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캔 커피 한잔.
또 맥주와 커피에 대한 기사이다.
이놈의 기사들은 잊을 때쯤 나오고 잊을 때쯤 또 나온다.
언젠.
한잔의 와인은 혈액순환에 좋다며.
언젠.
한잔의 커피는 심장병 예방에 좋다며.
어제의 뉴스 헤드라인은 이렇다.
일주일에 와인 한 병 즐긴 여성, 담배 10개비 피운 만큼 해롭다
이런 경고성 뉴스는 이제 지겹도록 봐서
사실 나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무흡연자에게 담배 10개피 라니 조금은 억울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맥주 한 캔과 커피 한잔을 달고 살았나 싶다.
커피의 시작은 직장이었고.
맥주의 시작은 육아였다.
누군가 그랬다. 커피는 노동자의 음료라고.
나에게 차는 휴식이었고.
커피는 각성제였다.
그렇다면 맥주는?
맥주는 육아 노동 끝을 알리는 작은 보상이었다.
나에게도 소주를 퍼마시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왜
"남들 마시는 만큼 마셔요"라는 말이 그렇게 스웩 있어 보였을까?
술자리의 끝판왕을 깨는 마지막 라운드까지 가지 않으면
남들에게 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떡이 될 때까지 마시고
다음날 점심도 먹지 못하고 휴게실에서 실신해있던 지난날이 우습다.
이제 나에게 술이란 맥주 한 캔이다.
육아 끝 샤워 후 마시는 청량감.
아마 육아 노동자 만이 느낄 수 있는 일탈 감이다.
남편은 술은 취하려고 마신다 라고 한다.
취하지 않는 술은 의미 없다며 아직도 독주를 좋아한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취하지도 않는 한 캔의 맥주가 의미하는 것이.
탄산의 청량감인지
김치냉장고에서 꺼내지는 서늘함인지.
아니면 인생은 쓰다. 는 어른의 치기인지.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중독의 시작인지.
노름꾼은 오른손을 자르면 왼손으로 화투짝을 잡는다는데
나 역시 이제 끊어버리겠다고 남편에게 몇 번을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다.
끊어버리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나의 김치냉장고에는 김치 대신 맥주가 그득하다.
어쩌면.
이것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작은 쾌락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잠들면 마실 수 있다는 작은 쾌락.
딱. 이 설거지만 끝내 놓으면 맛볼 수 있다는 작은 쾌락.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감한다는 의미의 작은 쾌락.
이토록. 자기 방어기제가 뚜렷한 나는
아마 맥주를 영원히 끊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