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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Jul 10. 2019

인도네시아에서 생긴 첫 '친구'

낯선 이의 TMI가 싫지 않은 이유

벅찬 하루였다. 소주 한 병이라도 벌컥벌컥 마셔버리고 싶단 생각이 들 만큼 또는 담배 한 개비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만큼 몸과 마음이 지치고 상처 투성이 같은 날이었다. 짝꿍과의 영상 통과를 켜 둔 상태로 혼자 야근을 하며 너무 지쳐 눈물 한 방울 흘리기도 힘들 만큼의 그런 날이었다.


겨우 겨우 택시를 잡아 교통체증을 벗어나 집에 가면서 미리 저녁 식사를 주문했고, 집에 도착할 때쯤 음식이 도착할 줄 알았는데 이미 20층인 우리 집까지 올라왔을 때 음식이 도착했다며 연락이 왔다. 휴대폰이 고장이 나서 임시로 고장 난 핸드폰을 빌려 쓰고 있는데 배터리가 금방 닳아버려서 충전을 시켜둔 채로 다시 로비로 내려갔다.


음식 배달 Grab 아저씨가 보이질 않았고, 배는 고프고 몸은 지쳐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히잡을 쓴 아주머니께서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써니?


뭐지, 분명 아저씨가 배달해주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줌마가 대신 오신 건가?라고 생각이 들 때쯤 아주머니가 나를 아파트 반대편 로비 쪽으로 안내해주셨다. 걸어가면서 아주머니께서 유창한 영어로 저쪽 로비는 앞으로 택배 같은 거 받을 때 가면 돼!라고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고, 음식 값을 지불하는데 가지 않고 옆에 서서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잔돈 잘 확인해야 해 인도네시아에선"


아저씨가 혹시나 인도네시아어를 못하는 내게 잔돈을 덜 줄까 봐, 옆에서 지키고 서서 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게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내게 몇 층에 사냐고 물으셨고 아주머니는 28층에 거주한다고 하셨다. 그 후 아주머니는 내게 정말 많은 질문을 하기 시작하셨다. 어디서 왔는지, 여기서 사업을 하는지, 자카르타에서 뭐하는지, 몇 살인지, 혼자 사는지, 이사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남자 친구는 있는지.. 그리곤 내게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달라며 연락처를 주신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내 번호를 외우지 못하고 있던 나는 핸드폰이 집에 충전 중인데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 집 오시지 않으시겠냐며 아주머니께 제안했고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 오게 되셨다.


그렇게 아주머니와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Whatsapp으로 연락하자고 한 후 떠나셨고, 나는 감사한 마음에 아주머니께 먼저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연락을 드렸더니 갑자기 전화가 왔다. 본인은 너무 나이가 들어서 텍스트가 불편해서 전화했는데 괜찮냐고 물어보시더니, 갑자기 아주머니의 TMI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금융업계에서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으셨고, 딸이 있는데 임신 2개월이며 3년간 아이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셨다고 한다. 동생 한 명은 호주에서 살고 있으며, 다섯 번째 동생은 모로코 사람과 결혼을 했다고 하셨고 아주머니의 집은 방이 3개인데, 너네 집은 2개더라! 남자 친구는 그래서 언제 오냐고 물으시도 했고 인도네시아에 대한 문화(?)와 치안에 대해 꼼꼼하게 말씀해주시기 시작했다. 


우리 딸도 참 많은 나라에서 살았었는데, 그러고 보니 한국은 가본 적이 없어서 아쉽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길고 긴 통화를 끝냈다. 무엇보다 같은 건물 주민인데 언제든 언어장벽으로 고생할 일이 있으면 엄마처럼 의지하며 지내자고 하시는 말씀이 참으로 인상 깊고, 처음 만나는 낯선 이의 TMI가 싫지 않았다.


통화가 끝난 후에 아주머니께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저의 첫 친구이자 이웃주민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나의 첫 한국인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라며 답변해주셨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모르는 사람의 친절이자 과도한 듯 과도하지 않는 TMI가 인상 깊었다. 나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이 그저 "그렇구나"로 끝나서 그런 걸까? 그저 묻고 나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그런가 보다 하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인가.


아무튼, 든든해졌다. 

누군가의 TMI로부터 덜 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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