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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May 10. 2020

2등의 도전.

아무리 열심히 해도 2등이었던 나의 도전기.

나는 초등학교 6년 내내 만년 부반장이었다.

작년은 경상도 올해는 전라도.

매년 전학을 다녔어야 했던 나는 한번도 반장에 뽑힐 수 없었다.

전학생의 참신함은 무기가 되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전학때문인지 나의 그릇때문인지

나는 만년 부반장이었다.


시험에서 가장 잘 나온 등수는 2등이었다.

노력하지 않으면 10등 언저리였고, 교과서를 중심으로 후벼파면 2등이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참 잘하는 학생은 못되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좋다는 여자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 목표는 1등 장학금이었다.

1학년 2학기.

성적 장학금을 노리고 주독야독.

 A 두 개에 A플러스 다섯 개를 받았다.

성공이었다. 아니 성공인줄 알았다.

그리고 그해의 일등은 전례없이.

A 하나에 A 여섯 개를 받은 다른 아이였다.


전생에 제가 아주 재수없는 1등이었거나, 아니면 1등을 죽을 때 까지 쫓아 다니며 못살게 했던 2등이었나보다.


4학년이 졸업하기 전 당당히 취업했다.

성적도 우수했고, 인간관계도 괜찮았다.

스펙도 모자람이 없었다.

슬럼프 없이 바로 취업했다.

업계의 2위의 대기업이었다.


사실 나는 업계 1위의 회사는 써보지도 않았다.

그 회사를 꽤나 좋아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일등 회사의 야근과 성과주의. 엘리트들의 경쟁. 카더라에 지례 겁을 먹었다.

이등 보신주의 쯤일까? 잘하는 부류에 속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위협적이지 않은. 일등기업보다는 좀더 가족적이고 편안하지만 보수는 비슷한 이등이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꽤 괜찮은 인생을 살아가리라.


그래서 그 만년 2등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슬픈 만년 2등은 그뒤로 2등 조차 못해보고,

오히려 2등이었던,

2등이어서 찬란했던 그 시절만을 되내이며 슬퍼하는.

인생이라는 만원 지하철 중간 열차의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냄새도 특징도 없이 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한 채로 그럭저럭 살아갔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나는 업계 2위 회사를 그만두며.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맘이 되었다.


모범생 콤플렉스는 엄마가 되어도 계속되었다.

나를 이등씩이나 하게 만들어주었던 모범생적 인생관은 육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살 이전에는 하루 3시간 이상 함께 해야 하며 3일 이상 아이와 떨어지면 안된다는 무시무시한 강박을 배웠고. 잘되건 못되면 그 모든건 부모탓이라는 엄청난 엄마 수업도 배웠다.

세상은 나에게 촛불이 되어 너 자신을 녹이며 아이들을 위한 불을 밝히라는 암묵적 강요를 했다.

무조건 일등 엄마였어야 했다.

아이들의 시간표에 나를 끼워맞췄다.

아이들을 위해 나를 녹이고 나를 태우고 나는 점점 줄어들었다.

서른의 끝자락.. 눈을 떠보니. 나의 삼십대가 벼랑 끝에 매달려 있음을 깨달 았다.     


나의 삼십대가 사라졌다.

이제저는 찬란했던 2등 시절을 그리워 하게 되었다.  

내가 일등 다음으로 얼마나 빛났는지.

삼등 보다 얼마나 더 찬란했는지.      

이등이나 했던 나는.

이제 까마득히 앞줄에 서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아프고 방황했다.

  

일등 엄마가 되지 못해서 아팠고.

더 이상은 이등 조차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슬펐다.

 

지난 선택을 후회했고.

돌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비탄에 잠겼다.


우울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나를 구해준 것은 다락에서 잠을 자고 있던... 고등학교 시절 썼던 일기장이었다.

“글을 쓰며 살고 싶다. 굶을지라도.”

잃었던 꿈. 오글거리고 유치하지만. 그래서 날것으로 반짝 반짝 윤이 나는 꿈이었다.


그날 부터였다.

나를 위한 글을 쓰고 나를 위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육아서적은 묶어 분리수거통에 버려버렸다.

다시 일기를 썼고, 다시 책을 읽고 다시 오직 나에 대해 썼다.  

일등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이등 나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작년 겨울

기대도 하지 않았던,한 신문사의 글쓰기 대회에서 일등을 했다.


등수에 집착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과 비교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었다.


1등은 아니었지만. 3등보다는 잘났으니까. 내 뒤에 줄서 있는 사람들이 인정해주니까.

행복한줄 알았던 나의 자리.


세상속의 나.

사람들이 말하는 나 . 말고.

유치 하기 짝이 없는 날것으로 팔딱 거리던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을 찾았을때 나는 나의 강박에서 벗어났고. 공황과 방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수능점수 말고. 엄마가 원하던 직업말고. 정규직 말고. 연봉순말고.

일기장 속에 숨어있었던.. 너무나 유치해서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꿈.

당신의 유치했던 꿈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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