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Choi 메덴코 Jan 16. 2023

덴마크 첫 직장에서 3개월이 지났다.

덴마크에서의 첫 직장에서 3개월이 흘렀고, 수습 기간이 끝이 났다. 사실 매일 퇴사를 고민했던 시간들이었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집에 와서 눈물을 터뜨렸던 날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파서 괴로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하루에 수십 번씩 들었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남편과 친구들은 일단 사람부터 살고 보자며 내게 퇴사를 추천했다. 


먼저 나는 내가 당장 퇴사할 수 없는 이유들을 나열해 보았다. 첫 번째로는 다시 재취업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외국인 신분으로서 덴마크에서 취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이직을 할 곳이 생기고 떠나는 게 아닌 이상 너무나 무모한 결정이라 생각이 들었다. 더 중요한 건 두 번째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서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면 용기를 내서 도전을 할 텐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두 번째 이유에서 알았다. 세 번째로는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부부이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의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가 늘 독립적이었으면 했고 내 밥벌이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퇴사를 고려했던 건 몸이 너무나 아파서였다. 회사만 가면 자꾸 두통이 생기고 기침을 하고 밤마다 악몽을 꿔서 울면서 일어나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 비참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이러다 죽을 것만 같아 장을 보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냥 내려놓고 한국에 잠깐 와. 내가 비행기 표 사줄게. 조금만 쉬다가 돌아가. 너 열심히 했잖아 여태.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돼. 네가 원하던 거 다 이룬 거 맞아. 그거만으로도 충분히 대견해"

친구의 말을 듣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마트에 서 있었다. 친구에 말에 마음이 오히려 더 단단해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명상을 하며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싶은지. 이겨낼 수 있는 게 맞는지, 혹은 정말 여기서 잠깐 멈추는 것이 맞는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구체적으로 뭘까? 왜 이건 생각을 안 해봤을까?'


구체적으로 무엇이 불편하고 힘든지 혹은 실망스러운지, 왜 퇴사를 하고 싶은지에 중점 하여 리스트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정말 솔직해져야 하는 순간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를 속이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나씩 곱씹어 생각하고 자기 인식을 하다 보니 정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확실한 건 한 가지의 이유가 아니었고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있었다는 것이었다. 여태 내가 나의 감정을 마주하며 깨달은 것들은 이랬다.


새로운 환경과 조직 문화


2022년 6월 나는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덴마크에서 직장을 다녀보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큰 기업에서 근무해 보는 것이었다. 덴마크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이곳에서 커리어를 쌓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큰 기업의 프로세스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동안 스타트업에서만 근무했었으니 더 큰 기업에서의 경험과 네임밸류가 나의 커리어에 있어 더 큰 발전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던 업무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커리어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2022년 9월 덴마크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에, 전혀 다른 포지션으로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기뻤다. 나는 늘 원하는 것을 다 이루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입사를 하자마자 느낀 건 나의 입지가 몹시 적다는 것이었다. 나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로만 듣던 정말 한 기계의 부품같이 느껴졌다. 하라는 것만 잘하면 되는 곳. 내 의견은 수렴되지 않는 곳. 그게 꽤나 큰 충격이었다. 예상을 했지만 일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었고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상사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사람이었고 이런 경험이 처음인 내게 모든 것이 충격과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게 주어진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이 하찮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말 그대로 연타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언변 능력이 최고로 중요한 포지션이자 팀이라는 것을 알고서 나는 지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가 더 크게 많이 말하나가 승진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릴레이로 이어지는 미팅에서 많은 이들이 서로의 의견이 더 맞는다고 목청을 높일 때, 나는 그저 듣는 쪽을 선택했는데 그게 참 숨이 막혔다. 내가 멍청해서 혹은 언어가 안돼서 의견을 안 내는 것이 아닌데 왠지 내가 몰라서 혹은 아시아인이라 조용하게 있는 것으로 비추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실제로 북미권 상사에게 피드백도 계속 받았다. 의견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고서라도 이야기를 하라고. 그 성향이 나와 맞지 않아서 너무 힘이 들었다.  즉 환경 자체가 함께 팀으로 성장해 나가기보다 개인플레이로 내 밥그릇을 챙겨야 하는, 내가 가장 잘나야 하는 곳에서 내 스스로를 잘 팔지 못하는 사람이라 힘이 들었던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나는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너무 감사하게도 여태 일을 하면서 너무나 좋은 동료들과 상사들과 함께 성장했었다. 일에서 만나 친구가 된 사람들도 참 많았다. 사람을 원래 워낙 좋아하는 나는 금세 누군가와 돈독해질 정도로 붙임성이 좋다. 그래서 똑같이 나는 덴마크 회사에서도 사람들과 쉽게 가까워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곳도 텃세라는 것이 존재하고 때로 어떤 사람들은 자기와 직급이 같지 않으면 말도 섞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타인의 '인정욕구'가 무척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 한 명이라도 내 편이 되어 나를 인정해 줄 때 나는 무한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에서도 나는 인정받고 싶고 신뢰를 얻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상사와 팀원들에게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요청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뭘 더 잘해야 하는지. 그러자 동료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신뢰는 시간이 가면서 쌓일 거고, 인정은 스스로가 하면 되는 거죠. 피드백을 묻지 말아요. 어차피 상사도 그냥 직급만 높을 뿐. 결국 그들도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성장은 홀로 하는 거예요. 내가 잘한다 느껴지면 잘하는 거니까 너무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결국 아직 쌓지 못한 신뢰와 강한 인정욕구가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함께 일하는 북미, 유럽 동료들의 성향이 내겐 너무나 차갑게만 느껴져 유난히 덴마크 첫 직장 생활이 힘겹게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의 의미


어쩌면 나는 덴마크에 살기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있어 일은 너무나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건강하지 못한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일은 나에게 있어 가족만큼 혹은 가족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한국 스타트업에서 근무했던 나에게 당연한 태도였을 수도 있지만, 덴마크에서 그리고 큰 기업에서 이런 나의 태도는 이상하게만 비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힘들어할 때 남편은 정말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는 늘 내게 이건 그냥 일이고, 가장 중요한 건 너의 건강과 우리 둘 가족의 행복이라며 왜 그렇게 일에 마음을 쓰는지 물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남편은 늘 내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건 이 서비스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고 내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이 때문이야. 일 자체는 그냥 일이야.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지 않아." 


그런 남편은 내게 일의 의미와 필요 없는 열정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특히 북유럽에서, 큰 기업에서 근무를 한다면 더더욱이나 그래야 한다고 그는 내게 말했다. 특히 현 회사에서 사람들이 책임감 없는 모습을 보일 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때 나는 애써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리고 홀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적은데 그걸 할 수 있는 누군가는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그때마다 남편은 내게 그럼 당신도 신경 쓰지 말라며, 책임감을 내려두라고 했고 나는 그게 잘되지 않아 답답해 울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를 힘들게 하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니 뭔가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적어도 무엇이 정확히 나를 힘들게 했는지 알고 나니 해답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 후엔 어떻게 이 고비를 넘겨야 하는지 리스트를 적었고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나를 배우고 나를 알아가며 성장통을 겪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덴마크에서의 첫 퇴사를 준비하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