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3년이 더 지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는 술 때문이다.
건강에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술, 담배를 끝내 내려놓지 못하셨다.
우리 가족은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다.
계속 설득도 해보고 정신과 병실에 입원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족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계셨고 아직도 살아계신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버지가 그렇게 병실에 있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셨다.
우리가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오해를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을 거의 돌아가실 때까지 벗어나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이, 그러니까 아버지의 성장 과정이 우리 가족에게 상당한 불행을 안겨준 원인은 아닐까 싶다.
들어보면 장남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좀 귀하게 자란 것 같다.
그런 탓에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의지를 가지고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에는 조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고, 결혼 후에는 직장을 쉽게 그만두었다.
소위 잘 나가는 시절도 있었지만, IMF로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집은 항상 가난했다.
때문에, 어머니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형도 나도 고생을 했지만, 성격도 괴팍한 아버지 옆에서 비위를 맞추고, 생계까지 담당한 어머니에게는 비할바가 못된다. 술 때문에 병원에 몇 번을 입원했을 때 책임지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나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가족들을 괴롭히면서까지 술을 끊지 못하는지.
건강만 지켜달라고 형도 나도 얼마나 많은 격려와 조언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진심으로 받아들이질 못했다. 오히려 화를 내는 때도 있었다.
어느새 우리 가족은 서서히 포기라는 단어를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말릴 수가 없다면, 웃고 떠드는 술자리라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변변한 가족 여행을 가본 적도 없는데,
그래도 돌아가시기 몇 해전에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것이 다행스럽다.
마지막 입원을 했을 때,
아버지도 우리도 그것이 마지막 입원이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괜찮다가 점점 상태가 악화되었고,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버지를 모실 곳을 보러 가던 중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차를 돌렸다.
거의 마지막 조치로 아버지는 정신이 조금 돌아온 상태로 앉아있었고,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둘러싸고 마지막 말을 건넸다.
그때, 아버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 서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정말 많은 한이 맺힌 사람처럼 서글프고 서러운 눈빛이었다.
슬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급속도로 받아들이고 계셨던 것 같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정신을 거의 잃으셨고, 며칠 뒤 어느 해가 잘 드는 날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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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좋은 일이 너무 많이 생겼다.
그래서 너무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희망을 가지고 버티셨으면, 그렇게 기다리던 일들을 보셨을 텐데..
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릴 때부터 많이 맞고 자라기도 했고, 잘하려고 해도 그 노력만큼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를 많이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지만, 다시 돌아가도 그럴 것 같다.
아버지는 항상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성격이 날카롭게 태어난 데다, 귀하게 자란 배경도 사회에 나온 아버지에게는 불리한 점이 아니었을까.
왕으로 태어났으면 모를까 세상은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으니 말이다.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에서, 직업도 없는 외로움을 술로 달래어왔던 건 아닐까..
나름대로 효도를 했다고 생각해서, 후회나 아쉬움 같은 건 없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돌아가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아픔 중 하나로 남아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너무나 안타까운데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도돌이표처럼 돌고 돌아온다.
결국, 나는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조금만 더 좋은 아버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럼 저는 그보다 몇 배는 더 아버지를 사랑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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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신 얼마 후 꿈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병실에서 다른 아저씨들과 함께 계셨고, 나는 그곳에 마련된 술상에 어떤 아저씨와 앉아있었다.
살이 꽤 많이 찐 아버지는 반갑다는 내색 없이 뒷짐을 진 채로 주변을 배회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반가웠다.
죽음을 받아들일 때 아버지의 그 서러운 눈빛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