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우리가 찾던 불빛.
창문 틈으로 나방이 날아들었다.
추리가 필요한 시간이다.
분명 방충망은 꼭꼭 닫았다. 얼마 전 방충방 셀프 보수도 마쳤다. 창문 물구멍까지 완벽하게 차단했다고 자부했는데 창문 틈으로 나방이 날아들었다.
저 큰 나방이 도대체 어떻게 날아들었는지, 아이들 방 조명 불빛에서 춤을 추고 있다.
방문을 열었다가 조명 아래 나방의 그림자를 보고 기겁했다.
도대체 나방은 어디로 들어온 걸까.
네이버에 물어보니 창문 물구멍 틈만 막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창문과 창문의 미세한 틈 사이로 벌레들은 기어이 날아든단다.
포기하고 살던지 더 촘촘한 셀프 시공이 필요하다.
그런데 다시 의문이 든다. 과연 내가 그들을 욕망을 이길 수 있을까?
아파트 7층에서 뿜어내는 욕망과 탐욕의 싸구려 형광등 불빛을 인내하고 참아낼 수 있을까?
나비가 온갖 신비한 것들과 환상 아름다움의 상징을 담당 할 동안
나방은 세상의 모든 더럽고 추잡한 것. 죽음과 공포 그리고 불길함을 담당했다.
나비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인간의 영혼이자 에로스의 연인(프시케)인 주연을 꿰찰 동안
나방은 양들의 침묵에서 살인마가 살인 후 입속에 구겨 넣어지거나, 곡성을 떠나는 황정민의 차창에 온몸을 내던지며 불길함과 악의 상징체의 조연을 도맡았다.
야행성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어둠 속의 나침반으로 달빛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 달빛을 찾아 밤하늘을 유유히 나는 것이 그들의 본능이자 숙명이다. 은은한 달빛 아래서 조용히 명상하듯이 하늘을 부유했어야 했어야 했다.
싸구려 가로등이나 아파트의 형광등 불빛 그리고 천박한 네온사인 따위에 모여드는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이 빛으로 만든 이기적인 공해가 그들의 태초의 이지를 흐리게 하고 인공 불빛 아래로 모여들게 만든다.
불을 켜기가 무섭게 달려들어 가로들의 유리에 머리를 부딪혀 떨어지는 나방을 우리는 비웃는다. 욕망에 눈이 먼 자들을 부나비 떼 들이라 부른다.
그러나 나방을 비웃던 나는 정작 달빛을 따라 날고 있을까?
인간이 만들어낸 싸구려 백열등과 형광등 네온사인 주의를 맴도는 천박한 비행을 하지 않았나 돌이켜본다.
또 생각해본다.
어제 그 좁은 문틈 사이로 날개를 접고 기어이 비집고 들어와 조명 아래서 춤을 추던 나방에게 묻고 싶어 졌다.
“ 너희가 진정 쫓던 것이 싸구려 형광등이 맞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