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엄지 공주'
아이를 무척이나 갖고 싶어 하는 부부가 있었어요
둘은 매일 기도 했답니다.
“저희에게 아이를 내려주세요. 작아도 된답니다. 아주 귀하고 행복하게 키우겠어요.”
다행히 부부에게 기다리던 아이가 생겼어요. 두 부부는 손을 꼭 잡고 기뻐했어요.
“우리 이 아이를 행복한 아이로 키워요. 아이의 이름은 우리에게 최고라는 뜻으로 ‘엄지’라고 지읍시다”
엄지는 출산 예정일보다 아주 조금 늦게 태어났지만, 몸무게는 신생아의 평균보다 아주 조금 작았어요. 걱정하는 부부에게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어요.
" 엄지가 아주 조금 작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주 튼튼하게 태어났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두 부부는 의사 선생님 말씀 중 ‘조금 작다’는 것만 생각하며 매일 걱정을 했답니다.
엄지는 다른 아이들보다 아주 조금씩 느렸어요.
아주 조금 늦게 뒤집었고, 아주 조금 늦게 앉았어요. 그리고 아주 조금 늦게 걸었답니다.
엄지의 부모는 크게 걱정을 했답니다.
“어쩌죠? 우리 엄지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너무나 뒤처지는 것 같아요”
조금씩 뒤처지는 엄지를 최고로 키우기 위해, 엄지의 엄마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아빠는 엄지를 더 잘 키우기 위해 더욱더 많이 그리고 오래 일했습니다.
엄지는 무럭무럭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엄지는 초등학생 평균보다 아주 조금 작았어요.
엄지의 부모는 크게 걱정을 했답니다.
“어쩌죠? 우리 엄지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너무 작은 것 같아요”
엄마는 엄지에게 몸에 좋다는 약은 뭐든지 먹였고,
아빠는 엄지를 위해 더욱더 많이 돈을 벌었답니다.
엄지는 학교에서 모든 게 아주 조금씩 느렸어요.
덧셈도 아주 조금 느렸고, 뺄셈도 아주 조금 느렸어요. 글을 읽을 때도 조금 느렸답니다.
엄지의 부모는 크게 걱정을 했답니다.
“어쩌죠? 우리 엄지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것 같아요”
엄지의 담임 선생님은 엄지의 부모님께 말했어요.
"엄지가 셈을 하거나, 글을 읽을 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아주 조금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아주 밝은 아이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두 부부는 선생님 말씀 중 ‘늦은’이라는 단어만을 생각하며 계속 걱정했답니다.
중학생이 된 엄지는 여전히 다른 친구들보다 아주 조금 작았어요.
하지만 이제 두 부부는 아주 조금 작은 것은 더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대신 엄지의 성적이 평균보다 아주 조금 모자라는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일찍부터 학원에 보냈어야 했나 봐요. 이제부터라도 우리 엄지를 위해서 아주 좋은 학원을 알아보도록 해요.”
엄지는 햇볕 마을에서 가장 많이 명문대를 보내기로 유명한 ‘두더지 입시학원’에 들어갔습니다.
학원 이름이 두더지 학원인 이유는 한 가지였어요. 두더지처럼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절대 밖으로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두더지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방학이면 새벽 별을 보고 들어가서 밤이슬을 맞으며 나와야 했답니다.
가끔 두더지 학원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힘겹게 살아가는 외국 아이들의 영상을 보여주었어요. 아이들은 온종일 돌을 나르거나, 카펫 공장에서 일해야 했어요.
선생님께서는 너희들은 행복한 줄 알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지만, 엄지는 삼시세끼 먹는 것 말고는 도무지 자신이 뭐가 나은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은 용기를 내어 이 지긋지긋한 두더지 입시학원에 더는 다니기 싫다고 부모님께 이야기한 적 있었어요.
엄마 아빠는 엄지를 나무랐어요.
“허튼소리, 고집부리지 마라. 두더지 학원에서 잘 버티기만 하면 넌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게 되는 거야. 세상에서 뒤처지면 끝장이야. 평생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천년만년 엄마 아빠가 살아있을 것 같아? 명문대만 간다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하렴!”
엄지는 부모님의 말을 믿을 수 없었어요.
엄지는 햇빛이 절대로 들지 않는 학원에서 영원히 머물러야 할 거예요.이 지옥 같은 시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예요.
엄지는 알고 있었거든요. 옆 건물 '두더지 고시학원'과 '두더지 취업 전문학원'에서 명문대 언니 오빠들이 밤늦도록 공부한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명문대를 나와 학원선생님이 된 '두더지 입시학원' 선생님들도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을 말이예요.
엄지는 아파트 옥상에서 하늘을 나는 새처럼 뛰어내릴까도 생각해보았어요.. 하지만 엄지는 그럴 수 없었어요. 엄지는 부모님을 너무나 사랑했거든요.
엄지는 부모님을 위해 두더지 학원에 남았습니다.
엄지는 점점 더 미소를 잃어갔고, 점점 더 말수가 적어졌어요. 하지만 엄지는 부모님이 원하는 아이는 될 수 없었어요. 그저 더 느린 아이, 더 부족한 아이가 될 뿐이었어요.
엄마 아빠는 엄지가 태어났을 때 다짐했던 것을 까마득히 잊었어요.
엄지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엄마는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너는 이것밖에 할 수 없냐며 우울해했습니다. 엄지를 위해 열심히 일만 했던 아빠는 너를 위해 평생을 일만 했는데, 너는 이것밖에 안 되냐며 우울해했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몰랐습니다. 엄지는 두 사람을 위해 꾹 참고 세상에 남아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이제 남은 것은 모자라고 부족한 아이와 불행한 부모뿐이었습니다.
오늘도 엄지는 자정이 될 때까지 두더지 학원에 남아있습니다. 엄지는 작은 창 너머로 날아가는 제비를 바라보며 오늘도 조금 덜 모자라는 아이가 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