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sa May 29. 2020

잘가 나의 편리했던 시대여.  

New Normal.

미국에 처음으로 갔을때 느꼈던 '살림의 편리함'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모든것은 쓰레기통으로 직행 시키면 끝이었다.


내가 과연 이렇게 버려도 될까..라는 고민은 하루만에 끝이 났다.

음식물 쓰레기는 쓰레기통까지 옮기는 수고 조차 필요치 않았다.

싱크대에 넣고 갈아버리면 그만.


아파트에 있을땐. 커다란 주방용 쓰레기통을 문밖에 놓는것으로 내 임무는 끝이었다.

쓰레기통은 딱 두가지 였다.

하나는 폐기용. 하나는 분리수거용.

분리수거가 될 만한 것들을 무작위로 넣어놓으면. 우리의 임무는 끝이었다.


그 다음의 분리는 또 다른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 지니까.


뭐든 먹고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는 일은. 일종의 쾌감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음식점에 가도 똑같았다.

왠만큼 비싼 음식점이 아니고는.. 아이들의 음식은 모두 플라스틱 식기에 플라스틱 포크가 나왔다.

다 먹고 나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면 끝.


먹는것을 좋아 하지 않는 작은딸은.

미국의 급식을 최고로 쳤다.

먹고 싶은만큼만 먹고 식판째 쓰레기통에 버리면 끝이었다.

그리고 과학시간엔 플라스틱으로 인한 바다생물의 멸종위기에 대해 배우다니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편리함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듯하지만. 더 큰 구속력을 갖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미국에서 돌아와서 이다 .

이전엔 아무렇지 않던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어찌나 끔찍하게 귀찮던지.

내 주방 일이 2배 3배는 늘어난 기분이랄까.


내가 그 편리함의 타성에 젖어 버리고.

이제 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슬픈 자조는.

하루에도 여러번 경험한다.


위생을 목적으로 아무때나 사용하고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위생장갑.

시시때때로 사용되는 일회용 비닐과 지퍼락.

삶아서 쓰던 행주 대신 내 주방을 희고 위생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빨아쓰고 버리는 행주타월.

혁명이라고 외쳤던. 한번 쓰고 버리는 변기 세척솔.

나는 이 모든것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은 듯 하나. 물건에 구속된다.


나는 이제.

한번쓰고 버리는 세척솔이 없으면 변기 청소를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으니까.


유발하라리가 말하는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는 농업혁명.

기원전 9500년전 시작되었다는 농업은 인류의 구원인가 구속인가.

돌아다니고 채집하고 수렵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보장되지만. 인류를 한곳에 묶어두게 만들었던.

가축을 병들게 만들었고. 인류가 밀과 벼. 돼지와 소 닭에 의지하게 만들었던 그것.


내가 어릴적에도 지구 온난화를 배웠던 기억이다.

프레온가스와 오존층 파괴.

해수면의 상승과 북극곰의 개체수 감소.

그때까지만해도. 지구 온난화는 내 일이 아닌 북극곰의 일이었다.

내가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에어콘의 냉매제가 하는 일이었다.


시작은 미세 먼지 였다.

렌즈를 끼고도 하루종일 멀쩡했던 내 눈은. 초미세 먼지를 느낄 수 있었다.

구지 오늘의 미세먼지 농도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미세먼지가 심한날은 눈이 아팠고 괜찮은 날은 눈이 살만했으니까.


그리고 코로나의 시대.

지구 라는 시나리오에 인간의 개연성이 이토록 말도 안됬던 시기가 있었던가.

인간은 점점 편리해졌고. 지구는 점점 불편해졌겠지.

이제는 우리가 불편해질 차례였겠지.

지금까지. 자연에 뻗친 인위적인 개입.

그것이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존재가. 지구라는 땅을 어지럽히고 있는 인간을 구속하기까지는

비단 1달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그러니까.

11월말에 아이들과 고모가족과 중국에 여행을 갔던것이 너무 옛날 일로 느껴질만큼.

그러나 비단. 반년 전의 여행.

그때는 누구도 마스크를 끼지도 않았고.

아무렇게나 위안화를 만졌다.


길거리에서 마스크도 없이 구운 양꼬치를 먹었고.

덮게 없이 펼쳐져 있던 훠궈 재료들을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국물에 담궈 달라고 했다.

우리는 벅적이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길거리 훠궈를 아무렇지도 않게 씹어댔다.


길거리의 수많은 사람의 비말이 스쳐지나갔을 탕후루를 먹고도 멀쩡했고.

벅적이는 베이징의 지하철에서도. 쇼핑몰에서도 우리는 모두 안녕했다.


그때. 우리가 벅적이는 베이징 시내를 활보 했던 그 시기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어디에 있었을까.


중국의 우한에서 2019년 12월에 발병하여 이름에도 19가 붙은 그 바이러스는

내가 그곳에 있을때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박쥐의 날개에 있었을까.

어느 무증상 감염자의 폐속에 숨죽이고 있었을까.


베이징에서 사온 스타벅스 시티 머그를 마지막으로 당분간은. 중국에 갈 수 없겠지.

당분간은 아마 중국이 아니라. 다른 그 어떤나라에도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딸아이는 아직도 매일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심양에 사는 중국인 선생님과 매일 20분씩.

지금 배우는 저 중국어가 랜선이 아닌. 공기속에서 사람들과 비말을 섞어가며 이야기 할 날이 올 수 있을까.


나의 불편함이 사무치게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모든 쓰레기를 한곳에 우겨 담아 버려버리고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없던. 미국에서의 편리함의 유혹.

그리고.

한국으로 넘어와 분리수거를 하며 나의 수고로움을 스스로 치하했던 그날 처럼.

나는 new normal 의 첫 페이지로 넘어가며.

견딜 수 없는 불편함이 한층 더 짜증으로 밀려오는 날이다.


2019년 11월 말. 베이징의 기억.





*브런치 작품

https://brunch.co.kr/@cmosys#work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