력서를 더 다듬고, 나의 실력과 지난 모든 경력과 경험들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수정은 했다. 학력과 상관없이 나의 능력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게끔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곳에 연고가 없어서 네트워킹을 이용할 수도 없었고, 링크드인으로는 연결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 학교를 다니면 도움이 된다는 이유를 알았다.)
여기서 포인트는 '나를 잘 파는 것'이다. 취업시장은 한국이나 덴마크나 똑같다. 나를 잘 팔아야, 일단은 나에게 관심을 가게끔 해야 한다는 것. 나를 잘 파는 것에 전략을 세웠고, 이건 세상 어느 나라를 가도 같을 거라 생각했다. 나를 잘 판다는 것은, 나를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명확한 정답은 없겠지만, 나는 나를 잘 팔기위해 이력서를 참 많이 또 고치고 또 고치고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을 하고 나를 알렸다. 그리고 동시에 끊임없이 더 공부하고, 나를 발전시켜나갔다.
그래서 지원한 대부분의 곳에서 스크리닝 콜(전화면접)과 1차 화상 면접까지는 갈 수 있었다. 덴마크는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전화 면접을 시작으로 2-3차까지 혹은 5차까지도 면접을 보는데, 대부분의 회사가 마지막 단계로는 '케이스 스터디' 즉 실력 검증을 위한 테스트를 한다. (스타트업, 대기업 모두 같은 프로세스를 겪었다.)
한국의 면접 시장과 가장 큰 다른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인데, 이 케이스 스터디는 평균 3일에서 길면 일주일까지 시간을 줄 정도로 많은 양이며, PPT로 작성해서 발표까지 해야 하기에 최소 인터뷰가 한 달에서 길면 세 달까지 걸린다.
그동안 여러 곳을 거쳤는데 대부분 결국 덴마크어를 할 줄 덴마크인이 합격을 했다. 너무 당연한 이치었다.같은 실력이라면 나 같아도 언어가 플러스가 되는 사람을 선호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회사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덴마크인으로 구성된 곳이었다.
유럽 마켓에 경험이 있는 혹은 그곳에서 온 많은 유럽인에게 패배하기도 했으며 (특히 독일인), 가끔은 최종까지 가서 입사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결국 잘 되지 않은 케이스도 있었고, 또 다른 이유로는 전 호주 회사(싱가포르 마켓)의 더 나은 근무 조건과 제안으로 더 오래 남게 되었었다.
하지만 꼭 한 번은 덴마크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더 강렬해져 갔고, 새로운 업무를 하고 싶다는 욕망도 커져갔던 것 같다. 무엇보다 다시 한번 더 큰 점프를 해내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더 큰 조직에서,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일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다시 이직 준비를 했었다. 그래서 또다시 전략을 구체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1.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았고 2. 내가 가고 싶은 회사 리스트를 만들었으며 3. 나는 어떤 가능성과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재파악했고 4.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떤 곳일까를 정리했다.
이 리스트들이 머릿속과 노트에 정리가 되었을 때, 딱 맞는 기업을 골라낼 수 있었고 MWB(MUST-WIN BATTLE)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WHY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정리하고 다듬었다.
한국에서 첫 회사였던 스푼 라디오에 입사하고자 했을 때처럼, PPT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신입으로서 준비한 발표자료였다면, 이제는 경력자로서 실력을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나의 PPT 디자인 실력과 함께 말이다. 무엇보다 비슷한 포지션이라 하더라도 아예 새로운 업무에 지원을 했기에 이전 경험과 연관성을 찾아 설득을 하는 과정이었다. 발표를 하고 나니 굉장히 면접을 잘 보았다는 느낌이 바로 왔다.
그렇게 내 직감은 맞아떨어졌고, 인적성 그리고 로직 테스트를 본 후 최종 인터뷰인 '케이스 스터디'에 도달했다. 그리고 모든 인터뷰가 끝난 후 스스로 원 없이 잘 준비했고, 너무 잘했다는 것을 느꼈다. 설령 합격하지 않아도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잘 준비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럽던지,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준비했던 케이스 스터디와 발표에 어느 정도로 자신이 있었냐면, "이 사람들 나 고용 안 하면, 진짜 땅을 치고 후회할 거야. 이게 안되면, 이건 정말 순전히 운이야“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예상했던 대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학력과 무관하게, 언어와 문화에 무관하게. 오직 나의 실력만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그리고 내가 가고싶은 곳에 말이다. 그날 행복해서 웃으면서 엉엉 울었다. 내가 너무 대견해서. 포기하지 않고, 그냥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라서. 용기를 잃지 않아서. 그날 나의 지난 커리어를 뒤돌아보는데, 나는 참 많은 것들을 해왔고 그리고 잘 해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주고 대견하다고 안아주었다.
무엇보다 혹여 덴마크에서 마케터가 되지 않았더라도 나는 나를 사랑해줄 수 있을 만큼, 나 그대로의 나를 안아주고 자랑스러워해 줄 만큼 나의 마음과 정신이 단단하고 강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달까. 그냥 열심히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내게 안된다고 했던 사람들이 꽤 많았다. 덴마크는 이래서 안 될 거고 저래서 어렵다고. 덴마크는 박사들도 취업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더군다나 너는 이공계도 아니고 인문계, 거기다 경력도 아시아에서만 있는 고졸이라서 더 힘들 거라고. 마케터는 마켓을 알아야 하고 언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영어도 당연히 원어민에게 밀릴 거라고.. 나도 그 말을 위안 삼았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직접 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래서 안 될 거고 저래서 안된다는 핑계와 변명은 시간만 지체시킬 뿐. 설령 안된다 해도 도전 그 자체가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안다.
전 세계에서 온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들 사이에서, 매일 새로이 만나는 무수히 많은 국적의 동료들과 함께 앞으로 배우고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앞으로의 생활이 기대가 된다.
나의 여정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