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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Jan 27. 2021

어느 또라이의 죽음

고골의 『외투』를 통해 바라본 나의 자화상

명품 가방에 열광했던 30대 초반 시절 대학교 친구 모임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저마다 신상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한 명씩 모일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새 가방에 감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탄해 주었다.)그리고 마지막 친구가 등장했고, 그녀는 오늘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녀는 샤넬 캐비어를 매고 온 것이다.      


‘물건’은 우리의 인생에서 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오늘 내가 읽은 책은 러시아문학의 거장 고골의 『외투』이다.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살다 나왔다.
도스토옙스키는 고골을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기 전에 이 위대한 작가 고골의 인생을 둘러보면, 독자들이 요구하는 전형적인 천재적 예술가의 클리셰를 따르고 있다.      


우울한 천재였던 그는 일찍이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유명해졌으나 정신착란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본인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했으나, 스스로 불태운 후 10일간 단식을 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천재와 거리가 먼 소설 외투의 주인공 아끼끼 아끼끼예비치의 인생은 어떠했나. 이렇게 한 줄로 표현해도 하등 이상할 그것이 없는 인생이다.      

‘아끼끼 아끼끼예비치는 태어났다가 외투 한 벌로 행복했으며 불행했고, 죽었다. 끝’     

그는 더는 기우고 덧댈 수 없는 헌 외투 때문에 악착같이 돈을 모아 외투 한 벌을 마련한다. 그 외투 한 벌을 위해 저녁을 굶고, 속옷이 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집에서는 속옷을 입지 않은 채 가운을 입고 버틴다. 그렇게 한 벌의 외투로 그의 인생은 완벽히 바뀐다.      

아끼끼 아끼끼예비치는 미래의 외투에 대한 끝없는 이상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그 자신의 존재가 보다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한 것 같기도 하였으며,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혼자가 아니라 일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 마음에 맞는 유쾌한 반려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 동반자란 다름 아니라, 두꺼운 솜과 해지지 않는 튼튼한 안감을 댄 외투였다. 그에겐 웬일인지 생기가 돌았고 이제 스스로 목표를 정한 사람처럼 성격이 보다 강인해졌다. 그의 얼굴과 행동에서 보이던 불안과 우유부단함이, 언제나 망설이기만 하던 불확실한 특징이 이제 사라졌다. 때때로 눈에서 불꽃이 보였고, 머릿속으로는 아주 뻔뻔스럽고 대담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외투로  하루 행복했으며, 도둑맞았고 화병이 나서 죽어버린다. 서평가 금정연은 주인공을 또라이라고 표현한다. 놀랍도록 금욕적인 또라이. 그리고 외투한 행복했으며 죽었고, 도둑맞은 외투의 복수를 위해 유령이 되어 돌아온 또라이.

외투를 향한 그의 기괴한 사랑을 고골은 블랙 코미디로 그렸고, 우리는 그를 또라이라고 비웃지만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인생은 과연 그와 다르다고 감히 말 할 수 있을까?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중 상당수는 돈을 벌어 35세에 은퇴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 회사에 들어가 힘들게 일한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거액의 주택 융자, 학교에 다니는 자녀,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는 교외의 집, 정말 좋은 와인과 멋진 해외 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들이 뭘 어떻게 할까? 뿌리채소나 캐는 삶으로 돌아갈까? 이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한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작품 속에서 아끼끼 아끼끼예비치에게 외투는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었지만, 그는 단지 물건에 불과한 그것으로 인해 정신적 포만감을 느꼈고, 자신이 완벽해진 느낌을 받았으며, 일생을 함께할 완벽한 동반자로 느끼기 까지 했다. 그리고 그것을 잃고 화병이나 죽어버린다.


우리는 그를 비웃지만,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도진개진이다.

현대인은 아이폰 12에서, 에르메스에서, 벤츠에서 그리고 강남 입성과 오션뷰 호텔에서 정신적 포만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인스타에 흘러넘치는 사치품 속에서 우리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엿보고 내 눈앞의 시시한 물건들에 낙담하며 인생을 한탄한다. 오히려 아끼끼 아끼끼예비치의 인생은 소박하기까지 하다. 그는 자신의 외투를 남과 비교 하지 않는다. 비버 털이 달리거나 옷깃에 벨벳을 댄 것과 비교 하지 않고, 고양이 가죽을 덧댄 외투에서 만족한다. 그는 외투가 좋은 이유에 두 가지를 언급한다. ‘따뜻하다’ 그리고 ‘기분이 좋다.’

여기에는 ‘남의 것보다 비싸다’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비교만 하다 죽는 인생은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로 지라도 작품  인물보다도  가엽고 보잘것없는 인생이다. 그들은 주인공처럼   벌에 기분이 좋아질  없다. 오직 ‘남보다 비싼 에만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캐나다 구스라도 입은 친구의 등장으로 바로 의기소침 해져버리고, 앞서 이야기한 나의 이야기처럼 모든 가방 앞에서 샤넬만이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가방의 편리함 따위는 필요 없다. 샤넬을 이길 자는 에르메스뿐임으로.


오늘의 나는 강남에서 멀리 떨어져 강원도에 있는 나를, 비교하는 삶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스스로 거들먹거리고 있지만, 실상은 별반 차이가 없다.  까놓고 이야기해 나는 오늘도 나를 비교하며 애달픈 인생을 연명하고 있다. 나보다 잘나가는 친구.  아이보다 잘난 친구의 아들 그리고 번쩍이는 벤츠의 엠블럼에 완벽히 당당하다고   하겠다.


이렇게 살다가는 나 역시 희극의 주인공이 될 것이 뻔하다. 평생을 남들 사는 대로 총총거리며 살다 늙어 죽음. 이것이야말로 가장 우습고 모자란 또라이의 최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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