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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Apr 20. 2021

아산 정주영 '이땅에 태어나서' 독후감 은상 수상

고속도로와 흙길

본글은 아산재단에서 열린 2021년 아산 정주영 20주기 추모 '이땅에 태어나서'독후감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글 입니다. 

감사하게도 부족한 글로  큰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 번도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을 살아본 적 없다.      


흙모래가 날리는 길을 달려본 것은 인도에서의 배낭여행이 전부이다. 스무 살의 나는 꼬박 하루가 넘도록 에어컨 없는 버스를 타고 흙길을 달렸다. 버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흙바람이 일었고 더위에 열어 놓은 창문 탓에 입안에서 모래알이 씹혔다. 나에게 비포장도로는 낭만이었지만, 아산 정주영 회장, 그에게는 치열한 삶 자체였다. 흙길에서 태어나 스스로 본인의 길을 개척했으며, 실제로 국가의 척추 역할을 하는 경부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나는 언제나 앞 세대가 피와 땀으로 닦아 놓은 도로 위를 쉽게 달렸다. 가난한 집에서도 가난한 나라에서도 살아본 적 없다. 나에게 그 잘 닦인 도로는 그저 원래 존재하는 것일 뿐 아무 의미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이 도로는 누군가의 아름다운 도전과 피와 땀의 결과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그 길을 달리는 나에겐 감사함 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언제나 당연히 존재하는 것은 사람을 겸손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저 살면서 존재하는 것의 당연함과 결핍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책을 읽어나가며 정주영 회장 그에게 묻고 싶어졌다.


“당신은 왜 지치지 않나요.?”


어쩌면 따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청춘을 가슴에 품고 살지만, 평생을 청춘 그 자체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그에게 왜 지치지 않았는지 도대체 어떻게 평생을 청춘인 채 살아갈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 그의 자서전은 찰나의 청춘을 뒤로한 채 제자리에 머물렀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애써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힘차게 길을 내달리던 청춘 시절이 있었다. 이십 대의 나는 그를 조금 닮아있다. 날카롭게 빛나던 그의 눈처럼 열정으로 반짝였다. 대학 시절 나는 세계를 무대로 하는 마케터가 꿈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며 외국에 가서 공부하는 길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때 부모님께서는 정주영 회장의 부모님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너는 우리 집의 기둥이다. 아래로 동생이 두 명이나 있는데 좋은 회사에 취업했으면 좋겠구나.”


나에게는 왜 도전에 대한 강한 열망이 없었을까!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나만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는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본인의 뜻을 위해 길을 나섰지만, 나는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안전한 선택을 했다. 누구나 다 꿈을 좇아서 살 수 없다고 적당히 타협했다. 그저 가장 몸값이 비싼 나이에 평생을 몸담을 대기업에 들어가면 남들만큼의 행복과 출세는 얻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그것이 효도이고, 내 인생에 대한 깊은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합격한 회사 중에서도 가장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해서 편안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적당한 갑의 위치에서 일하며, 월급날이 다가오면 그럭저럭 행복해지는 삶에 만족했다. 평생 한 직장에 몸을 담을 것으로 생각했건만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군인 남편과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로는 지방 여기저기를 이사하며 끝내 직장을 포기했다. 넓은 세계를 활보하는 마케터로서의 미래는 접어두고, 꿈이란 것은 원래 가져 본 적 없던 사람처럼 무심하게 살았다.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 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의 꿈에는 무뎌졌다. 나는 적당히 비겁했다.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고 변명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냥 그것은 용기 부족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여든이 넘도록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무모하다는 말을 듣지 않고 시작한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무모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지 않은 길을 택하기보다는 안전한 길을 택하는 인생을 살았다. 군중 속에 섞여서 남들이 취업할 나이에 일자리를 잡고, 남들 결혼할 때를 놓치지 않는, 다음 수가 눈에 뻔히 보이는 삶을 선택했다. 지난 인생은 그저 군중 속에 무색무취로 섞여서 남들이 이끄는 대로 혹은 남들이 뒤에서 미는 대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휩쓸리며 살아갔다. 그러다 탈이 난 것은 이 년 전 일이다. 꼭꼭 숨겨두었던 열정이라는 놈이 불쑥 고개를 쳐들어 나를 괴롭히며 몸과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숨쉬기 힘들 만큼 아팠지만, 병원에서의 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원인은 모두 마음에 있었다. 나의 인생은 잘 닦인 고속도로 같았지만, 나만의 속도를 즐기지 못하고 다른 차들의 빠른 속도에 기가 질려버린 것이 원인이었다. 푹푹 찌는 아스팔트에 넌덜머리를 냈고, 이미 앞서 출발한 모든 이들을 시기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떤 시작도 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못 하겠다는 핑계를 대기 딱 좋은 나이였다. 특히 무엇인가 시작하기엔 말이다. 항상 종잣돈을 모아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나의 시간이라는 자본금은 무시한 채로 살아갔다. 책에서 그는 ‘시간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자본금’이라는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신념을 위해 최선을 다한 노력을 쏟아부으며 이 평등한 자본금을 열심히 잘 활용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평생 일만 쫓아다니느라 바빠서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새겨질 어떤 고귀한 철학을 터득하지도 못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본인의 인생에 온전히 몸과 마음을 던진 이는 삶 자체가 곧 철학이 된다. 자서전을 읽으며 아산 정주영 회장의 삶 자체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시간이라는 자본금을 현명하게 투자하며 불려 나갔지만 나는 무의미하게 허비했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마다 주춤거렸음을 알게 되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포기했고,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내 사업을 가질 꿈보다는 이미 잘 가꿔진 편안한 회사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제자리에 머물렀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충분히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맥주 한 캔과 TV 드라마로 시간을 채워나갔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에 무뎌졌다. 열정에 무뎌졌고, 세상에 뒤처졌다. 세상과 내가 사는 공간 사이에 점점 시차가 벌어져갔다. 세상은 환한 대낮인데, 나만이 깜깜한 밤이었다. 세상은 앞으로 뛰어나가는데 나만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뒤로 달리는 것 같은 기묘한 거리감과 사람들과의 시차로 머리가 어질거렸다. 나는 살고 싶었고, 살기 위해서는 삶의 무기력에서 벗어나야 했다.     


‘내일은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있고, 10년 후는 지난 10년을 어떻게 살았느냐의 결과이다.’ 그의 말처럼 나의 십 년 뒤를 위해 몸을 던지기로 했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없다 하면 거짓말이지만, 이제는 잊어버리고 다가오는 나의 세상을 위해 힘차게 달리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많은 자산이 있다. 시간과 열정을 다 쏟아부은 만큼 나의 아이들은 씩씩하게 잘 커 주었고,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을 만큼 강한 ‘세상을 향한 목마름’이 있다. 정주영 그가 말한 열정을 나는 지금 다시 느끼고 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그 희망이 내 눈을 반짝이게 했고, 작년 9월 용기를 내어 지난날 포기했던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제는 내 상황을 핑계로 뒤로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다시 희망을 꿈꾸자 어느 순간 나의 몸과 마음이 평안을 되찾았다. 

정주영 회장은 평생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이봐, 해봤어?” 


주변에서는 지금 대학원에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냐고 물었지만, 이제 다른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난 학기는 모든 수업이 소중했다. 배움은 오랜만에 만난 샘물 같았다. 오랜만의 지성적 대화도 좋았다. 아이들 공부 이야기에서 벗어나서 좋았고, 드라마에서 맴돌다가 기껏해야 부동산 이야기로 넘어가는 매번 같은 이야기에서 벗어난 진짜 ‘어른들의 대화’가 좋았다. 나는 바로 전날까지 문맹이었던 사람인 것처럼 책을 읽었다. 톨스토이가 카뮈가 그리고 그 수많은 문장가와 철학자들이 나와 같은 고민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십 대였을 때와는 결이 다른 열정과 깊은 통찰이 느껴졌다. 만약 그의 말처럼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지 않았다면 나는 그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했고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도전은 배부른 고민이라고 치부하고 어쩌면 또다시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또다시 시간이라는 자본금을 함부로 써가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지난 세월 속에서 물론 회한도 생겼고 마음의 앙금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과거의 불행이 아니라 앞날의 희망을 말하고 싶다’


정주영 회장의 말처럼 나 역시도 지난 시간이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나 역시도 시련을 넘어서는 희망을 말하고 싶다. 그에게는 온갖 시련이 있었지만, 그것을 항상 더 큰 기회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제일의 미곡상을 꿈꿨던 경일 상회를 쌀 배급제 때문에 접어야 했고, 자동차 수리공장이었던 ‘아도서비스’는 화재로 잃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위기를 더 큰 기업으로 만드는 기회로 썼다. 고령교 복구 사업은 어떠했는가?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공사를 마무리했기에 신용을 얻고 그 후 정부 공사를 수주하게 되었다. 나 역시도 엄마로 있던 지난 십 년 덕분에 더 깊어지고 단단한 내가 되었다. 그뿐인가,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이렇게 공부를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인생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그는 이야기를 마치며 이런 말을 한다. ‘이 땅의 밝고 새로운 희망을 위하여, 젊은이들 그리고 시련에 빠진 오늘의 많은 사람과 더불어 이러한 나의 살아온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그의 바다처럼 거칠고도 깊은 인생 앞에서 나의 지난 몇 년을 시련이었다고 감히 말하기 힘들지만,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의 도전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야기했다. 일에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없다.

평생을 청년 그 자체로 살아갔던 그처럼 용기를 내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려 한다. ‘한 걸음 두 걸음씩이라도 우리는 매일 발전해야 한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제 시작이다. 그동안 내딛지 못한 발걸음까지 성큼성큼 걷고 있다. 앞으로의 인생은 잘 닦여진 고속도로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산 정주영 회장, 그의 시작처럼 다시 흙길에서 시작이다. 이제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고속도로가 아닌 온전히 나만의 길을 달려보려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그와 같이 말하고 싶다. ‘더하려야 더할 것이 없는 마지막까지의 최선’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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