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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김 군.

5개월만의 미용실 방문. 거지 존을 탈출하다.

by Lisa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부터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내가 4개월간 미용실에 가지 않으며 깨달은 것은.

미용실에 가나 가지 않으나 내 머리 상태는 별반 차이 없다는 것.

결국 머리에 손을 대지 않아도 큰 차이가 없는데 이렇게 돈을 썼던 나는 무엇일까?

항상 일관되게 8000원짜리 헤어컷을 하는 남편은 내가 머리를 하러 갈 때마다.

내 10회 치 머리를 하고 왔구나.

내 20회 치 머리를 하고 왔구나.

하고 놀리곤 한다

(사실.. 나는 그의 50회 치 머리까지 해본 경험이 있다.)



여하튼. 미용실에 가는 것과 가지 않음의 경계가 없음을 깨닫고 허망해하고 있던 요즘

아침에 거울을 보다 머리 길이가 거지 존에 다 달았음을 깨달았다.

거지 존 경계! 거지 존 경계!

충동적으로 불현듯! 미용실에 가고 싶어 졌다.


이사 갈 때마다 가장 나를 혼돈에 빠뜨리는 치과와 미용실.

몇 달 전부터 눈여겨봤던 집 앞의 김 군 미용실의 문을 두드렸다.


미용실 문에는 "100퍼센트 예약제"라는 메모가 있었다.

"저기.. 머리 할 수 있나요?"

다행히 손님이 없었다.


사십 년을 살며. 스테레오 타입에 단단히 머리가 굳어 있는 나는.

자고로 미용실 디자이너 쌤이란.. 패션에 관심 많은 미청년을 상상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미용실에서 굳건히 마스크를 쓰고 있던 디자이너 김 군은. 내 또래 혹은 좀 더 연배가 있는. 꽤나 덩치가 있는.. 죄송하지만. 내 머릿속의 스테레오 타입에는 디자이너보다는 사장님에 근접하셨다.


미용실의 분위기는. 아날로그와 빈티지 그리고 마니아의 중간 어디쯤이었다.

벽을 장식하고 있는 울트라맨과 일본 피규어와 만화책을 보며.

어쩌면 김 군은 김君 이 아닌. 일본 호칭 쿤.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어보지 않았으니 모든 것은 다 추측이다.)


미용실에는. 스윙 리듬이 울려 퍼진다

가위질을 하시다가 춤을 추실 것만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춤을 추시면 꽤나 잘 어울리실 것 같다.


일단 첫인상은 합격이다.

일단 나는 tv가 있는 미용실이 싫고,

그곳에서 무제한 반복되는 일일드라마도 싫다.


디자이너 김 군이 가방을 받아준다.

원하는 게 뭔지 묻는다.


거지 존만 탈피해주세요.라고 하려다가

"어깨에 닿아서요.. 살짝만 정리해주세요.라고 한다. "


빗질을 하던 그가 묻는다.

"탈색하셨나 봐요?"



"아.. 제가 고데기로 하도 지져서 그래요 완전 지저분하죠?"


이쯤 되면.. 새로운 제품을 권하거나.

손님 마음대로 지지시면 큰일 나요. 열펌을 추천드려요.

정도 대답이 나올 뻔 한데...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

짧게 대답한다.

쿨한 대답이다.


"고데기 쓰신다는 것 보니까 스스로 머리를 하시나 본데. 그럼 조금 가볍게 커트하는 게 어떠세요?"


비 전문가인 나는 그렇게 해달라고 한다.


그 외에. 별다른 말없이 커트에만 집중한다.

어제 본 다큐멘터리에서 일평생 은공예만 하던 장인이 떠오른다.

은을 닦달하던 노인의 손이 생각난다.


디자이너 김 군에게 머리를 맡긴 채

나는 두리번두리번 미장원 안을 살핀다.

곧곧에 주인이 손길이 느껴진다.

인테리어 시공업자에게 맡긴 분위기가 아니다.


스윙 리듬에 참 어울리는 미용실이다.

곳곳에 김 군 님의 취향이 엿보인다.

호불호가 강한 사람인 듯하다.


나이가 들 수록. 본인의 호불호를 정확이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좋다.

본인의 고집이 있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커트가 끝났다.

그의 집중된 시간도 끝이 났다.


머리가 가벼워졌다.

어깨 위로 기분 좋게 말려있다.


"앞으로는 오시기 전에 꼭 예약해주세요. 예약만 받거든요"


나는 아주 기분 좋게 미용실에서 나왔다.

기분 좋게 미용실에서 나온 게 참 오랜만이다.


딸아이 머리도 여기서 잘라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블로그에 방문했다.

'100프로 예약제이며 그 시간엔 단 한 명의 손님만 받는 1인 미용실 입니다. '

참 마음에 든다.


코로나 전 마지막 미용실 경험이 떠오른다.

분명히 예약을 하고 갔는데. 나 말고도 또 다른 손님이 머리를 하고 있었다.

디자이너는 나와 그 손님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갑자기 한 대머리 아저씨가 들어왔다.

부분가발을 하고 싶단다. 지금 당장 하고 싶다고 우기신다.

당신 사전에 다음에는 없단다.

단골인 나를 두고 나의 디자이너는 갑자기 그 아저씨에게 가서 상담을 시작했다.

결국 나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80만 원짜리 부분가발 손님께 밀리고 말았다.

한동안 애정 하며 가던 미용실인데...


그 외의 미용실에 대한 기역은 참혹한 수준이다.

가격표에 나와있지 않은 기장 추가.

남편 머리의 50회 정도 가격을 지불하고 클리닉을 받은 기억.

꼭 전문 제품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실장님들의 권유와 압박.

왜 나는 미용실에 갈 때면 작아지는가.

왜 나는 채무자 같은 기분으로 미용실에 가야 하는가.

결론은 돈이다.

그들이 타깃팅 하는 고객이 내가 아닌 것에서 오는 이질감이겠지?

모든 마케팅에서 타깃 고객은 명확해야 하니까.


그러고 보면 항상 의문인 것들이 있다.

나 또한 월급이 적지 않았으며 나만을 위해 썼던 적이 있건만

백화점의 여성의류 매장과 구두 매장. 미용실의 디자이너와의 상담에서 단 한 번도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다.

그들의 목표 타깃은 도대체 얼마나 위에 있을까.

아니면 혹은. 위화감 조성 역시 마케팅의 일환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차마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심리 교전.

옷과 구두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보거나.

헤어 시술 가격을 듣고도 짐짓 놀라지 않는 척을 할 때면

거미줄에 걸린 나방 같은 기분이 들어서.

백화점에 가거나 새로운 헤어숍에 가는 것을 기피하게 된 지 꽤 오래전이다.


디자이너 김 군의 카톡 채널을 추가했다.

"안녕하세요 초등 여아 커트 예약 가능한가요?"


내일 딱 3 타임 비어 있단다.

나는 잽싸게 가장 이른 시간을 예약했다.

왠지 당분간은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미용실에 방문할 수 있을 것 같다.





*브런치 작품

https://brunch.co.kr/@cmosys#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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