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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Feb 11. 2023

덴마크에서의 첫 퇴사를 준비하며 (2)

내게 매몰차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한 상사가 미웠다. 팩트보다 감정이 더 실려진 탓에 그녀를 증오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의 제안이 이성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지 않고, 힘이 든다면 그건 그냥 버틴다고 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상당히 힘들었고 어쩌면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보였고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바라보는 관점과 그녀가 바라보는 관점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글로벌 마케팅 매니저로 입사를 했지만 갑작스레 팀원 두 명이 퇴사를 하면서 마케팅이 아닌 이벤트 업무를 하게 되었다. 채용 당시 그리고 인터뷰 시 의논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나는 다시 몇 차례고 그녀와 확인했었다. 워낙 큰 연간 행사라 이 업무가 끝나고 나면 다음 업무엔 하기로 했던 마케팅을 할 수 있는지를. 하지만 그녀는 안타깝지만 언제 사람이 들어올지 모르니 앞으로도 이벤트 프로젝트를 맡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이 부분이 가장 힘이 들었다. 잘하지도 못하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이것 또한 배움이라 생각하여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도 먹었었다. 하지만 역시나 함께 일하는 사람에 따라 회사생활이 지옥과 천국을 오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매니저는 하루에 50통씩 이메일을 보내며 마이크로 매니징을 해왔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업데이트를 바로 해주길 원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하던 일과 미팅을 당장 멈추고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주어야 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팀원들의 의견은 모두 묵살당했고 그녀의 의견대로 모든 업무가 흘러갔다. 그녀는 사내에서 이미 고집불통으로 함께 협업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유명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러모로 상사로서도, 동료로서도 하드코어인 그녀는 사내에 참 적이 많은 듯했다. 내가 타 팀장들과 면담을 하며 부서이동을 알아보는데 북유럽 마켓 컨츄리 매니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써니, 이 문제 위로 올려요 우리. 같이 VP한테 이야기해요. 내가 도와줄게요. 이건 써니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 사람이 헤드 되고 나서 반년만에 두 명이 팀이동을 요청했고 지난 두 달 동안 두 명이 퇴사를 했어요. 이건 좀 심각한 문제 같아요. 턴오버가 너무 빨라요 그 팀."


그의 말에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문제를 제기할 만큼의 에너지도 없었고, 그 정도까지의 수고를 할 만큼 회사에 애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종종 나를 볼 때마다 장난으로 "아직도 이 팀에서 일해요?"라는 했었는데, 그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그리고 금요일이 다가왔고, 퇴근 후 사내 Friday bar가 취소되어 팀원들끼리 구내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한 동료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9명의 팀원들 중 7명이 함께 하는 자리였다. 팀 내 유일한 덴마크인 동료는 사실 자기 곧 퇴사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모두가 깜짝 놀란 와중 슬로바키아 동료 한 명도 "사실 저도요."라고 대답을 했고 그러다 나도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이탈리아인 동료도 "저도 탈출하려고 계속 면접 보고 있어요"라는 말을 했고 다들 빵 터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덴마크인 동료는 상사의 마이크로매니징으로 얼마 전 미팅 때 서로 윽박지르고 싸웠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외부 협력업체와 일을 하는데, 휴가를 다녀오고 나니 여태 했던 업무가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그가 떠난 동안 상사가 상의 없이 모든 일을 바꾸어 버렸고 시니어급인 그는 그럴 거면 당신 혼자 일을 할 것이지 왜 내게 이 포지션을 주었냐며 서로 욕설까지 써가며 싸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도 퇴사를 제안했다고 했다.


옆에 있던 슬로바키아 동료는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아왔던 것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랑 일하면 내가 너무 작아지는 기분이에요. 내가 너무 하찮게 느껴져요.
내가 그렇게 부족한가?라는 생각을 들게 하고요. 모든 의견을 무시받는 느낌을 받아요."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같은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덴마크인 동료는 그녀와 맞서 싸웠고, 다른 동료들은 묵묵히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은 채 참고 1년 동안 일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동시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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