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박혬(2017~2018), 여고생 임연수
조용한 주택가의 밤 골목, 네 명의 사람들이 헉헉대며 달린다. 연장을 든 남자들이 그들을 좇고 있다. 선두에서 달리는 교복 차림의 여학생 얼굴이 엉망이다. 한쪽 눈엔 멍이 들었고 코에서는 피가 난다. 하지만 나머지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타박하는 목소리는 우렁차 보인다. “원래 가족은 힘들 때 더 뭉치는 거야!”라는 대꾸가 돌아오자, 골목에 "그 지랄하다 이 꼴난 거 아니야아!!"라는 고함소리가 울려 퍼진다. 흩어지라고 한번 더 소리를 지른 그는 이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그를 좇던 험상궂은 패거리 중 하나에게 잡히고 만다. 몽키스패너를 들어 올리는 남자의 그림자 앞에서, 그는 몸을 웅크리는 대신 양팔을 벌려 벽을 짚은 채 ‘언제나 신에게 묻고 싶었던 한 가지’를 마음속으로 외친다. “대관절 가족 따윌 뭐 하러 만드신 거죠?” <여고생 임연수>(령/박혬, 2017~2018)의 첫 장면이자, 주인공 임현수의 첫 등장이다.
여자 고등학생 임현수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밑바닥 인생' 집안의 구성원이자 학교에서 포기한 문제아다. 아빠, 엄마, 오빠, 현수로 구성된 4인 가족은 모두 전과자고 현수는 소년원 이력이 있다. 엄마는 아무 데서나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고, 아빠는 지하철에서 젊은 여자를 보면 눈이 게슴츠레해진다. 오빠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게임만 한다. 동네 사람들은 민폐만 끼치는 그들을 "쓰레기"라 부르며 피해 다닌다. 학교 선생은 현수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친구들은 현수에게 학교를 왜 다니냐고 묻는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현수가 좋다며 졸졸 따라다니는 이정빈도, ‘가출팸’ 친구 연화도 굳이 학교를 꼬박꼬박 나가는 현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수에게는 학교를 다니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 이 사회에서 현수가 뭐라도 하면서 살기 위한 마지노선이 '고졸'이란 사회적 위치이기 때문이다.
"개나 소나 다 대학 나오는 시대에 고등학교 중퇴, 결과적으로 중졸이 이 사회에서 어떤 대접받을지 상상이나 가냐? ... 이 나라는 말이야, 뒤처지는 사람에 대해서는 짤이 없어요. 얄짤없이 꼬리자르기를 한다고, 도마뱀처럼. 뒤처지는 사람까지는 안 챙긴다, 못 챙긴다, 배 째라 이거야. 이 나라 사회안전망이 좆같다, 그거지. 사회안전망이 좆같다는 게 뭔 말이야. 아무도 안 챙겨주니까 너 혼자 알아서 살아남아라, 살고 싶거든, 이거지(여고생 임연수 2화 중 발췌)."
이처럼 현수는 현실적인 목적의식과 생존본능으로 가득 차 있다. 돈을 뺏거나 싸우는 일이 유흥이나 방황이 아니다. 정확히는 유흥을 즐기거나 방황할 틈이 없다. 싸움을 잘하긴 한다. 현수에게 “수컷들 비즈니스 하는데 깔따구를 왜 데꼬 오냐”라고 비아냥대는 상대편 남고생을 무자비하게 패줄 만큼 잘한다. 하지만 패싸움은 현수에게 '용역'이다. 싸움이 끝나면 돈을 받아간다.
현수는 '가출팸'의 가장이기도 하다. 현수네가 사는 동네를 관리하는 조폭(이자 조폭 두목의 딸) 골석이의 표현을 빌리면, 현수는 가족에게 집착하며 '패밀리 놀이'를 한다. 가출팸 애들에게 학교 가라, 밥 해 먹어라, 매일 잔소리한다. 성매매로 돈을 벌던 친구 연화에겐 성매매를 금지시키기도 한다. 현수는 이전에도 그랬다. 소년원에서 가족을 만들었고, 나와서는 가출팸을 만들었다. '너에게 짐이 되기 싫으니 각자 인생을 살자'는 연화의 쪽지 한 장으로 '패밀리'가 허무하게 와해되면 현수는 "씨팔, 갈 곳도 없으면서"라고 욕 한번 하고 말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책임지고 친구들을 챙긴다. 챙길 가족이 있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떠나자 현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원가족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도 가장 노릇을 한다.
원가족의 가장으로서 현수가 고안한 미래 계획은 심부름센터였다. 그리고 이는 골석이의 제안으로 곧 ’빨간 줄 장사'가 된다. 어차피 이미 가족 모두 빨간 줄 하나씩 있는 것, 남들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감옥에 가는 걸로 돈을 버는 일이다. 이 '사업'은 돈도 실추될 명예도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수네 가족에게 적격이다. 돈과 실추될 명예가 있는 사람들이 법을 어기면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마련이므로 수요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업은 골석이네 조폭 패거리뿐만 아니라 현수의 친구들과도 얽히며 좌충우돌로 나락을 향해 간다. 이 과정이 우울하고 어둡게 그려지진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이 골 때리는 사업의 전개를 통해 암담하고 답 없어 보이는 밑바닥 가족 이야기와 청소년들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역동적일 수 있는 힘은 현수와 친구들(과 골석이)에게 있다. 현수와 현수의 친구들은 누구 하나 착하거나 바르지 않다. 이들을 둘러싼 환경도 다 어딘가 하나씩 비뚤어져 있다. 그래도 다들 살기 위해 열심이다. 어른들이 돌보지 않는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살아남는다. 그리고 왜인지 가족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현수는, 무너진 어른들의 삶까지 멱살 잡고 끌고 간다. 그 방식은 하나같이 엇나가 있지만, 살아가려고 열심인 것은 사실이다. 작가는 이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태도는 캐릭터의 섹슈얼리티 면에서도 유지된다. 탈가정 여성 청소년이 나오는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여고생 임연수>에도 성폭력이 소재로 등장한다. 성매매를 하는 여자 청소년 연화가 있고, 구역 관리의 일종으로 포주 역할을 겸하는 골석이가 있고, 디지털성폭력을 저지르는 ‘평범한’ 남학생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폭력을 재현하지도, 여고생의 섹슈얼리티에 환상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이 웹툰의 초점이 아니다. 현대사회 청소년들이 살면서 마주치는 문제 중 하나로 성범죄를 다룰 뿐이다.
이 웹툰의 서사나 구성이 딱히 새롭지는 않다. 사회 밑바닥을 탈출하려는 몸부림, 문제아들의 사연, 아픔도 문제도 많은 가정사, 어둡고 상처 많은 악역 따위는 다양한 매체에서 이미 많이 얘기해 온 소재다. 현수의 고군분투와 함께 이뤄지는 원가족 갱생 서사와 가족애 요소는 구태의연한 면도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첫 번째 요소는 캐릭터에 있다. 주인공 현수나 주조연 골석이는 그간 많은 문제아 서사나 조폭 서사에서 여성 청소년으로 잘 상상하지 않던 캐릭터였다. 작가는 펄떡인다고 느낄 만큼 가열차게 사는 주인공이나 어둡고 상처 많은 조폭의 후계자 역할에 ‘어린 여성’의 몸을 입힘으로써 전형적인 캐릭터를 신선하게 만든다. 그리고 둘의 대치와 공조에서 드러나는 임현수의 절박함, 팔팔함, 추진력은 곧 작품의 분위기와 속도감이 된다.
캐릭터가 끌고 가는 분위기와 속도가 작품의 첫 번째 매력 요소라면, 두 번째 요소는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작가는 어떻게 봐도 갈 데까지 간 애들인 현수와 친구들, 골석이를 비롯한 작품 내 청소년들을 시종일관 따스한 눈으로 그린다. 이들의 비행이나 범죄를 미화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인지, 그 결과가 어떻게 돌아오는지 드러낸다. 따스함은 이를 치기 어린 반항이나 방황이라기보단 생존의 한 형태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그래서 현수의 눈은 흐리멍덩하지도 일그러지지도 않았다. 준법정신은 없고 상처는 많은 문제아지만, 언제나 앞을 직시하는 현수의 두 눈은 또렷하다.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가 범죄뿐일 때에도 그게 수단 이상이 되지 않는다. 주도권은 언제나 자신에게 있다. ‘생존이 문제가 될 때는 오히려 우울하거나 절망할 새 없이 상황을 타파하기 바쁘더라’는 어떤 이의 말처럼, 생의 의지로 가득 찬 현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든 부수어 나가기 바쁘다. 그것이 옳은 방식인 경우는 거의 없지만, <여고생 임연수>는 판단하고 단죄하는 게 작가의 몫도 독자의 몫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현수와 친구들의 끝이 밝은 건 작가가 보내는 응원이기도 자연스러운 결말이기도 하다. 현수는 생존을 위한 다른 선택지가 있을 때 굳이 남을 때리거나, 돈을 빼앗거나, 남의 죄를 뒤집어쓰지 않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든 챙기고야 마는 현수의 오지랖은 친구들의 선택과 삶에도 영향을 준다. 폭력으로 얼룩진 조폭 세계에서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며 자란 골석이도 마찬가지다. 골석이는 아버지를 감옥으로 보내고 본인도 감옥에 들어가며 탈가정에 성공하고, 탈가정한 순간부터 자신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 미래는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구출하며 아이들이 다른 선택지를 그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골석이 역시 어른이 망가뜨리고 버린 삶을 어떻게든 이어나가려던 이들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청소년, 특히 문제아는 시기를 타지 않고 사랑받는 소재 중 하나지만, 다루는 방식의 유행은 있다. 몇 년간 이어지는 트렌드는 폭력에 집중한 복수와 응징인 듯하다. 그리고 그 복수와 응징은 대개 직접적인 피가해 관계를 벗어나지 않은 채 오간다. 그런 점에서 <여고생 임연수>가 문제아를 다루는 방식은 유행하는 결과 거리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의 응징은 아이들이 다른 선택지를 상상하지 못하게 하던 사회와 그 사회 속 어른을 향하며, 현수와 친구들은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으로 갱생한다. 그리고 이를 끌고 가는 여고생 임현수는 기존의 문제아뿐만 아니라 기존의 십 대 여성 재현에서도 한 걸음 떨어져 있다. ’순수한‘, ’무결한‘, ’청량한‘ 따위의 수식보단 ’날뛰는‘, ’센’, ’겁없는‘ 같은 말이 어울리는 현수는 K-장녀보단 가장이, 캔디보단 소년만화 주인공이 어울린다. 웹툰이 나온지 6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반가운 이유다.
이 글은 2018-19년쯤 <여고생 임연수>를 봤던 기억(과 남겼던 감상)에 의존해 썼다. 요즘 웹툰에선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여자들이 많고, 이 웹툰보다 신선하고 세련되게 청소년을 이야기하는 웹툰도 많다. 그래도 나는 왠지 가장 먼저 현수를 얘기하고 싶었다. 현수가 마음에 들었던 그때의 감상으로 현수를 소개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