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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Jun 26. 2020

도대체 어른이라는 이름의 근육은
어떻게 키우는거야?!

근육통을 느낄 때 비로소 그 근육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남편을 따라 지방을 전전하면서, 나는 친구들과 랜선 친구가 되어버렸다. 

일 년에 한 번도 만나기 빠듯하다. 처음에는 내가 애를 키우느라 그랬고 요즘에는 그녀들이 애를 키우느라 그렇다. 우리가 알뜰살뜰 만나려면 나이가 오십쯤은 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소식에도 늦고 옆에서 챙겨주고 싶어도 말뿐인 때가 많은 랜선 친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 K와 카톡을 했다. 

"몸은 괜찮니? 애들 보느라 애쓰지?"

 내가 괜찮냐는 말은 그녀는 물론이고 그녀의 남편까지 아우른다. 

"응. 아이고 진짜 힘들다"

처음부터 힘들다는 말을 하는 K의 남편은 대장암 3기이다. 


그 K는 대학교 친구 7명 중 가장 늦게 결혼을 했다. 결혼식날 처음으로 그녀의 훤칠한 남편을 본 우리는 웃으며 말했다. 저렇게 얼굴 보고 결혼할 거였으니 지금까지 소개팅을 다 거절했지! 그랬다. 그녀의 남편은 아주 아주 훤칠하고 잘생긴 훈남이었다. 아직도 그 둘의 결혼식이 눈에 선하다. 예쁜 K와 잘생긴 그. 우리의 마지막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K는 나와 만화방 친구였다.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아도 K는 거기 있었다. 

남들이 다 취업 걱정을 할 때 K는 만화방 주인이 꿈이라고 했다. 

"엄마한테 만화방 차리게 딱 천만 원만 도와달라고 할까?" 

그녀라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엉뚱한 K는 결국 다행히 만화방을 차리지는 않았고 대학교 4학년 때 정신 차리고 취업을 해 누구나 원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강남에 있을 때 종종 우리는 점심을 함께 먹었다. 

하지만 나는 그 뒤로 육아를 하느라 바빠졌고.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가면서 친구와 멀어졌다.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였다. 그 뒤로 일곱 명의 친구들이 하나하나 결혼을 했고 K만 남았다. 

어느 날 K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결혼까지 생각한다고 했다. 

K는 그를 게임 동호회에서 마작을 하며 만났다고 했다. 그는 보드게임방 사업을 하는 사장님이라고 했다. 만화방을 꿈꾸던 그녀가 보드게임방 안주인이라니. 결국 어찌 되었건 비슷한 꿈을 이룬 것 같아 웃음이 났다. 

대학시절의 그녀를 생각하면 대기업 과장이라는 명함보다 보드게임방 주인이 더 어울렸다.


그런 그녀가 지난겨울 불쑥 이야기했다. 

남편이 대장암이라고. 우리가 00학번. 오빠가 99였나 98이었나? 여튼. 너무나 어린나이이다. 

요즘은 말이야. 워낙 조기 발견이 잘되니까 괜찮아. 치료도 잘되고.

나의 말에  그는 대장암 3기라고 했다. 항암을 다섯 번 해야 하는데 부작용이 때문에 너무 힘들어해서 잠시 중단한 상태라고 했다. 나는 무슨말을 해줘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애들 유치원 가고 나면 오빠랑 가서 한잔 하라며 스타벅스 음료 쿠폰을 보내주는 것 뿐이었다. 


내 결혼식날에도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이를 낳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도 나는 아직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냥 아이들과 더 자라고 있는 중인 아직 어른이 되어가는 중 인 사람이었다. 


어느 날인가 친구가 이혼을 한다고 했다. 

남편은 우리가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순박하던 그가 변해가고 친구가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보며.

 어쩌면 내가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나에게 끔찍하게 잘해줬던 이가 사실은 사기꾼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가 말했던 몇 년 전 갔다던 유학이 사실은 감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녀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운이 좋게 피해 갔지만 그다음은 나였을지도 몰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벌써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때 내가 생각하던  어른이란. 민증을 당당하게 보여주며 술을 마실 수 있는 권리정도였다. 

내가 원한 성인이란 자유였고 이성이었고 경제력이었다. 

그럼에도 진짜 내가 어른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섬뜩함을 느낀 것은 억압과 비이성 그리고 돈과 건강 앞에서의 굴욕이었다. 


친구가 소송에 휘말리는 것을 봤을때.  친구가 이혼을 겪으면 아파할 때. 친구라 믿었던 이가 사기꾼이었을 때. 

그리고 친구늬 남편이 대장암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  나는 내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구나를 느꼈다. 


얼마 전 PT를 받으며 하부 승모근 강화 운동을 배웠더랬다. 

처음으로 하부 승모근 운동을 하며 도대체 날개뼈 근육을 어떻게 움직이라는 건지 도대체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부 승모근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그것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감을 잡게 되었다. 


어떨 땐 아픔을 느끼며 그것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기도 한다. 

나에게 어른이란 그랬다.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보며 함께 느끼며. 어른이라는 이름의 책임감을 절절히 느끼고 있다.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주변에 힘이 되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힘을 키워야겠다.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던 하부 승모근처럼. 어른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책임감에 근육을 덧대어 사랑하는 이들의 아픔을 들어 올려주는 데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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