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와는 다른 30대의 연애와 결혼
"써니, 오랜만이에요. 혹시 아직 덴마크에 살고 있나요? 잘 지내죠?"
20대에는 그래도 내가 생각나서, 내가 보고 싶어서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나니 내게 갑자기 연락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11년 전에 만나 알고 지낸 지인으로부터 잘 지내냐며 연락이 왔다. 영국 런던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인도 출신 지인이라, 혹시 덴마크에 사업 진출을 하려고 내게 연락을 한 건가? 속으로 생각하며 답장을 했다.
"네, 저는 덴마크에 살고 있어요. 잘 지내시죠?"
이렇게 대답하고 나면 이제 본론이 나와야 하는데 그가 내게 이상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제가 잘 지내냐고 물은 의미는요. 혹시 여전히 싱글이신 건지 궁금해서요. 만약 아직 혼자이시면 저랑 만나보실 생각 없으신 가 해서요."
처음엔 뭐지? 페이스북 해킹당했나? 싶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아침부터 별의별 일이 다 있었던지라 굉장히 고된 하루라고 생각했다.
자주 연락을 안 하고 지내는 지인이고 내가 페이스북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니, 나의 인생 업데이트가 안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연락을 해서 문자로 데이트 신청을 하다니.. 미친놈인가 싶었다. 내 기억에는 분명 정상적인 사람이었던지라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오늘 덴마크에는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미끄러운 탓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다. 그래서 사실 몸이 아파서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뭔 개소리냐며, 내가 만만하냐고 화를 내려다가 일단 먼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머, 저 결혼하신 거 모르셨나 봐요. 저는 이미 행복하게 파트너와 잘 살고 있답니다 ;) 좋은 분 찾으시길 바라요. 해킹이 아니라면 말이에요."
그러자 그는 몰랐다며 미안하고 축하한다며 내게 혹시 주변에 괜찮은 사람이 없냐고 물었다.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진 않았지만 종종 올라오는 그의 근황을 알고 있었다. 인도 시골 출신이지만 영국에 건너가 공부를 하고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런던에서 꽤 알아주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업가인 저 사람이 대체 왜 저러지 싶었다. 뉴스에도 종종 나오고 나름 유명인인데, 왜? 대체 왜 저런 식으로 파트너를 찾지?
궁금증이 증폭돼서 그에게 물었다.
"이미 주변에 사람도 많으시고, 코펜하겐보다는 런던에 훨씬 파트너 찾기가 쉬우실 텐데 왜 굳이.."
그러자 그가 내게 한 말.
"저는 30대 중반이잖아요. 연애보다 결혼이 하고 싶어요. 모르는 사람 말고 알던 사람, 아는 사람 즉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조건이 맞는 사람과 진지하게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주변에 백그라운드를 아는 사람 중에 싱글인 분을 찾고 있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신뢰하기가 어려운 나이가 되었어요."
저 대답을 듣고 나니 저 사람이 얼마나 진지하게 신붓감을 찾는지를 깨닫고 나도 상당히 진지해졌다. 그래서 그냥 보통 인도인들처럼 정약결혼은 어떻냐고 제안을 했더니, 안 그래도 부모님도 열심히 찾아주고 계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 자기 프로필을 마치 이력서처럼 PDF로 보내주시며 본인의 조건(?)을 알려주셨다. 본인의 회사 이름, 경력, 이룬 것들, 나이, 키, 집안 환경 등등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진짜 진심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의 신붓감 조건은 아래와 같았다.
1. 패션 혹은 영화 즉 미디어 계열에서 종사하는 사람
2.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서 함께 살 의향이 있는 사람
3.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나이대의 사람
4. 지인의 지인 등 신뢰할 수 있는 배경의 사람
꽤나 진지한 이 조건 만남(?)에 부흥하는 자가 생각이 났다. 그건 바로 인도에 있는 나의 가장 친한 인도인 친구였다. 친구한테 조건을 말하자 나쁘지 않다고 해서 그래서 얼떨결에 이 둘을 연결해 주었다. 어쩌다 보니 베프의 남편감을 찾아준 건 아닐까 싶어 혼자 깔깔거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돈이 많고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외로울 수 있구나.'
물론 돈이 많고 성공했다고 반드시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막상 여유가 넘치고 본인의 꿈을 이루면 혼자여도, 밥 먹지 않아도 배부르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또 30대의 연애와 사랑은 이렇게 조건부일 수밖에 없는 걸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20대 중반에 오직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만으로, 아무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해서 대략 10년을 함께 하고 있는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처럼 보였다.
물론 모든 30대와 40대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주변 싱글 30대를 보면 다들 사랑이라는 일시적 감정보다 현실적인 문제와 조건을 갖추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게 옳고 옳지 않다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20대와는 다른 점을 다시금 깨달았달까.
(어쩌면 저분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유한 분이라 더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내가 만약 현재 싱글이라면, 30대인 나도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결혼을 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건을 두고 누군가와 교제를 했을 것 같다. 그래서 11년 만에 연락 온 저분의 데이트 신청을 받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또 동시에 20대에만 할 수 있는 풋풋하고 강렬한 사랑을 했고, 10년을 가까이 함께 한 사람과 사랑 하나만으로 결혼을 해 잘 먹고 잘살고 있는 내가 한편으로는 축복받은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편은 내게 제일 친한 친구의 남편감을 찾아준 것 같다며 웃었고, 사랑이라는 감정과 Companionship, 동지애 즉 함께할 인생의 반려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20대에 아주 뜨거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랑을 해봤고, 그리고 그 사랑이 결실을 맺어 이어나가고 있는 나는 때때로 '사랑'에 대한 소중함에 익숙해져 버렸던 것 같다. 하지만 11년 만에 연락 온 지인 덕분에 다시금 깨닫는다. 얼마나 내가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저분이 얼른 조건이 맞는 좋은 짝을 만나 외롭게 살지 않으시길 바라본다.
ALL IS LOVE.
LOVE IS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