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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볼 하는 아빠와
자전거 같이 타는 엄마

by Lisa

남편의 꿈은 캐치볼 하는 아빠였다.

딸만 내리 둘 낳는 바람에 남편의 꿈은 무산됐다. 딸이랑 하면 되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EBS 스페셜에도 나왔듯이,남녀 간엔 엄연한 차이라는 게 존재 하기 마련이다.적어도 내 딸들은 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내 꿈은 자전거 같이 타는 엄마였다.

다행히 초3에 올라가는 딸이 자전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학년 때까지 씽씽이랑 그네만 죽자 사자 타더니집에 있는 16인치짜리 꼬맹이 자전거가 싫다며 자전거 노래를 불렀다. 그래 지금이닷!




어릴 적 나는 발이 땅에 닿은 적이 거의 없다.

귀한 자식이라 업혀 다녀서는 절대 아니고.언제나 자전거를 타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땅에 발이 닿는 경우는 아주 잠깐 고무줄놀이를 할 때 정도였다. 초2 때 자전거를 도난당하고, 친구들과 일주일을 잠복 수사한 끝에 자전거를 되찾은 적이 있을 정도로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는 나의 전부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최고 난의도 코스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고등학교 교정이었다그곳엔 언니들의 허벅지 강화를 위한 초 고난도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누가 그 오르막을 한 번도 쉬지 않고 가장 빠르게 올라가나 매일 연습하곤 했다. 허벅지가 터지도록 이를 꽉 깨물고 오르막을 오르고 올랐다. 그 오르막을 한 번에 오르기 위해 우리는 이를 악물었다. 그때는 그랬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허벅지 강화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던 시절이었다.


중력을 거스르며 오르막을 오르기도 했지만, 중력을 친구 삼아 내리막을 미친 듯이 내려오기도 했다. 그랬다.

나는 미친 스피드 광이었던 것이다. 브레이크도 잡지 않고 최고 속력으로 미친 듯이 바람을 맞으며 내달리곤 했다. 쓰러져서 자전거가 날아가고 피가 철철 난다 해도오뚝이 마냥 벌떡 일어났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때는 헬맷도 없었는데바보가 되지 않고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게 용하다.


귀찮다며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를 발에 달고 살던 아이.남자애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곤 했는데,나를 처음 보는 어른들은 꼭 묻곤 했다.

"너 남자니 여자니?"

"이렇게 예쁜 남자애 보셨어요?"

나는 정말 이렇게 대답했다.


여하튼 자전거 죽순이였던 나날을 뒤로 한채,성인이 되어서는 유원지에서 타던 4인 바이크를 빼고는 자전거를 타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이제는 나의 꿈인 딸들과 자전거 타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우리는 줄을 맞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큰딸.막내.나.찌르릉찌르릉. 내가 뒤에서 가고 있음을 막내에게 알리며.우리는 줄을 맞춰 자전거를 탄다. 허벅지가 정말로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막이 이렇게 힘들었나? 눈으로는 평지로 보여도 음료수 캔을 내려놓으면 굴러간다는 도깨비 길 같은 아주 미세한 경사에도

내 허벅지는 화를 낸다.


그렇게 이삼주 흘렀나 보다.


이제 우리는 동네 오르막 마스터가 되었다.

타고나길 힘이 장사인 첫째를 제외하고중간에 헉헉거리며 손사례를 치던초 고난도 오르막길까지 무사히 마스터했다. 이제는 속도전이다. 첫째의 자전거 바퀴가 만화에서 처럼 딸들의 두 발이 회오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바퀴가 지나간 아스팔트 길에 연기가 피어오를 것만 같다.

타고난 장사다.


몇 주간.마트도 자전거.학원도 자전거.산책도 자전거..자전거를 타다 보니.

문득. 인생도 자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인생의 난이도가 내려가도 살 것 같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조금만 인생의 난이도가 상향 조정되어도. 헉헉 거리며 포기하고 내려오고 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질 것 같은 허벅지를 달래 가며 이를 앙다물고 달리다 보면 그럭저럭 할만한..

그렇게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힘들던 오르막이 어느새 언제 힘들었나 싶다.


아이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어제까지 우리가 한 번에 오르지 못했던 오르막을

오늘은 노래를 부르며 오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일열로 자전거를 탔던.

시원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던

이 초여름의 라이딩을 가슴속 깊이 꼭꼭 세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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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전거를 함께 타는 산책로.






*브런치 작품

https://brunch.co.kr/@cmosys#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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