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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을 듣는 아이들.

TV가 없거든요.

by L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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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TV를 중고나라에 팔아버렸다.

큰아이가 4살. 작은아이가 1살 때 일이였고, 아주 충동적인 일이었으며, 마구 마구 후회했더랬다. 그래도 늦었다. 덕분에 육아휴직을 하고 두 아이를 다 키우고 있던 나는 참 아날로그 인생을 맛보게 되었다.


우선 너무 심심했다. 1살 먹은 아이를 키울 때는 시간 죽이기가 필요한 법이다. 하는 수 없이. 10대 때 친구들 모두가 별이 빛나는 밤과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를 들을 때도 절대 안 들었던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있으니 차마 여성시대나 컬투쇼를 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렇게 EBS를 듣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시 어학 위주 방송으로 다시 돌아간 듯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EBS는 책 읽어주는 라이도라는 모토 아래 하루 종일 독서 위주의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둘째 아이와는 어른을 위한 동화. 시 콘서트. 역사소설. 명작소설 등 하루 종일 책을 들었다.

첫째 아이는 자기 전 어른을 위한 동화에서 성우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다시 듣기로 들려줬다. 어른을 위한 동화에서는 베스트셀러나 명작 동화들을 무려 성우들이 실감 나게 들려줬다.


하루 종일 듣다 보니. 사연을 보내기 시작했다. 컬투쇼나 여성시대에서 사연이 읽히는 건 하늘에 별따기 지만. 책 읽는 프로그램에선 보내면 바로 읽혔다. 가끔은 나를 위한 방송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매달 꼭꼭 하나씩은 경품이 집으로 배달됐다. 쌀도 타고 비타민도 타고 책도 타고 가계에 보탬이 됐다.

4살 때부터 들려주다 7살쯤 까지 듣다 보니. 강성연 님의 어른을 위한 동화에 첫아이가 쓴 동화를 보내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어느 날인가 강성연 님은 첫아이가 쓴 동화를 예쁜 목소리로 낭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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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인생에 다시없을 행복이었다. 아이 이름을 불러주며 그림책 작가님이라고 해주었으니까.


그 뒤로도 십 년째 우리는 계속 오디오북을 들었다.

6학년과 3학년이 된 지금도 아이들은 자기 전과 휴식타임에 오디오 북을 듣는다.


조금 달라진 것 이 있다면 이제는 영어로 된 오디오 북을 듣는다.


첫째보다 시간이 많고 한가한 둘째는 가끔 한 번에 3시간짜리 오디오북을 듣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거나 눕거나 기대거나 혹은 몸을 이리저리 천천히 흔들면서 오디오북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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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jpg 아이들이 오디오 북중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들.


아주 작은 조약돌이 큰 물결을 이루기도 한다.

거창한 육아 철학은 없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나는 TV를 팔았고. 우연히 EBS를 들었고. 십 년째 오디오북을 듣는 나의 아이들은 아주 예민한 귀를 갖게 되었다.

오늘도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본인이 듣던 오디오북을 들으며 잠을 청한다.

육아에 있어서는 조금 심심한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너무 심심하니까. 뭐든 듣게 되더라. 이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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