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불상을 보러 간 적 있다. 소원을 빌자고 했다. 나는 욕심쟁이라 소원을 잔뜩 빌었다. 마지막은 사랑을 잃지 않게 해달라는 거였다. 사랑을 잃지 않게 해주세요. 사랑할 힘을 잃지 않게요.
조는 늘 잔소리가 많았다. 공부해라, 뭐 해라, 뭐는 하지 마라.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반수했을 때는 뭐랬더라. 수능 날 아침에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 앞으로 온 게 기억난다. 걔는 걱정도 많았다. 집회에 간다는 말에 잡혀가면 어떡하냐고 했다. 활동가로 살 것 같다고 하자 ‘네가 하려는 일은 죽을 때까지 싸워도 성과가 없을지 모르는데,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을 때 네게 남은 게 늙고 병든 몸과 가난뿐이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우린 서로를 잘 알았고 하나도 몰랐다. 나는 묻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않았고 걔는 빼먹지 않고 질문했다. 대답하면 어떤 날엔 독한 잔소리가, 어떤 날엔 눈물이 돌아왔다. 걱정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일들이 걔한테는 걱정거리였고 나는 울지 않는 일들이 걔한텐 울 일이었다. 그건 내게 어떤 발견이었다.
치리와 돌은 반대였다. 뭘 하든 말든 내버려 뒀다. 같이 있으면 늘 내가 더 말이 많았다. 카페에서 밤새 수다를 떨거나 취해서 잠들 때까지 술을 마셨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걔네는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배가 터질 때까지 안주를 먹다가 졸린다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럼 걔네는 꺽꺽대며 웃었다. 우리의 대화에는 대체로 실없는 농담과 냉소가 함께 했다. 조롱에 망설임이 없었고 ‘그건 아니야’에 거리낌이 없었다. 어떤 책의 구절처럼 세상이 거대한 농담이었다. 걔네는 툭하면 먹거리를 싸 들고 우리 집에 왔다. 백신을 맞았을 때도 수술을 한 후에도 왔다.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뒹굴며 나를 보살폈다. 병원에 갈 때도 이사를 할 때도 함께 했다. 그건 매번 어색했고 어색한 만큼 좋았다. 걔네를 통해 기대는 법을 알았다. 너무 기댄다 싶으면 말해, 라고 하면 그렇게 기대나 보고 말해, 라고 했다. 늘 곁에 있는 무심함 앞에서 나는 얼마든지 울 수 있었다.
받는 사랑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날이 받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사랑할 용기는 어디서 나오냐며 울던 나는 이제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곤 한다. 그건 아마 지난날이 친구들에게 받은 사랑으로 차 있기 때문일 테다. 내가 나를 사랑할 줄 모를 때부터 받은 사랑 덕분이다. 생일이면 케이크 앞에서 이들을 떠올리며 되뇌인다. 우리 건강하자. 행복에 가까워지자. 의미 없이 태어나 이들을 만난 게 좋다. 지금 내게 있는 안정감은 다 이들에게 받은 선물 같다.
그 사랑과 안정 위에 활동을 쌓아가며 종종 이유를 생각한다. 왜 하는지, 활동이 무엇을 주기에 계속하는지. 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나 바꿀 거라는 믿음으로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모든 활동은 시민이 해야 하는 일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택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선택이 누군가 보기에 한심하거나 비참한 인생일 수 있다는 인지도 있었다. 대체로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역할은 신념이 아집이 되지 않도록 성찰하고 활동의 과정이 올바른지 점검하며 실천하는 데까지다. 활동의 사회적 기여도는 타인과 역사의 영역이다. 이 영역을 추정하고 분석해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도 실천에 포함되지만, 판단은 나의 몫이 아니다. 그래서 내게는 선택의 이유만이 오롯이 남는다. ‘네게 남은 게 늙고 병든 몸과 가난뿐이면 어떡하냐’는 조의 질문이 지표다. 그 질문에서 떠올리는 게 곧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니까.
언제나 떠오르는 건 활동하며 마주친 얼굴들이다. 괜찮다고 말했을 때 괜찮을 만큼 버틴 시간을 헤아려주던 진의 얼굴. 내 엄격함과 날카로움이 정의를 향해 있기에 인정하고 신뢰한다 말하는 까망의 얼굴. 함께 단체를 운영하며 지지고 볶은 동료들의 모습. 눈물을 글썽이며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던 순간과 웃으며 그때를 말하는 순간의 표정들. 볕 아래, 빗속에서, 눈을 맞으며, 함께 행진하고 춤추고 웃던 몸짓과 노래하던 목소리와 마주친 눈들. 카메라 앞에서, 전경 앞에서, 차벽과 물대포 앞에서 서로를 막아주던 몸과 잡았던 손의 온도 같은 것들. 지금 여기의 서로를 증명했던 수많은 얼굴들이 지나간다. 남는 게 늙고 병든 몸과 가난과 이 얼굴들이면 괜찮을 것 같다. 그 감각을 기억하는 한 계속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할 힘을 어떻게 유지할까. 불상에 소원을 빌던 날 생각했다. 사랑할 힘을 키워준 게 지난날을 꽉 채운 친구들이라면 사랑할 힘을 잃지 않게 해주는 건 저 얼굴들일지 모른다. 그러니 됐다.
커버 이미지 그레타 거윅(2017), 레이디 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