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내가 좋아하는 언니 J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다.
우리집 두 딸은 나에게 존댓말을 한다. 주변사람들 말에 의하면 초5, 중2 우리아이들은 나에게 너무 존칭을 한다고 한다.
"엄마 오늘 차로 태워주실 수 있나요?"
"엄마, 오늘 저녁 정말 맛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엄마, 오늘은 정말 정말 행복한 하루였어요.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 지인들을 차에 태우고 운전을 하다. 아이에게 전화가 와서 스피커폰으로 받으면, 아이와 나의 대화를 들으면서 어쩌면 아이가 이렇게 예의가 바르냐며 아이의 말투가 너무 곱다고 칭찬을 한다. 그러면서도 최근 몇몇 지인들은 우리 아이가 엄마를 너무 어려워하는것이 아니냐며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비친다.
오늘 수업이 끝난뒤,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전화를 했을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이와 통화를 하는 중에 옆에서 아이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 지금 엄마한테 존댓말 하는거야? 진짜 신기하다. 너 효녀구나?"
딸아이의 친구에게는 아이의 말투가 사뭇 어색하게 들렸나보다. 실제로 도덕시간에 선생님께서 설문조사를 해본결과 둘째 아이 반의 60%가 넘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말을 한다고 한다. 게다가 내 딸은 존댓말중에서도 '했어요?' 체도 아닌' 하셨어요?' 체를 썼으니 다른 친구에게 제법 특이하게 들렸나보다.
최근 내 아이들의 말투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진짜 아이들이 나를 어려워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본 사태에 대해 물어본다.
"남편. 애들이 왜 나한테 존댓말을 한다고 생각해?"
"엄마 성격 나쁜걸 아는거지. 아.. 대충 반말했다가는 벼락 맞을 걸 아는거지..암.."
"남편.. 자기한테도 애들은 존댓말 하거등? 자기 성격도 완전 별로인가봐~"
사실 최근까지 두 아이가 존댓말을 하는 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응당 어른에게는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럼에도 우리들의 사이가 멀다고 느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중학교 딸냄이는 말할것도 없고, 가끔 초등학교 5학년 딸과 이야기 하다 보면 내가 열두살이 된것 같기도 하고, 그 아이가 마흔 둘이 된 것 같기도 할정도로 우리는 가까운 사이이다. 내가 슬퍼보이면, "엄마 우울하세요?" 하면서 꼭 안아주기도 하고, 최근 탈모에 대해 걱정하는 이 어미에게 "엄마 사진을 그렇게 찍으면 누구나 머리숱이 없어보여요. 괜찮아요 아직 진짜 젊은거예요 엄마는." 이렇게 친구처럼 다독여 준다.
그래서 두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 둘째야. 너는 왜 엄마한테 존댓말을 써?"
"음... 언니가 쓰길래 쓰는건데요? 네살땐가.. 그때는 반말했던거 같은데 언니가 쓰는거 보고 아.. 그럼 안돼는 구나 생각했어요"
"첫째야. 너는 왜 엄마한테 존댓말을 써?"
"음..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생각해보니 진짜 잘 모르겠네요 하하."
급기야 우리는 오분간 반말타임을 한번 해보기로 했고. 둘째는 웃으면서 몇번 시도해보더니 너무 어색해서 하기 힘들다며 관뒀고, 첫째는 말할때 너무 많이 생각해야 한다며 귀찮다고 그만둬버렸다.
내가 강요하지않은 극 존칭을 왜 나에게 쓰는걸까? 사실 나는 남들이 이야기 하는 존댓말 가르치기 팁을 시전해본적이 없다. 동갑내기 고등학교 친구인 우리 부부는 존댓말을 해본적도 없고, 아이들에게 반드시 존댓말을 해야 한다고 교육을 시켜본적이 없다.
요 며칠 고민해본결과, 첫번째로 우리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른을 많이 만나는 환경에 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자주 왕래를 하고 전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어른에게는 존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라도 어른을 만나면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나 먼저 항상 인사를 하고 안부를 여쭵곤 했다.
두번째로는, 관사에서 살았기때문인것 같다. 다른 어른들과의 여러 왕래가 적은 요즘 아이들과 다르게 이집저집을 왕래하며 예의바르고 예쁜 말을 써야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는 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이 되고 몸에 베어 공손히 말을 해야 본인도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임영주는 그의 저서 '아이 뇌를 깨우는 존댓말의 힘'에서 존댓말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존댓말은 왠지 거리가 느껴지고, 상하관계를 중요하는 것 처럼 여겨져서 꺼려지지만, 존댓말은 그 자체로 '사랑의 말'이라고 한다. 그것은 격식을 차리는 상하중심의 말이 아닌,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가득 담은 말이라는 것이다.
내가 고의로 가르쳤던 그렇지 않던, 사실 나는 내 아이의 존댓말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한껏 존중을 담아 나에게 감사를 표현할때는 가슴이 사랑으로 꽉차는 기분이 들고, 아이가 잘못을했을때도 정중하게 잘못을 표하면 내가 너무 심했나 라는 미안한 마음이 더 먼저 든다.
존댓말을 하다보니, 한창 속을 뒤집어 놓는다는 중학교 이학년인 딸도 나에게 함부러 말하지 않는다. 너무 화가날땐, "엄마 이제 그만 하셨으면 좋겠어요" 정도가 나에대한 반항의 임계치이다.
둘째 딸 역시 마찬가지 이다. 변덕스러운 내가 화로 가득찬것을 꾹꾹 눌러담고 설거지를 하거나 요리를 하고 있을때면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엄마 속상한일 있으세요? 괜찮아요" 라고 나를 꼭 안아주면 그 사랑이 나를 한없이 가벼운 사람으로 만들어, 내 마음은 솜사탕 처럼 몽글 몽글해지곤한다.
그러므로, 요 며칠 나의 아이들의 나에대한 존댓말에 대한 주의의 여러 시선에 당당해지기로 결심했다. 사랑이라는 건 존대한다고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존대할 수록 커지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었기때문이다.
오늘도 내 아이는 나에게 " 엄마 사랑해요" 라고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나도 너무 사랑해" 라고 사랑을 꼭꼭 눌어 담아 가득 돌려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화는 반말이 아닐지라도 깃털처럼 가볍고, 솜사탕처럼 포근하며, 사랑으로 가득 차있는 사랑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