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내 꿈은 심심해보는 것이었다.
둘째가 6개월 즈음이었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처음으로 목욕탕에 간날, 욕탕 안에 발만 담그고 나왔는데 내가 집에서 나간 순간부터 집에 들어온 순간까지 정확히 40분 동안 아이는 쉬지 않고 울고 있었다.남편은 아기띠로 아이를 안은 채로 내내 거실을 서성이다가 나중엔 얼마나 심하게 우는지 증거 제출용 동영상을 찍기까지 했다.
빽빽 울어대는 둘째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달랠 수 없었다. 내가 아이를 안아 들자 아이는 비로소 우는 것을 멈췄다. 정말로 귀신같이 말이다.
남편은 두 아이를 키우는 내내 아주 협조적인 남편이었다.
직장 선배들 눈치를 보지 않고 근무시간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와서 살림을 함께 했기에, 남편 동기들이나 아파트의 남자주민들은 남편을 '공공의 적'이라 불렀다.
그럼에도 절대 도와줄 수 없는 건 엄마의 자리였다.
남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열달동안 피와 살로 엉겨있떤 우리의 애착을 남편은 절대 파고들 수 없었다.
100일이 되기 전 낯가림을 시작한 딸은 모유가 아니면 먹질 않았다.
첫째도 어렸던 터라 종종 아파트 내에 시터님께 맡겼는데, 어느날인가 시터님도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 5시간 동안 울면서 굶었다고 이 아이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 손에 맡기기 힘들 것 같다고 조언했다.
독한 것..
눈을 감고도 냄새와 온기로 귀신같이 엄마를 구별했던 우리의 초인 막내는
엄마 외의 모든 사람을 거부했다.
둘째는 어린이 집에 처음으로 간 46개월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나를 떨어져 본 적이 없었고.
심심하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일까?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이의 아침밥을 걱정하지 않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싶었고.
정말 미드의 모든 에피소드를 쉬지 않고 정주행 하고 싶었다
그때 나에게 자아 찾기 라던지 인생의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그냥 자고 싶고 혼자 있고 싶었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정말이지 홀로 커피숍에 가서 마음 편히 몇 시간이고
홀짝홀짝 한잔의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전혀 심심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커피숍에 같이 가고 싶은 사람 따위도 없었다.
그냥.
나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유아를 키우는 엄마가 알아야 하는 것은 언젠가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이다.
몰래 음식물 쓰레기만 비우러 가도 난리를 치며 맨발로 따라 나오던 바로 그 아이가.
엄마 다녀오세요.
저는 새로 나온 넷플릭스 뉴 시즌을 봐야 해서요.
라던지.
친구랑 놀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시고요.
되도록 늦게 오셔도 돼요.
라고 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지금 열한 살 내 딸의 현주소이다.)
어느 순간 넘쳐 나는 시간을 주체 못 할 날이 올 것이다.
혹시 아이 옆에서 자는 척하며 몰래 이불속에서 웹소설을 읽고 있는가?
몰래몰래 촌음을 아껴 넷플리스의 미드 한 시즌을 통째로 하루에 다 보고도 시간이 남을 날이.
수애가 추천하던 웹소설을 며칠 만에 정주행 할 수 있는 날이.
네이버에 뜬 모든 뉴스의 댓글까지 다 읽어도 시간이 남아 돌 날이 반드시 온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기저귀를 갈고 있는 당신이 절대 믿지 못할지도 모른다.
엄마에게도 심심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은
마치.
백 살의 현인이 우리에게도 죽음을 생각할 시간이 반드시 온다고 할 때
그것을 남의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릴.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처럼
가까운 지인의 장례식에서도
나의 죽음은 상상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이겠지만
그 날은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심심한 날.
심심함 속에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넘치는 시간 속에서 헤매고 자아를 찾아 삼만리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가 된 듯이 아주 조금씩 차곡차곡.
당신만은 그날을 준비했으면 좋겠다.
난 솔직히 그날은 절대 안 올 줄 알았다.
그 날에 대해 상상조차 해본 적도 없다.
그래서 하루를 그냥 일회용 종이컵 쓰듯.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를 반복했다.
사실 많이 어렵다.
매일 하루가 가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 라며 맥주를 홀짝 거렸다.
나에게 내일은 없었다.
막말로 두 아이가 돌 때 까지는 나는 아기 동물을 기르는 엄마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수면부족으로 다크서클은 내려와 앉아있었고.
끔찍한 똑딱 핀으로 앞머리를 고정했으며.
동대문에서 사 온 냉장고 바지를 교복 삼아 살아갔다.
그러다 어느 날 눈을 떠보고 어느 날인가 시간이 남는 낯설고 기이하고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첫째는 6학년 둘째는 3학년이 되어있었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일이다.
작년엔 정말로 미치고 팔짝 뛰어서 정신이 미친년 널뛰기를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도민준을 보내고 난 천송이처럼 미친년처럼 방황하다가
(죄송합니다. 현재. 별에서 온 그대를 정주행 중입니다.)
정신을 부여잡기로 했다.
10년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몰두했으니.
이제는 다시 무엇인가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나이 마흔에
대학원을 등록하고 이제 한 학기가 지나갔다.
스무살의 나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철학'을 선택했다.
스무살의 나의 목표는 돈이었다.
돈이 되는 경영학과 광고학을 선택했고,
경영경제 서적이 아니면 읽지 않았다.
항상 인풋대비 아웃풋을 생각했고,
인문학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철학이라니 인생은 살고볼일이다.
아마도 너무 심심해져서 가능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지난 10년이 아깝긴 하지만
그 10년이 나의 어딘가에 차곡 차곡 쌓여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인내심 한스푼, 생각 한스푼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그 10년이 나에게 그냥 지나간 세월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심심한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내달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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