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오랜 시간 장거리 연애를 한 탓에 결혼 후에는 거의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딱 한번 한국에 한 달 정도 가 있었던 거 빼고는 우리는 항상 붙어 다녔다. 내가 아시아로 출장을 갈 때도 그는 나를 따라왔다. 물론 내가 보고 싶어서 뿐만은 아니고 그냥 홀로 이 추운 덴마크에 남겨지는 게 싫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오랜만에 오늘 남편이 혼자 독일 할머니 댁에 갔다.
계획 없던 여행이라 나는 함께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몹시 쿨하게 잘 다녀오라고 했다. 오랜만에 주말 동안 홀로 자유부인을 만끽할 수 있겠거니 해서 사실 신이 났었다. 얼마 만에 온전히 집에 혼자 있어보는 건지 괜스레 신이 났다. 그래서 새벽부터 일어나부터 집청소도 하고 여유를 좀 부렸다. 그렇게 외출을 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왔는데.. 어라? 조용한 집안이 익숙하지가 않다. 평상시 같았으면 한국어로 "내 새끼 왔어"이러면서 뛰쳐나왔을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적막함만 흐를 뿐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으니 홀로 불금 좀 즐겨야겠다 싶어 맛있는 요리도 하고 보고 싶던 시리즈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몹시 춥다고 느껴졌다. 북유럽이야 뭐 늘 추위가 빨리 찾아오고, 겨울이 긴 편이지만 아직까지 히터를 틀 정도로 춥지는 않은데 오늘따라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 만큼 냉기가 느껴졌다. 옷을 평상시보다 더 껴입고 따뜻한 보리차를 한잔 마시며 남편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또다시 집안 청소를 하고 쉬어야지 하고 안방으로 들어왔는데, 정말 이상하게 추운 게 너무 추운 게 아닌가? 손발이 차가워질 정도로 춥다고 느껴져서 한 겨울에도 거의 쓰지 않는 전기장판을 틀었다. 따뜻하니 잠이 오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뭔가 허전해서 잠 못이루고, 남편에 대해 아니 부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대체 부부란 뭘까?
우린 딱히 둘이 같이 하는 게 별로 없다. 취미도 성향도 관심사도 모두 달라서 같이 하는 거라곤 운동이 전부다. 딱히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홀로 집에 있을 때가 많고, 사람으로 에너지를 얻는 나는 거의 밖으로 도는 편이다. 그래서 때때로 우린 왜 결혼했을까 혹은 왜 함께 살고 있을까 궁금할 때가 많다. 우리 뭐라도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그냥 한 방을 쓰는 동거인 같지 않냐고 불평불만을 털어놓을 때가 있었다.
원래도 유난히 로맨틱하지도 않았던 우리지만, 6년의 연애 3년의 결혼생활을 하며 더욱이 건조무미한 듯 서로 익숙해져 갔다. 서로 화장실을 같이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입냄새가 나면 입냄새가 난다고 지적해 줄 수 있는 그런 사이다. 그래서 때때로 결혼하면 다 이런 건가 싶었다. 이렇게 뜨거움은 사라지고, 긴장의 끈 마저 놓게 되는 걸까 회의적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활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건지 깨닫는 순간도 있다.
마치 오늘처럼 말이다. 서로 귀가해서 '내 새끼'라는 호칭을 불러주며 안아주고 각자 할 일을 하는 쿨한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각자의 삶을 살아가더라도 결국 매일 서로의 하루를 묻고 위로하고 또 편이 되어주는 귀한 존재가 갑자기 내 옆에 없으니 허전하고 공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뭘 특별하게 같이 하지 않아도 그냥 매일 밤마다 서로 옆에 찰싹 붙어 각자 할 일을 하는 그 평범한 일상이 참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언가를 특별하게 같이 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부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주말, 자유부인은 들뜸과 동시에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전기장판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