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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Jun 10. 2020

또 한번  스무 살의 밀크티를 맛보고 싶다면

인도의 3루피 짜리 밀크티. 짜이...

마흔인 지금도 ‘자아’ 찾아 삼만리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방황했던 시기를 꼽자면.

지금 나이의 딱 반절이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스무 살의 나는 조금 더 어지럽고 조금 많이 혼란스러웠다.

휴학과 방황의 나날을 보내다 복학을 결심했다.

학교로 돌아가기 전 나는 생애 첫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지의 조건은 딱 2가지였다.

무조건 저렴할 것, 적은 돈으로 최대한 체류가 가능할 것.

‘인도’

스무 살의 나는 인도로 향했다.


그 당시 인도는 류시화 시인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덕분에

떠오르는 배낭여행과 힐링의 성지였다.

그곳에 가면 삶의 위안을 얻을 것 같았다.

그곳으로 떠나면 인생의 길이 보일 것 같았다.


뭄바이 국제공항에 내리자 마자 ’냄새‘가 나에게 인사했다.

환영해. 여긴 커리의 나라야


바다의 끈끈한 비린내와 커리 냄새

당장 커리부터 먹어 보리라.

짐을 풀기도 전에 나는 커리 식당부터 찾았다. 세접시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커리를 맛본 순간

나는 평생을 잘 알고 있다고 믿던 녀석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일단 내가 지금까지 먹은 건 '커리'가 아니라 '카레'였음을 알게 되었다.

바다 건너온 것을 무조건 자기식으로 바꿔버리는 일본의 '마일드 맛 카레'


인도인들은 삼시 세끼 커리를 먹는 듯했다.

그들은 풀풀 날리는 쌀에도 부어 먹었고. 난이나 짜파티에도 찍어 먹었다. 야채 커리, 닭고기 커리, 버섯 커리, 양고기 커리. 수십 가지의 커리가 있었지만 내 입과 코는 그 모두를 거부했다. 배고파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마살라 특유의 향과 묽은 커리의 질감은 나에게 너무나 낯설었다.

내가 살기 위해 먹은 음식은 에그 프라이드 라이스였다.

한국에서도 잘 먹지 않던 볶음밥을 나는 삼시 세끼 먹었다. 기름에 볶은 건 언제든 중간은 하는 법이니까. 어떤 식당에 가든 메뉴판도 보지 않고 외쳤다

원 에그 프라이드 라이스!.

그렇게 인도인들은 삼시 세끼 커리를 먹었고,나는 삼시 세끼 에그 프라이드 라이스를 먹었다. 이렇게 한 달을 살다 가는 내가 달걀이 되거나. 기름이 될 것 같았다.

느글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서. 유리병으로 된 콜라를 한 병 시킨다.

미적지근한 콜라. 밖에 있으나 냉장고에 있으나 그들의 콜라는 미적지근했다. 이산화탄소마저 온도에 녹아 끈적였다. 어느 누구도 콜라의 온도에 토를 달지 않는다.

이방인인 나만 냄새에도 온도에도 까칠하다.

커리의 향만큼이나 익숙해지기 힘든 건 숙소였다.

6달러짜리 숙소에 뭘 바라겠냐마는

삐걱거리는 매트리스. 졸졸거리는 샤워기의 물줄기. 어두운 복도를 기어가는 바퀴벌레와 창에 붙은 도마뱀. 간신히 침대 가운데 침낭을 깔고 그 안에서 잠을 청했다.

에그 프라이드 라이스만 주구 장창 먹어가던 나는 여독에 찌들어가고 있었다.

김치가 먹고 싶다. 라면이 먹고 싶다. 된장이 먹고 싶다.

그렇게 뭄바이에서의 일주일을 버티고 다음 예정지로 떠나기 위해 3등칸 기차 안에 몸을 실었다. 자리는 정해져 있지 않다. 앉으면 임자다. 북적이는 기차안에는 쭈그려 앉은 사람 반 일어서 있는 사람 반이다. 빽빽한 사람 시루다.


나는 그곳에서.

인생의 맛을 만난다.


가격은 단돈 3루피. 우리 돈 오십 원이 채 하지 않는 가격

인도 식 밀크 티 짜이.

나는 짜이에서 커리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던 인도의 향신료 마살라를 배운다.


짜이는 최하급 아쌈티를 푹 우려. 거기에 마살라와 후추 등의 각종 향신료와 설탕을 넣은 일종의 밀크티이다.

아마도. 영국에서 온 문화이리라.

잘 재배된 최고급 찻잎은 모두 상류층이나 영국으로 흘러가고 가루 밖에 남지 않은 못난이 잎 조각을 모으고 모아 물을 넣고 오래 끓였으리라. 그리고 오래 우려서 나는, 떫은 맛을 감추기 위해. 마살라를 넣었고 설탕을 듬뿍 넣었으리라.

북적이는 3등칸에서 나는 차이왈라를 부른다.

짜이 짜이! 원 짜이!


단돈 3루피의 돈에.

그들은 점토로 초벌만 한 소주 잔 크기의 작은 컵에 짜이를 따라 주었다. 입술 끝에 흙 맛이 난다. 그리고. 부드러운 우유의 맛. 달고 쓰고 자극적인 마살라 향이 차례로 입안에서 춤을 춘다. 여독으로 밤새 나를 괴롭히던 두통이 말끔 해진다. 아마 끓일수록 더 강해진다는 카페인 덕분이리라.

다 마신 컵은 쓰레기 통에 버릴 필요도 없다. 가지고 있다가 길가에 던지거나 발로 밟는다. 바사삭.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일부러 마구 밟는다. 흙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빚져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 뒤 나는 인도인들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왈라를 불렀다.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고 발로 밟는다. 바사삭. 또 한잔의 짜이를 흙으로 돌려보낸다.


인도 짜이는 반드시. 최하급 아쌈으로 끓여야 된다. 그리고. 우유를 넣고. 마살라와 설탕을 넣는다.이것이 절대 원칙이다.


여행은 언제나 끝이 나기 마련이다.

나이를 먹는다.

나이 만큼이나 수많은 밀크티를 마신다.

영국인이 타주는 오리지널 밀크티.

홍콩 호텔 라운지의 에프터눈 티.

주전자에 나오던 대만의 쩐주차이나.

신촌에서 삼 십분 넘게 줄을 서서 마신 흑당 밀크티.

그중 어떠한 밀크티에서도 그때의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때의 짜이를 느끼려면. 인도의 3등칸에 다시 탑승해야 하리라.


아니다.

만약 내가 지금 뭄바이를 떠나는 3등칸 기차를 잡아탄다 해도.

세상의 기름진 맛에 이미 길들여지고 거만해진 내 혀는 그때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리라.

그날의 짜이를 느끼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타임머신을 개발한다.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간다.

뭄바이를 떠나는 3등칸 기차를 잡아탄다.

짜이 왈라를 부른다.

바사삭. 흙으로 돌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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