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한국에서 취업을 하고, 바쁜 나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그가 한국에 왔다.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만났는데 어찌나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지, 눈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재회를 하긴 했는데, 우린 이제 어찌해야 하나?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짧은 기간 내 머릿속에 박힌 다짐들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사랑 때문에 내 인생을 희생하지 않기
어린 마음에 다짐했지만 그 다짐이 꽤나 무거웠다.
오자마자 부모님 집에 가게 되었다. 그는 우리 부모님을 보고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때가 선하다. 의외로 담담했던 우리 부모님은 되러 그를 반겼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염려하셨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니? 이렇게 찾아왔는데도 같이 안 떠날 거야?"
그리고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 인생이 너무나도 중요하단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 나는 일도 너무 재미있고, 한국에 사는 게 처음으로 즐거워졌어. 안 갈래. 결혼 안 해"
진심이었다.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배우는 즐거움이 나에겐 힐링이 되었다. 그리고 한 번 깨진 사랑이 다시 온전히 돌아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미련을 붙잡고 있는 우리라고 생각했다.
이러다 말겠지. 결국 우린 추억이 되겠지.내 인생에 가장 뜨거웠던 사랑으로 남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가 한국에 일주일간 왔다 간 후 우리는 매일 영상통화를 했다. 일이 끝나고 나면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의지하곤 했다. 그렇게 대략 3년을 우리는 4개월에 한 번씩 덴마크, 라트비아와 한국을 오가며 만났다. 잠깐씩 일주일을 함께 하며 다시 신뢰를 쌓아갔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에 대한 미래가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다.
"써니 우리 계속 이대로 이렇게만 만날 거야?"
중간중간 그가 내게 다시 유럽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거절했다. 대신 그가 나를 따라 한국에 살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사실 그땐 그마저도 부담스러웠다. 너무나도 바빴고 그를 신경 쓸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덜 사랑하게 되었다. 대신 나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었을 뿐.
"결혼을 예전처럼 서두르지 말자. 나는 결혼을 정말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우리 또 헤어질 수도 있잖아. 나는 다시 내 모든 걸 전부 걸 수가 없어"
그렇게 장거리를 하던 우리가 다시 함께 하게 된 이유는 지난 시간 서로 변치 않았던 마음과 같은 이유로 싸우지 않게 된 것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안정됨에 있어서 큰 변화를 보였다.서로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 각자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남자 친구의 집에 크나큰 사고가 생기면서 나의 마음이 더 확고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아파하는 동안 함께 한국에서 마음이 아팠고, 이 사람을 평생 지켜줄 수 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전에 나를 지키고 스스로 서는 연습을 했으니 이제 나를 포함한 타인까지 내가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나랑 같이 인도네시아 갈래?
좋은 계기로 출장에 가게 되었던 인도네시아에 장기 파견을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앞으로 정말 함께 살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가 퇴사를 하더라도 함께 따라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먼저 인도네시아에 왔고,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재택근무가 가능했기에 인도네시아에 와서 집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렇게 인도네시아에서 재회한 게 바로 6개월 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함께 지내는 이 생활을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나를 찾았고, 그도 그를 찾았다. 그리고 서로를 되찾았다.
헤어졌었기에 우리는 다시 함께 할 수 있었고,
헤어졌었기에 우리는 다시 행복할 수 있다.
지난 4년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변화는 컸다. 나는 여전히 이 사람이 없다고 해서 내 인생이 무너지거나, 홀로 설 수 없을 것 같지 않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외롭지도 않을 거다. 다만 이 사람이 아니면 결혼을 굳이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 사람이 없으면 내 인생이 덜 행복할 것 같아서 이 사람과 평생을 하고 싶다. 그리고 상대방도 같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기에 우리는 다시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