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마케터가 어떻게 인스타그램을 안 해?
얼마 전 나는 조용히 인스타그램을 삭제했었다.
계정은 그대로 둔 채 조용히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에서 사라져 지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는 괜찮았다. 아니 되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던, 여유로웠던 시간들이었다.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마케터'
과연 괜찮을까 싶었다. 그것도 요새 가장 핫한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을. 하지만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첫 번째로 선택한 일이었다.(내가 유일하게 하루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플랫폼이다) 근데, 그랬던 내가 왜 다시 인스타그램에 새로 계정을 만들고 다시 나의 삶을 공유하기 시작했을까? 중독성 때문에? 소외감 때문에?
1. 밑도 끝도 없는 자존감 하락
다 알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사람들이 정말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이미 다 허구, 허상 그리고 ‘한 순간’ 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내가 위축되곤 했다. 특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강도가 조금 심해지는 것 같달까. 나는 개인적으로 스타의 삶과 나를 비교하진 않았다. 팔로우를 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이들에겐 관심이 없다. 내가 작아지던 순간은 사실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보면서였다. 그 사람이 행복하고 잘되는 것이 배 아픈 게 아니라, 내가 너무 힘들고 지치는 순간에 소셜미디어 속 주변인들을 보면 왠지 정말 나 빼고 모든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 설상가상 그들의 현실 세계의 고민과 삶을 이미 알고 있을지라도. 그놈의 사진 한 장이 뭔지 사람의 마음을 참 뒤숭숭하게 하게 만들곤 했다.
2. 지금을 즐기지 못했다
인스타그램이든, 스냅챗, 페이스북이던 어떤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중독자’인 유저라면 말이다. 나는 주변에서 LTE라는 별명이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 바로 그 누구보다 빠르게 업로드하고 매 순간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곤 했다. (마치 누가 궁금해하듯 말이다. 실상 아무도 없을 텐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나는 매 순간순간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누구와 있고 무엇을 할 건지까지 공유하곤 했다. 그래서 늘 핸드폰 배터리가 빨리 닳았고, 매 순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구를 만나고 서로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들 핸드폰을 만지느라 바빴다.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압로드 하고 있었고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는 업로드를 위한 인스타용(?) 카페를 찾아가고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그냥 그게 어디던 매 순간 핸드폰이 내 손안에 있었을 뿐..
3. 너무 발가벗었었다.
인스타그램은 내게, 어떻게 보면 감성 호소의 '장'이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행복한 경험, 생활 등을 올리는 것 같던데 나에겐 길고 기나긴 글이 담긴 하나의 사진이 많았다. 나의 감정을 100프로 쏟아붓곤 했다. 그걸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그런 솔직한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나를 부정적이게 보는 사람들과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너무 감정적으로 발가벗으니 민망했다. 정말 관종 같았다. 내일 당장 얼굴을 봐야 하는 사람들이 어젯밤 내가 그렇게 힘들어했다는 걸 모두 안다는 사실이 점점 사실 쪽팔렸다. 일기장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취약점을 너무 들어냈다는 걸 후회했다. 이런 면에서 나는 약하다는 걸 불특정 다수에게 나 스스로 알려주고 있었던 느낌이랄까.
근데, 왜 인스타그램을 다시 하는데?
나는 '마케터'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면, 사실 거짓말이다. "마케터가 트렌드를 알아야지!" 이런 말은 디폴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마케터라는 이유로 조금 더 인스타그램에 집착하곤 했다.
나는 마케터니까, 더 인스타그램을 사용해야 해. 그래야 트렌드를 알지!
하지만 사실, 아무 일도 없었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사용한다고 해서 더 좋은 마케터는 아니었다. 그리고 마케터도 마케터마다 직무가 달라서 나는 사실 크게 연관성이 없었다. 물론 알면 알수록, 트렌드를 따라갈수록 좋은 전략, 기획 그리고 콘텐츠 질이 좋아질 가능성은 높겠지만?
나를 브랜딩 하고 싶어 졌다. 단지 '마케터' 이기에 트렌드를 알기 위함이 아니라, 스푼 라디오라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 마케터로서의 나를 브랜딩 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굳이 꼭 인스타그램이 아니어도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기존에 하던 블로그와 브런치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병행하고 있다. 가상 속의 나의 모습이 아닌 '진짜'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어 졌고, 내가 가장 나를 잘 나타낼 수 있는 건 사실 '글'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글로만 나를 표현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순간들을 다시 사진과 함께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러기에 인스타그램이 나에겐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달 후
인스타그램을 재 설치한 후 달라진 점
1. 예전처럼 매 순간순간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지 않는다
정말 올리고 싶은 순간들을 셰어 한다. 무엇보다 그 순간에는 업로딩을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그 순간을 마음으로, 눈으로 즐기고 싶기에.
2. 너무나도 사적인 내용과 사진은 올리지 않기로 했다 (자체 검열)
예전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솔직했다. 매 순간의 감정을, 순간을 공유하고 몹시 사적인 것들을 무작위로 업로드하곤 했다. 그 습관을 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굳이 보여줄 필요도, 보고 싶은 사람도 없다는 걸 매일 되새긴다. 진짜 동정과 관심이 필요하면 특정한 소수에게 받는 걸로..
3. 쓸데없이 피드(Feed)를 보면서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다.
예전엔 그냥 심심하면 인스타그램을 했다. 피드를 내려보기도 하고, 요즘 뜨는 유머 등 트렌디한 것들을 읽고 보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올리고 싶은 것, 공유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쓸데없이 피드를 내리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특정 인물(지인)들을 팔로우하고, 그들의 근황이 궁금할 땐 되도록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4. 언제라도 과감히 인스타그램 및 소셜미디어를 삭제할 수 있다.
또 마음이 뒤숭숭해지거나, 지금 느끼는 감정들이 변질된다면 나는 또다시 당분간이던, 오랫동안 SNS를 떠날 것이다. 꼭 주류 소셜 미디어 채널을 통해서 트렌드를 따라간다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소셜 미디어가 아니어도 정보와 트렌드를 접할 수 있는 곳들은 참 많다. 그리고 나는 그 많은 것들을 찾아냈다. 무엇보다도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것은 꼭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내가 버겁다면 나를 버겁게, 힘들게 하는 것들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또 나는 소셜미디어 사용이 나를 힘들게 한다면 과감히 멀리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일도 행복할 때, 정신이 건강할 때 즐겁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끝으로 나는 인스타그램을 조금 더 똑똑하게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인스타그램뿐 만 아니라, 어떤 플랫폼도 앞으로 조금 더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끌려다니지 않도록(중독되지 말자) 되레 주어진 현대 IT 기술 및 플랫폼을 활용하여 어떻게 스스로가 발전할 수 있을지, 나를 브랜딩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