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sa Jun 15. 2020

정규직이었던 프리랜서입니다.

이번 달 월 수입 56만 원.

시급 3만 5000원.

직장인의 자존심이 연봉이라면.

나의 알량한 자존심은 시급 3만 5000원이다.


최저 시급보다 무려 4배에 해당한다며

남편은 나를 다독인다.

나를 조종할 줄 아는 그는. 영특한 사람이다


2005년 입사 당시 나의 초봉은 3200만 원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끔 잡코리아에 들어가 보며

15년이 지난 지금도 초봉이 2000 언저리에 있는 수많은 회사들을 보면서

당시 내 초봉이 꽤나 높은 수준이었음을 짐작한다.


그리고 어제 내 통장에 찍힌 돈은 정확히 56만 원이다. 

코로나로 인해 일감이 줄어든 탓이다.


시급 3만 5천 원이라는 금액은 꽤나 괜찮아 보이지만.

일하는 시간이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적다.


코로나 여파가 없던 올 1월까지 내 통장에 찍힌 돈은 81만 5천 원가량이고.

올해 일을 조금 늘리면서 받았어야 할 금액은 100만 원이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었으나

여하튼. 지금 당장 들어온 일거리로는 월 56만 원이 내 수입의 전부이다.


추가로 작년 12월 모 신문사에 기고했던 글이 당선되면서 100만 원을 받았고.

얼마 전. 좋은 생각에 기고하여 색연필을 받았으니.

작년 내 최고 수입은 월 180만 원.

코로나 이후 최고 수입은 56만 원과 고급 색연필 세트이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풀타임 잡으로 전환할 생각은 없다.

(있다 하더라도 이제 받아주는 곳이 없겠지만 )


내가 풀타임으로 전환하지 않고.

마음 편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읽고. 쓰고. 먹을 수 있는 건.


첫째. 주요 수입을 책임져 주고 있는 남편

둘째. 서울 한복판에서 떠나 강원도로 넘어와서 적어진 집에 대한 부담 ( 34평 새집. 전세 1억 8천)

셋째. 경영학과 홍보 광고를 전공하며 '연봉이 곧 나이다'에서 산골(?)에서 문학을 읽으며 말랑 말랑해진 나의 심장.


정도 될 것 같다.


나의 일감을 고르는 기준은 어떤 면에서 까다롭다.


첫째. 아이들 픽업 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

둘째.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만 할 것.


그래서 내가 선택한 일은.

방과 후 강사이다.

조금 더 좋은 조건의 학원 영어 강사 자리도 들어왔지만.

아이들 픽업 시간에 겹친 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코로나 여파로 계약했던 곳들이 시작  미정으로 남았고, 현재 한 원에 나가고 있다.


정규직을 포기한 이들은  나뿐만이 아니다.

대기업. 은행 퇴직자. 알바를 선택한 약사.

대학병원을 포기하고 개인병원 마취의 라던지.

건강검진 전문병원에서 의사를 하며 이른 퇴근을 선택한 주변의 언니와 동생과 친구들을 본다.

그들의 공통점은 엄마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의 저자 같은 자주적 퇴사 케이스도 존재하겠지만

보통의 엄마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를 결심한다.


요즘 아는 언니가 교수 자리 때문에 항상 고민이다.

대학을 선택함에 있어서 아이들 육아를 배제할 수 없어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는 이야기였다.

"담 생애에는 꼭 남자로 태어날 거야. 남편이라면 절대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을. 나는 엄마라는 이유로 너무 많이 힘들게 고민하고 있어"


명백한 사실이다.

남편이라면.

어쩌면 직업과 일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

아이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금 더 위로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는 것에 과감하게 배팅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배팅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엄마라는 이유가 크다.


그럼에도. 올해부터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마음 놓고 아이들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나의 훌륭한 팀워크 덕분이었다고.

너는 밀가루를 반죽하렴 나는 만두를 빚을게


남편은 집의 수입을 책임졌고. 나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고.

남편 역시 매 선택에 있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쪽을 선택했다.

실제로 남편은. 내가 수입을 책임진다면 육아를 할 용의가 있음을 언급했었다.

당시 남편의 직업이 조금 더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한번 꽂히면 미쳐버리는 성격의 내가 아이들에게 꽂혔으므로

자연스럽게 나의 퇴사로 흘러갔다.


사십넘어서 이제 아주 조금 철이 들려는지는 몰라도.

그냥 사람들 모두에게 삶의 무게가 있는 것 같다.

내가 꿈꿔왔던 꿈을 포기한 나의 무게와 회한이 있듯이.

그에게는 또 다른 그만의 무게가 있는 것 같다.

나의 인생의 무게만을 아프고 무겁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그럼에도.

육아와 직장을 모두 훌륭하게 해내는 그녀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일과 육아를 모두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있는 그녀들을 위해 세상은 더 변해야 한다.

나는 그저 끝까지 버텨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샤롯은. 미모의 섹시 섹시 보모에게 눈길을 떼지 못하는 남편을 보고.

남편의 바람을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무슨 일이 생겨.

그녀가 보모를 잃을 것을 두려워한다.

다행히. 보모는 레즈비언임이 밝혀지며 해피앤딩으로 끝을 맺지만

샤롯은 "세상의 보모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위하여!"

건배 제의를 한다.


그녀는

육아를 선택한 나를 위해.

그리고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직장맘들을 위해 축배 제의를 한 것이다.


선택을 후회했던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현재는 내 선택의 퇴적물임을 이제는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56만 원짜리 인생도. 대기업 정규직 인생에 비해 그리  나쁘진 않다.


오늘 아침 아이들은 학교에 간다고 6시부터 부산을 떨었다.

한바탕 정신없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허겁지겁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1KG에 만 원짜리 원두를 꺼낸다.

그라인더에 커피를 갈아 내린다.

향이 온 집안에 퍼진다.

회사 앞에서 줄을 서 커피를 사지 않아도 된다.


커피를 마시며. 책상에 앉아 어제 쓰던 글을 마저 쓴다.

1억 8천짜리 전셋집 창밖은 숲이다.

뻐꾸기가 지저귄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9시 30분이다.


이번 달 벌이 56만 원 중에 40만 원을 쏟아 붙기로 결심한

PT샵에 가서 2시간 운동을 한다.

오늘은 스쿼트 개수가 많이 늘었다.

샤워를 하고 돌아와

글을 쓰다 다시 책을 읽을 것이다.

오늘의 책은 더 위험한 과학책이다.


배가 고파질 때쯤. 닭가슴살에 된장찌개와 밥을 먹어야지.

그리고 다시 힘을 내서

바구니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다녀와야겠다.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 앞다리 간장 제육볶음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고 늦은 오후부터 밤이 깊어질 때까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지.


56만 원짜리 인생도. 대기업 정규직 인생에 비해  그리 나쁘진 않다.





*브런치 작품

https://brunch.co.kr/@cmosys#work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