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도시의 녀자에서 따뜻한 강원도의 아줌마로 변신!
텍사스에 도착한 다음날이었다.
마트 앞에서 지인 조셉을 만나기로 했다. 조셉은 남부식 민물가재 볶음과 맥주 한 병씩을 시켜줬다.
미국에서도 짧은 시즌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이다. 짭짤하고 매콤한 시즈닝을 해서 우리 입맛에도 딱이다.
시즌에만 먹을 수 있는 Crawfish 시즌에는 각종 대형 슈퍼마켓에서도 큰 솥에 쪄서 판매하곤 한다.
여하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조셉은 지나가던 아줌마 1과 대화를 시작한다.
내용은 대충 이거 정말 맛있지 않았어? 우리 어릴 적엔 말이야~~ 뭐 이런 신변잡기적인 Crawfish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둘이 너무 신나게 떠들어 대고 있기에 끼어들 수 없었다. 아줌마 1이 가고. 나는 물었다
"지인인가 봐요?"
"아뇨? 처음 보는 사람인데요?"
아.. 미국의 문화인지 텍사스의 문화인지. 그 뒤로 5개월을 머물면서 모르는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자주 가는 스타벅스 바리스타랑도 이름을 터고 이야기를 했고. 아파트 수영장에 가면 거의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 마켓 캐셔랑도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날씨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뒤로 2018년 캘리포니아에서 반년을 머물렀을 때는 남부만큼 사람들이 모두와 인사하고 대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가끔 나눴다.
한 아줌마는 마트에 가서 물건을 캐셔 앞에 컨베이어 벨트 앞에 내려놓기 전, 본인의 세니타이저를 꺼내 벨트를 닦고 있었다. 뒤에 서있는 나와 캐셔에게 말을 건다.
"저 미친년 같죠? 이해해주세요 제가 좀 그래요"
"아니에요 천만해요! 너무 감사해요 덕분에 깨끗해졌잖아요"
지나고 보니. 코로나 시대의 인물상이다.
여하튼 모르는 사람과 이렇게 인사를 하며 가볍게 이야기하는 건 즐겁고 색다른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차가운 도시의 녀자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그 뒤로 한국에 와서도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뭐 도를 아십니까 이런 건 아니니 걱정 마시라.
엘리베이터에서 강아지나 아기가 너무 귀엽다고 칭찬을 하거나. 놀이터에서 내 딸 또래의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거나. 슈퍼마켓에서 캐셔 분들께 농담을 건네거나 인사를 한다.
가끔은 저 여자가 왜 이러나. 뭐라도 팔려나?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며 오늘의 날씨나 미세먼지 이야기를 한다.
사실. 민망스러울 때도 있다.
얼마 전 인가?
캐셔 직원분이 실수로 앞사람 계산을 하며 내 물건까지 바코드로 찍어버렸다.
나는 웃으며 정말 재미있으라고
"어머. 앞에 손님께서 제 물건 쏘실뻔했어요" 했더니.
아주 정색을 하시며 나를 한번 쳐다보시고 물건을 돌려주셨더랬다.
나의 미국식 조크가 통하지 않은 거지?
어제는 부분 일식을 관찰하러 아이들과 나갔다
동네 꼬맹이들이 아주 큰소리로 "어~ 저게 뭐지~? 궁금하다~ 눈으로는 안 보이네~" 하길래.
" 응 셀로판지로 봐야 해. 내가 보여줄게 이리 와 봐" 했더니 모두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버렸다. 정말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말이다. 나 무서운 사람 아닌데. 그냥 동네 주민인데.. 엘리베이터에서 에꿎은 거울을 보며 오늘의 내 표정이 매매범 뭐 그렇게 생겼나 갸우뚱거렸다.
그러고 보니 엄마도 그랬다!!
마트에 갈 때면 엄마는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들을 점원들에게 묻곤 했다.
"엄마 제발 좀 그만 물어봐! 아주 민망해 죽겠어"라고 해도
"뭐 어때! 저 사람들 다 물어보라고 저기 서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길을 찾을 때도 카카오 맵을 펴면 되는데 굳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길을 물었다.
사원증을 맨 채 아메리카노를 들고 강남의 황금색 빌딩으로 들어가던 나는 이제 없다.
강원도에 사는 말 걸기 좋아하는 수다쟁이 아줌마가 한 명 있을 뿐.
오늘도 우리 집 창가에선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이 눔의 뻐꾸기는 아주 강원도라고 광고를 하고 다닌다.
갑자기 뻐꾸기한테 말을 걸고 싶어 진다.
"얘 너는 어디 출신이니? 사실 난 말이야. 강남 출신이란다 너도 뭐 강남 이런 데서 왔니?"
오지랖도 유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