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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Oct 05. 2021

엄마도 태권도 시작해볼까?

41살 여자도 태권도 시작 가능합니다.

"자기야, 나 태권도 시작해볼까?"

"태~건도오?"

(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남편의 반응)

"응. 우리 가족 모두 검은띠 따서 도복입고 가족사진 찍는 거야!"

"...."


사건의 시작은 아이들이었다.

올해 5월부터 아이들이 태권도를 시작했다.

코로나 전엔 밖으로 잘만 쏘다니던 두 딸은 집에만 붙어있으려 했다. 온라인 수업과 함께 의자에 궁둥짝을 붙이고 있는 시간은 길어지고 움직이지 않으니, 중학생 큰딸은 급기야 곰돌이가 되기 시작했다.  앉아서 먹기만 하니 기름이 분출하며 여드름 난 곰돌이가 되었고, 식습관 개선, 피부과 치료, 먹는 약 처방에도 얼굴은 여드름으로 뒤덮여갔다. 이대론 안될 거 같았다. 때마침 집 근처에 태권도장이 새로 오픈했고, 마지막 타임엔 소규모 운동하고 있다기에 나는 두 아이를 태권도 장으로 밀어냈다.


"땀 좀 흘리고 와!"

열심히 땀 흘리는 막내

5개월째 접어들며 아이들의 태권도 띠는 하얀색에서 노랑 주황으로 바뀌었고, 몸은   가벼워지고 신기하게도 여드름은 깨끗이 사라졌다. 움직이지 않으니  모든 노폐물이 여드름으로 분출된 모양이다. 명약이 필요 없다. 운동 니아 남편 말대로 운동이 명약이다.


아이들이 운동   나도 집에만 있던  아니었다.

아이들이 월 십삼만 원에 주 3회 태권도를 하는 동안, 나는 한 달에 사십만 원씩이나 주며 퍼스널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1년 넘게 PT를 받으며 정말 사람 된 것은 인정한다. 운동할 때 자세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으며, 근육 없던 살에 새살처럼 근육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여름엔 자신감 급상승으로 복근에 왕자 목표이기도 했고, 남편과 의기투합하여 바디 프로필을 찍을까도 해봤지만, 수분까지 쫙쫙 빼고 무리해서 바디 프로필을 찍었다가는 소화기능장애에 걸린다는 "바디 프로필 부작용"기사를 읽고 아주 빠르게 마음을 정리했다. ( 이런 부분에선 마음 정리가 아주 빠른 ).


그러나 혼자 하는 운동에는 한계가 있었다.

피티 선생님과 친해지면서 적당히 선생님께 못하겠다고 말하기. 엄살 부리기. 핑계대기를 시전 하기 시작하며 운동에 정체기가 오기 시작했다. ( 그래도 비싸서 절때 빠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최근에 재테크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며 나의 수입으로 매달 사십만 원씩 운동에 투자한다는 것은 큰 사치처럼 느껴졌다. 애들 사교육비도 쓰지 말고 투자를 하라는데, 나에게 까지 교육비가 들어가는 이 시추에이션이 맘에 들지 않았다. 사실 나의 거의 모든 용돈을 운동에 쓰고 있었는데, 그에 비해 나의 비루한 정신력 때문에 적당히 꾀부리며 운동하기에 인풋 대비 몹쓸 아웃풋이었다.


큰딸은 태권도의 기적으로 턱살이 갸름해졌으며, 곰돌이에서 다시 여자 청소년 사람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매달 피부과에 돈을 쏟아 붙지 않아도 되었다.  더욱이 여드름은 무조건 아빠 유전자 탓이었는데, 운동으로 해결되며 부녀 사이도 더욱 돈돈해지기 시작했다.


태권도가 점점 호감형 운동으로 바뀌어가며,

때마침 무협지에 심취하며 호연 기지를 품고 외력을 증진시켜 심신을 단련하고 싶어 졌다고나 할까?

거기다 바디 프로필에 대한 사심을 접고, 태권도 도복에 온 가족이 검은띠를 메고 가족 단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에 까지 이르자 마음이 부릉부릉 했다.


일단 남편은 대학시절에 따놓은 태권도 단증이 있었고, 아이들도 이 추세로 열심히 운동을 하면 내년 하반기에는 국기원 심사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나였다.

나만 성공한다면, 우리의 멋진 검은띠 프로필을 찍을 수 있다는 아주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로 감히 태권도에 도전하기로 했다. 인생에서 가끔은 중요한 일이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되니까.


시큰둥하던 남편에게  나의 운동비를  사십만 원에서 십오만 원으로 아낄  있다고 귀띔해주자 남편은 나의 발상에 물개 박수를 쳐줬으며, 마치 아이의  학원에 등록해주는 부모의 들뜬 마음으로  손을 잡고 함께 상담에 동행했다. 남편은 학부모의 마음으로 이것저것 질문하더니 마지막 물음을 던진다.


"열심히 하면, 아이들 국기원 심사 맞춰서 아내도 가능할까요?"

"네 당연히 가능하죠! 성인들은 빨라요"


남편은 선생님께 사십평생 태권도를 해본적 없는 몸치에 유연성 제로인 나를 부탁하며, 꼭꼭 국기원에 아이들과 같이 갈 수 있도록 지도 부탁한다는 말을 했고  그렇게 나의 마흔한 살 태권도 여정은 시작되었다.

나의 아름다운 도복. 이제 시작!

성인 전문 태권도 학원답게 아이들처럼 줄넘기와 피구, 당연히 에어바운스가 있는 레크리에이션 데이도 없다. 대신  우리에겐 몸풀기와 태권도 수업 그리고 버핏 테스트와 데드리프트가 있다. 헬스장에서 자전거도 타보고 달리기도 해 봤지만 얼굴이 시뻘게질 때까지 몸을 움직여본 적이 언제였을까. 땀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발차기를 하는 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 은유적인 표현이 절대 아니다). 순간 몇 년 전 공황장애로 힘들어할 때 심장이 터질 듯했던 그 공포감이 몰려왔으나, 그 공포를 느낄 새도 없이 관장님은 나를 돌렸다.

얼굴은 정말 빨간 풍선이 된 것처럼 한껏 달아올라 터져 버리기 직전 같았다. 이십 대 관원 사이에서 빨갛고 팽팽하게 달아오른 내 얼굴과 그럼에도 펴지지 않고 선명한 눈가의 주름이 애처로워 보였다. 늙고 비루한 몸뚱이. 급기야 나는 비굴해졌다.


"관장님. 제가요.. 나이가 있어서요... ㅠㅠ"

"아. 네 그럼요 페이스 조절 잘하시면서 하세요 그래도 잘하고 있으세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니라고 충분히 젊으시다고 할 줄 았았는데. 괜히 의기소침해진다.

저.. 그래도 아직 만으로는 서른아홉이라고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체력 운동이 아니라 기본 동작과 품새에 있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품새를 외울 때마다 잔소리하던 내가 생각난다.


"얘들아! 좀 더 절도 있게! 이런 춤이 아니고. 좀 더 용맹하게 절도 있게 손을 질러 보라고!"


나의 우스운 품새를 보라.  절도는커녕! 좌뇌와 우뇌를 한 번에 쓰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따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말! 왜 태권도는 양손을 나란히 나란히 함께 움직이지 않고 따로 움직이는 거야. 두 손을 함께 내지르는 것은 태권브이로구나.


"아. 이게 생각보다 왼손 오른손 따로 움직이는 게 힘들어요. 특히 성인들이 그래요. 그래서 치매예방에 아주 좋답니다."


관장님의 친절한 설명. 맞아요. 이제 치매에 좋은 운동을 할 나이이죠.

갑자기  아버지가 왼손과 오른손 손가락 번갈아가며 다른 모양을 만들던 치매 예방 운동이 생각난다.


배움엔 나이가 없다지만, 나이가 들면 움츠려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마흔한 살에 아이들과의 버킷 리스트 하나를 채우기 위해 흰띠를 맨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거라고?

그럼 뭐 어때!


살면서 남보다 빠르게 남보다 일찍 하는 것엔 질려버렸다. 남들과 비교하며 빨리 빨리는 그만할 테다.

이제는 남들 눈치 안 보고 뭐든 늦게 할 테다. 한껏 삐뚤어져봐야지.

뭐 어떤가. 늦으면 늦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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