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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knight Aug 11. 2024

8년을 만나고, 3년을 잊었다.

"쿵"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을 거다. 아마.


이른 토요일 아침,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다시 그녀를 보러 왔다.

항상 주고받던 사랑한다는 답장을 못 받은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비행기 차창 너머 광활한 활주로를 바라보며 속말을 삼켜본다.


"내 마음이 이런 걸.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지난주에 그녀를 만나러 왔었다.

다른 사람 때문에 흔들린다는 말을 듣고 감당이 되지 않아서,

잠도 들지 못하고 새벽 비행기를 타고서.

흔들리는 그녀를 간신히 붙잡고 며칠을 그녀와 함께 있었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서 그녀를 지켜본 결과 완전히 마음을 돌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불안했다.


내가 다시 돌아간 뒤 며칠 후, 그녀는 밤샘 작업이 있다고 했다.

아침까지 연락을 하고, 잠들 그녀를 위해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사랑해"

"응"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았다.

온몸의 세포가 다시 그녀를 만나러 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결국,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토요일 김포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녀를 위한 편지와 함께.



그녀의 원룸 앞으로 가서 편지를 문틈에 꽂아놓고 카페에 가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밤샘 작업으로 자고 있을 테니.


그런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는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왜 두 남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


순간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되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생각은 정리가 안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것 같다.


비밀번호를 눌러 들어가려 했으나 잠금장치를 하나 더 걸어두어 열리지 않았다.

결국 내가 했던 행동은 이름을 부르짖으며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잠시 후 카톡이 왔다. 기다려달라고..


이 순간에도 더 이상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기다리는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그래도 이성이 남아있었던 건가. 이런 상황에서도. 차라리 이성을 잃고 싶었다.


밖으로 나온 건 두 사람이었다.

나는 한 사람만을 기다렸건만..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뻔했다.

그녀의 새로운 남자는 나보고 가라고 오히려 소리쳤다.

잠깐의 몸싸움 후에야 나는 그녀와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카페로 가는 길,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왜 우냐며 화를 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울고 싶은 건 나였으니까..



카페에 앉아서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순간이 오니 지금이라도 그녀를 잡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하게 들었다.

나는 선택을 요구했고 그녀는 결국 새로운 사람을 선택했다.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것 같다고 했다.


울고 싶은데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마음속이 참담했다.

나는 마지막이라도 잘 정리를 하고 싶었던 걸까.

마지막 순간에 잘 보여서 좋은 게 대체 뭘까..

차라리 뺨이라도 때렸으면 어땠을까.


그녀는 괜찮겠냐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걱정되면 나를 선택해 주면 안 되는 건가..

이제 보내야 하는 시간인 것 같았다.

그녀는 오빠는 스스로 자부심이 있으니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이렇게 이야기해 줬다.


"8년 동안 내 자부심은 너였어"


그녀는 울컥했지만 끝내 선택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나갔고, 나는 차마 돌아볼 수 없었다.



이별은 너무 힘든 것이었다.

외적으로는 괜찮아 보였으나 내적으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었다.


이별 소식을 알게 된 지인들이 나를 위로했다.

술을 마시다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울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제 헤어졌으니 깨끗이 잊어야 하는데.

나는 생각보다 멋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질한 놈이었다.

헤어졌음에도 나는 그녀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계속해서 연락을 했고,

마침내는 제주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버렸다.


서울로 돌아와 그녀를 만나고 난 후에서야 이성적인 고민을 시작한 것 같다.

그건 그녀와의 관계를 다시 되돌리는 것이 맞느냐에 관한 생각이었다.

그녀가 새로운 사람과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다는 그 말이, 이상하게 나로 하여금 포기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 말을 핑계로 이제 끝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상태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조금 나아진 상태라는 것이,

사실은 여전히 힘듦을 의미하기도 했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가끔씩 울컥하고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마치 그녀가 마음이 아파서 그녀의 고통이 나에게 옮겨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그녀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상태에서, 나도 새로운 인연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머리 스타일도 바꾸고, 옷도 잘 입으려 하고, 운동도 시작했다.

왠지 버림받은 것이 외모적인 이유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권선징악적 이론이 연애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그녀는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나의 연애는 쉽게 시작되지 못했다.

그런 현실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지인들에게 그녀도 힘들 거라고 했지만, 힘든 건 오롯이 나의 몫인 것만 같았다.


세상에 이런 법이 또 어디 있을까.



아직 그녀와의 연결고리는 하나 남아있었다.

그녀의 사진첩을 내가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언젠가 사진첩을 돌려줄 때가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포스트잇에 그날의 감정을 적어,

사진첩 속의 사진 뒷면에 하나씩 붙여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멀리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만나자고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사진첩을 돌려주겠다는 핑계로.


나는 잘 보이고 싶었다.

스타일도 예전과는 달라졌고, 운동으로 다져진 몸도 그럴듯했다.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부정도의 인사를 나눌 수는 있었으나 확실히 연인일 때처럼 살갑게 대할 수는 없었다.

나도 내 마음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잘 알지 못하겠다.


그녀가 보고 싶었던 걸까,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사진첩을 돌려줄 때라고 생각했을까.


그녀와 이별할 때쯤,

그녀의 눈두덩이 붓는 증상이 있었다.

그녀는 그 증상이 더 심해졌노라고,

자기가 벌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내가 아는 권선징악적 이론은 그녀의 눈두덩이로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이상하게 내 마음도 차분했다.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미련을 남길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카페에서 금방 헤어지고 나는 맥주 한 잔으로 그날을 갈무리했다.


집에 도착하니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사진첩 속에 나의 메모도 다 보았노라고. 그리고 항상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눈치 빠르다는 말과 함께 유쾌하게 넘겼다.

마지막 메모는 이런 내용이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한 눈 팔지 못할 정도로 내가 더 잘해줄게"


왠지 그냥, 이렇게 적당히 좋은 사이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인생은 굴곡지다.

항상 좋을 수도 없고, 항상 나쁜 것만도 아니다.

나도 그렇게 굴곡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여전히 가끔씩 그녀를 생각하면서.


그러다 차마 참지 못할 때는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말았다.

그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좀 뜬금없었을 것 같다.

나는 참다 참다 하는 연락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오는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그녀와 나의 감정 그래프는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점점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날은 보고 싶노라고 고백도 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


그 이후의 연락에 그녀의 답장은 짧고 형식적이었다.

나는 수치심을 느끼기까지 했다.


어쩌면 나는 그녀가 나를 천천히 잊어가도록 도와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차라리 연락을 아예 끊어버렸다면, 가끔 아리게 생각나는 사람 정도로 남지는 않았을까.



그녀에게 연락을 완전히 끊을 수 있었던 때는, 이별 후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이후,

그러니까 1-2년 전,

그녀의 카톡 프로필이 결혼사진으로 바뀐 것을 보기 전까지는 평화로웠다.


그녀의 결혼사진을 보고,

동요하는 내 마음을 살펴보며,

내가 뭘 원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후회하기를 원했다.

나를 찾아와서 오빠랑 헤어진 걸 후회한다고, 미안하다고,

그렇게 후회도 하고 용서도 빌기를 원했음을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8년 동안의 내 사랑은 참으로 불공평했다.

그녀가 버리고 간 시간이 나에게는 3년 동안 빠져나올 수 없었던 늪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극복하고 살아가고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지금 다시 그녀를 만나겠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 다시 만나겠냐고 물어본다면, 만나겠노라고 답하겠다.

나의 젊은 날에,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행복했었는지,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참 많이 싸웠지만, 생각해 보면 싸운 이유는,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어서, 나를 덜 사랑해 주는 것 같아서..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이렇게 말을 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어서, 너무 화가 나"


그건,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던 청춘의 성급함과 뜨거움 때문이었을까.


가끔 과거의 상황을 가정하기도 한다.

내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차라리 연락을 안 했다면 어땠을까,

사진첩을 돌려주러 나갔을 때 그녀를 잡았다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그녀가 배신했던 사실을 내가 평생 묻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녀와의 이별이,

우리의 마지막이,

이것보다는 조금 더 아름다웠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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