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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Apr 22. 2023

웹툰 속 날뛰는 여자들 2

자룡/골왕(2019~), 이대로 멈출 순 없다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 명단에 올라 교복이란 죄수복을 입고 공부란 벌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한때 유행했던 밈(meme)이지만, 이 안에는 '순종적 몸'을 기르기 위한 사회 체계의 하나로 학교를 해석한 미셸 푸코의 현대 철학이 들어있다. 학교와 교실 공간은 몸의 훈육적 통제를 위해 심리까지 지배하도록 배치되고, 순종적인 신체를 생산해 내는 권력과 감시 제도의 기능을 함의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감옥과 같기 때문이다(푸코, 1975). 이 안에서 교사는 훈육자이자 교도관의 역할을 한다.


    만약 교사가 훈육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학교는 어떻게 될까? 학생들이 도무지 훈육 불가능하다면? 순종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면? <이대로 멈출 순 없다>(자룡/골왕, 2019~)는 이러한 상태의 학교가 어떤 모양인지 보여준다. 회차별 표지를 제외하면 모두 흑백인 이 복고풍 웹툰은, '정문동'이란 가상의 동네에서 '정문동 돼지우리'라 불리는 정문여자상업고등학교(이하 '정문여상')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리고 정문여상의 학생들은 웹툰의 제목만큼 강렬하다. 개성은 외형에서부터 드러나는데, 시즌1 마무리에 나온 등장인물 소개에서도 느껴지는 다양한 생김새는 작가가 캐릭터 디자인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게 한다. 그리고 공들임의 초점은 획일화된 아름다움이나 여성성보다는 다양한 얼굴, 머리모양, 표정을 통해 드러나는 글자 그대로의 개성이다. 웹툰을 보다 보면 자연히 눈에 띄는 단신, 장신, 글래머, 마른 몸, 통통한 몸, 거구 등 다양한 몸도 이 웹툰이 지향하는 외형적 다양성을 잘 드러낸다.


<이대로 멈출 순 없다> 회차별 표지 일부(이미지 캡처, 카카오웹툰)
<이대로 멈출 순 없다> 등장인물 소개(이미지 캡처, 카카오웹툰)


    외형부터 심상찮은 인물로 가득 찬 정문여상은 비위생적이고 야생적이며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이다. 멀쩡한 변기와 세면대를 찾기 어려운 화장실에서 학생들은 머리를 감거나 흡연을 하고, 수업은 툭하면 자율학습으로 변질되며, 부실은 담배피며 마작하는 공간이거나 레즈비언들이 모여 수다 떨고 연애하는 공간이다. 부 활동에 진심인 구성원이 있는 배구부에서 실력보다 앞서 전국 재패를 막는 걸림돌은 구성원들의 성질머리다. 그리고 학교 한 켠에는 일찍이 타투이스트의 재능을 보인 '칸쵸'의 아지트가 (어떻게 이런 공간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있다. 이처럼 학교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규율을 찾기 어려운 정문여상에서 교사는 훈육자가 되지 못한다. 훈육자의 부재 속에서 시즌 중반을 넘어갈 때까지 학생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은 선도부로 넘어간다. 선도부는 야생의 정문여상에서 유일하게 군대문화가 존재하는 집단이다. 학생주임과 선배들에게 맞고 모멸을 견디는 대가로 위임받은 권력은, 패싸움을 해도 벌칙을 면하고 학생들에게 담배를 압수한 뒤 되팔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난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선도부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한다.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들은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고 반란을 일으킨다. 선도부를 향한 다른 학생들의 불만은 회차 곳곳에서 드러나며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그 반란은 선도부를 재패하겠다는 쪽이 아니라 ‘나와 내 친구들‘을 줘팬 선도부 구성원의 오토바이를 훔쳐 불태워버리는 식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선도부가 학교의 지배자로 군림하지는 않는다. 선도부는 정문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패거리 중 학교와 결탁한 유일한 집단이지만, 이것이 학교의 규율이 되어 학생들이 순응하는 전개는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야생성은 폭력적 학원물의 암묵적 규칙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폭력적 학원물에서 흔히 학생들은 '일진'과 '피해자'로 나뉘어 재현된다. 학교는 일진 패거리의 규율로 돌아가고, 이에 순종하는 대다수 학생들의 밑바닥에 피해자가 있다. 그리고 대개 일진의 자리에 도전하거나 일진과 싸우는 영웅(또는 복수자)의 등장으로 서사가 시작된다. 학생들은 철저히 학생들끼리 싸우며, 학교 바깥의 삶은 축소되거나 생략된다. 교사라는 훈육자가 부재해도, 이 틀 안에서는 순종적인 신체를 생산하는 권력과 감시 제도가 유효하다. 학생들은 폭력과 권력에 순응하며 지배자의 규율을 따르거나, 대항하여 새로운 규율을 만든다.


    <이대로 멈출 순 없다> 캐릭터와 서사의 입체성은 바로 이러한 규칙을 따르지 않는 데서 온다. 순종하는 몸이 없는 정문여상에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싸우고, 코피가 터지고, 이가 나가고, 울고, 소리 지르는 몸들이다. 이 몸들은 끊임없이 경합하며 통일되지 않는다. 규율을 만들거나 군림하려는 욕망 또한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대립은 학생과 학교라는 원론적인 구도로 일어난다. 교사가 훈육자의 역할을 못할지언정, 학교는 그 본질에 따라 규율을 작동시키려 애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의 반복적인 주먹구구식 문제 처리, 납득하기 어려운 정학/퇴학 조치에 이은 난데없는 집중 단속과 부실 압수는 개별화되어 일어나던 학생들의 저항을 점점 집단화시킨다. 등교 거부로 시작된 집단 저항은 모종의 사건으로 학교에 돌아온 학생들에게 학교가 보인 무관심과 수상한 낌새를 통해 학교 점거의 형태로 본격화된다.


    학교 점거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학생회장 우영빈의 사고가 ‘학교 측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로 와전된다. 선도부 권력의 핵심인 학생회장의 수상한 사고와 학교 측의 쉬쉬하는 태도는 선도부의 와해로 이어진다. 행동대장 격이던 3학년 윤재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선도부를 관둔다. 2학년 백정은과 장승열은 선도부에 남지만, 그들이 남은 건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단 어쩔 줄 몰랐기 때문에 가깝다. 그사이 학교를 거부하던 학생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돌아오는데, 학교는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 그간의 등교 거부와 갑작스러운 복귀 역시 학교의 관심 밖이다. 원래 학교 잘 안 나오는 애들이었으니까, 원래 사고치던 애들이었으니까, 라는 반응에 정문여상 학생들은 이제 교실을 점거한 채 수업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백정은과 장승열은 학생주임과 교감 사이의 불륜 증거를 폭로한다. 그간 선도부를 편리한 도구 취급하며 폭력을 일삼던 학생주임에 대한 복수다. 그리고 학생주임에 대한 복수심은 선도부와 늘 싸우던 2, 3학년 요주의 인물들이 단결하게 만든다. 그렇게 학교에 불륜 고발 대자보가 붙고, 학생들은 난리가 난다. 학생주임이 학교를 나가자 학생들은 잠깐 승리감에 젖지만, 이내 '학생회장이 어떻게 된 건지 해명을 듣고 집중 단속 기간에 빼앗긴 부실을 되찾자'는 원래의 목적을 상기한다. 그러나 교무실에서 엿들은 교감의 반응은 차갑다. "애들은 어차피 자기들이 뭐라도 해낸 줄 알겠죠. 우리 학교 애들은 공부만 못하는 게 아니에요. 멍청해서 이런 일은 금방 까먹습니다. 그럼 같잖은 반항도 금방 끝납니다. 겪어봐서 아시잖아요?(123화)“ 반란에 대한 교감의 이 발언이 폭로되자, 무시당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정문여상 학생들은 교실 문에 못을 박은 채 학교에 살기 시작한다.


    부실 압수에서 시작해 학생회장의 사고와 교감(으로 대표되는 학교 측)의 무시로 확대된 학생과 학교 간 갈등의 핵심엔 ‘학교라는 공간이 누구 것이냐’는 질문이 있다. "학교는 우리 거라고. 선생들이 맘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게 빡치니까. 우리가 없으면 학교도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136화)“라는 김민주의 대사는 이 핵심을 잘 보여준다. 학교는 선도부를 통해, 학생주임을 통해, 정학과 퇴학이라는 추방 제도와 부실 압수라는 공간 점유를 통해 끊임없이 학생들을 진압하려 들고, 학생들은 다양한 반란을 통해 길들여지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규율을 따르지 않고, 학교에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물리적으로 공간을 점유해도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 마지막까지 학교에 남은 '요주의 인물들'은 어떻게든 이 문제로 주목을 끌어보고자 영상을 올리지만, 영상은 비웃음거리로 그친다. '어그로'를 잘 끌기로 유명한 유튜버를 섭외해 찍은 인터뷰는 짜깁기되어 나가고, 그중 살아남아 퍼진 이야기는 누군가 지나가듯 꺼낸 ‘학교가 학생회(선도부) 몇몇 아이들을 위해 점수를 조작했다’는 내용뿐이다. 학교를 두고 벌어진 학교와 학생 간 전례 없을 세력 싸움은 ‘입시 비리’로 축소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덕분에 주목받으며 점거는 허무하게 일단락된다.


    이처럼 이야기의 전개는 다분히 현실적이다. 혁명은 낭만화되지 않고, 반란은 반란으로 끝나며, 사회는 학생들의 주체성에 주목하지 않는다. 사건의 전개뿐만 아니라 학생 개개인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가출 청소년, 동네 미용실이나 식당집 딸, '조선족', 중산층 가정의 문제아 등 다채로운 정문여상 학생들의 배경과 성격은 무심한 대사 한 줄부터 학교 밖 일상의 에피소드까지, 다양한 방식을 통해 구체적이며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험한 동네의 꼴통 특성화고 학생들을 향한 사회적 인식도, 이를 인지하는 학생들의 태도와 각자의 고민도,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이 무겁고 숨 막히는 배경에서 때로는 명랑하게, 때로는 과격하게 날뛰는 입체적 캐릭터들은 이야기 전체에 다면성과 생동감을 부여한다.


    웹툰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점은, 서사도 인물도 철저히 여자 중심이라는 것이다. 싸움도, 우정도, 연애도 여자들끼리 한다. 이성 연애가 없는 세계관은 아니다. 굳이 다루지 않을 뿐이다. 캐릭터의 다양성에는 당연히 성적 지향도 포함되어 있고, 현실적이게도 호모포비아 역시 있으며, 이들의 갈등이 하나의 에피소드로 다뤄지기도 한다. 다양한 인간군상 중 하나이자 사람이 가진 여러 속성 중 하나로 그려지는 퀴어와 호모포비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연애 중인 레즈비언도, 짝사랑 중인 레즈비언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살벌하거나 귀여운 에피소드나 배경으로 지나간다.


    날뛰는 여성의 몸과 야생성, 퀴어함이 가득한 웹툰이 국내 대형 포털 사이트에 당당히 연재되고 있다는 사실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전부터 다양한 여성/퀴어 웹툰을 본 독자라도 괜히 감개무량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소녀들의 일상, 성장, 이성애 로맨스 류가 많은 여성 청소년 학원물과 전혀 다른 이 웹툰은 학원물이라기 보단 넷플릭스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2013~2019)에 가까워 보인다. 대개 남성의 몸을 통해서 그려지던 류의 다면성을 십 대 여성으로 재현하는 이 웹툰은, 단순히 성별만 바꿔놓은 게 아니라 정교한 시선으로 다양한 '여고생'과 '여성 청소년' 캐릭터를 구축하며, 오히려 이제껏 남성을 통해서만 재현된 다면적 인간상이 부자연스러웠다고 느끼게 한다. 그간의 로맨스가 이성애로만 그려졌던 것이 부자연스러웠던 결과 같다. 그리고 이내 독자는 이 다채로운 몸들, 순종하지 않는 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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