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혁명 시대의 아이들을 키우는 '라떼 부모'의 문제성
지난 9월, 저는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나이 마흔에 입학하여 한 학기 동안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까지 우물 속에서 살았다는 느낌
두 번째는, 저의 덜떨어진 독해능력에 대한 충격적 자아반성
저는 이름도 거창한 "생명교육 융합학과"에서 철학을 기반으로 논문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경영학과 홍보학을 기반으로 한 커리어를 쌓았고, 책도 역시 경제경영서나 자기 개발서 위주의 독서를 해왔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몇 년 전까지의 일입니다.
자기 개발서는 개뿔. 몇 년간 육아의 늪에서 독서를 게을리하고, 폰을 친구 삼아 살다 보니 긴 텍스트에 대한 독해능력이 거의 멍청이 급입니다. 소설도 웹소설을 주로 읽다 보니, 대사 앞에 등장인물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으면 주인공 이름도 까먹습니다. 예를 들면, 노인과 바다는 노인의 말 앞에는 노인 얼굴이 떠있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요.
노인이 청새치를 잡을 때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라는 문구가 뜨며 근력과 체력과 민첩성의 스탯이 올라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요. 저 현판 마니아예요.
그랬던 제가. 작년 9월부터 맘 잡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철알못이었던 제가 철학을 기반으로 한 생사학 수업을 들었을 때는 마치.. 머리를 인두로 지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을 읽는데 독해는 안 되는 이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은, 안 되는 독해 속에서 한 단어 한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철학에 빠졌고, 철학을 하다 보니, 그 시대의 역사를 모르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철학과 역사에 빠져들었습니다. 무슨 느낌이냐면... 집 앞 슈퍼에서 진품 에르메스 가방을 10만 원에 땡쳐리 하고 있는데, 몰랐던 기분이랄까요?
그렇게 어리바리하다 한 학기가 지났습니다. 이제 대학원생의 겨울방학이 왔습니다. 겨울방학 동안 제 목표는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자" 여기서 다른 사람이란 과거에 살았던,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지성인들입니다. 가급적 고전을 많이 읽고, 독서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현재, 이런저런 고전 정독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부터는 철학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이름도 거창한 "4차 혁명시대, 학부모를 위한 융합 독서토론"이라는 주제의 ZOOM 강연회에도 참석했습니다. 무려 6주간 진행되는데요. 어제의 깊은 감동을 짧게라도 공유하고 싶습니다.
한양대학교 김호연 교수님께서 진행하셨습니다.
어제 강의의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융합의 핵심은 관계와 소통이다. 관계와 소통의 핵심은 공감 능력인데,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이다. 융합의 시대의 핵심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아느냐와 누구를 아느냐의 시대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철학과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 지난 학기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며 큰 울림을 느꼈기에 더 공감했습니다.) 과학은 객관적 사유에만 근거한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자가 판단을 할 때 본인의 경험과 시각을 기반으로 할 수 있는 "관찰 이론 적재성"의 문제가 생긴다.(즉 사람은 보는 대로 보려고 한다는 것이죠. 고정관념은 편견을 만들고 편견은 차별을 만드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우리는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피의 역사를 알고 있다. 사회적 통념을 깨는 것은 이처럼 힘든 일이다. 즉 "세계관은 사실에 앞선다." 사람들은 세계관으로 사실을 바라보지, 사실을 근거로 세계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어떤 통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깨닫는 것부터가 인생 공부의 시작인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때, 사실에 근거해서 보지 않고, 나의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미 내가 무엇인가를 판단을 할 때 그것에 주관적 사유가 결합된다는 것입니다. 지성인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싶다면, 나는 어떤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자녀 양육의 문제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평가하고 있는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81년생 나의 고루하고 낡은 돋보기 안경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 단점만 커 보이는 그런 비정상적인 돋보기안경 말입니다.) 세상을 살며 쿨해지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아. 너는 빨간색 안경을 끼고 있구나 라고 인정해주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나만의 아집과 고집으로 누군가를 설득하고 비판하고 있다고 느낄대는 '판단 유보'가 필요합니다. 잠시 생각을 멈춰 보는 거죠.
유명한 그림책 '핑크 대왕 퍼시'입니다. 핑크를 사랑하는 퍼시 왕은 세상을 온통 핑크색으로 물들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다 핑크색으로 채워도.. 하늘만은 핑크색으로 칠할 수가 없습니다. 왕의 권세로도 하늘은 핑크색으로 칠하지 못하는 거죠. 그때 그는 스승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스승님은 퍼시에게 핑크색 선글라스를 선물로 줍니다. 퍼시는 핑크색안경을 끼고 아주 만족한다는 내용입니다.
주변에는 이렇게 강요하는 어른이 참 많습니다.
후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나의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마치 그것이 옳은 일인 양 강요하는 '라떼형 어른'들 말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 일 수 있는데, 부모와 자식 간의 이런 끈끈함을 넘어선 질척이는 강요와 순종형 관계를 우리는 심리적 공생관계라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그 각각은 각자의 소망에 따라 살아가는 독립적인 존재 입니다. 그런데, 부모는 자녀에게 집착을 하게 되고 이러한 비틀린 심리적 융합을 통해 자녀를 자신의 일부로 인식합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입니다.
초등 때 특정 스텟을 빨리 등업 하지 않으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없을 것처럼 불안해하고 아이를 라떼의 강으로 밀어 넣습니다. '레테의 강'보다 더 무서운 강 '라떼의 강' 말입니다.
망각보다 더 무서운 것은 편향된 '시각'입니다.
차라리 라떼형 어른으로 살아가느니, 다 까먹고 다른 사람을 존중해주는 레테형 인간이 나을 것 같습니다. 천동설의 눈으로 지동설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오늘입니다.
*레테의 강: 레테란 저승을 흐르는 망각의 강과 그곳에 머무는 망각의 여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누구라도 그 강물을 마시면 살아있을 때의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레테라는 이름은 ‘망각, 기억의 상실’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레테 [Lethe]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