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생활을 시작한 친구의 원룸은 혼자 지내기엔, 그리고 첫 독립치 곤 꽤 넉넉한 크기의 방이었다. 본가와도 멀지 않아 냉장고는 그의 어머니 손길이 닿아있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유독 갓김치를 맛있게 담그셨다. (한 번은 푹익은 갓김치를 내주셨는데, 그날 밥 먹는 내내 그 따뜻한 쉰내가 기분 좋게 코끝을 찔렀다.) 갓김치를 포함하여 여러 종류의 김치가 냉장고에 가득했다.(김치를 제외하곤 대부분 캔맥주지만, 어떠하리.) 김치만큼은 시간에 굴복하지 않는다. 맛이 깊어지고, 향이 짙어져 코끝을 시리게 한다.
친구 여섯이 더 와, 여덟 명이 되었다. 이제 남자들끼리의 집들이가 시작됐다. 친구들과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지금 내 나이가 서른이니, 족히 이십 년은 더 된 인연들이었다. 걔 중엔 뒤늦게 무리에 합류하여, 알게 된 지가 비교적 짧은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 일이 년여의 공백기가 있었다. 한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 으레 그렇듯 우리가 시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우리 위에 있는 것 같았다. 개개인의 인생들을 친구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때도 있었다.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시간이라는 비탈길에 있는 예기치 못한 짱돌처럼, 우리 무리는 종종 이상한 사건이 터져 서로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였다. 그렇게 누구 하나가 잠시 이탈했다. 물론 시간이라는 굴레가 늘 가파른 비탈길이 아니듯 그것이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길이라도 그만의 길에서도 종종 이상한 사건이 있듯 우연치 않은 계기로 다시 돌아오곤 하였다. 그런 공백기가 있었기에 지금은 누구 하나 연락이 쉬이 닿지 않아도 언젠가는 우리가 필요하면 연락하겠지, 하고 있었다. 어릴 적엔 이기적인 친구라 탓했지만, 다시 돌아왔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 잘 돌아왔다고 격려하는 것도 우리들의 몫이었다. 물론 작정하고 20여 년 간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했던 것들을 영수증 내역 훑듯 정리하면 누구 하나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점차 익숙해질 때쯤 우리들의 관계는 맛이 깊어지고, 향이 짙어졌기 때문이었다. (친구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선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음과 굳이 드러내서 표현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들이 처음 만났던 장소를 나는 놀이터로 기억하고 있다. 아직도 이 게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당시 우리는 '얼음땡'(얼음땡은 규칙이 너무 많다. 목청 큰 녀석이 늘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규칙을 만들어놓는 바람에 금세 지루해졌다. 처음 권력의 힘을 깨달았다. 훗훗) 이후 도래한 '탈출' 시대를 즐기고 있었다. 놀이터 안에서 술래에게 잡히지 않고, 특정 지점으로 탈출하는 일종의 술래잡기였다. 당시 놀이터 하나를 두고 세 그룹의 탈출러들이 모여 있었다. 세 그룹이 동시에 탈출을 하다 보니 그룹과 그룹이 얽혀 누가 술래인지 누가 도망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A그룹 술래가 B그룹 술래를 잡는 해프닝도 있었다. C그룹 도망자가 C그룹 술래에게 잡혔는데도, 나는 A그룹이라고 거짓말을 쳐대는 친구도 있었던 것 같다.(그런 뻔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C그룹 술래가 나였다. 웃음) 그러다 결국 우리 세 그룹은 한 그룹으로 헤쳐 모여 스무 명가량이 한꺼번에 탈출을 시작했다. 제대로 된 게임이 될 리 없었다. 우리들이 다 같이 모여 최초의 어떠한 것을 했던 때가 그날이었다. 그중 우리 여덟이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다. 누구 하나 탈출하지 않고, 이 오랜 시간 함께 해온 것에 감사하지만, 약간은 지겹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면.
친구 방에서 시작한 집들이를 대충 마치고, 우린 밖으로 나왔다. 잠깐 바람을 쐬기 위함이었다. 쐬는 김에 아이스크림을 먹자며, 편의점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때 친구 하나가 멀리 있는 놀이터가 가리키며, 그때 당시의 '탈출 게임'을 수백 가지의 추억 뭉텅이에서 골라 집었다. 해묵은 기억이지만, 얼근한 상태에서 푹 익은 추억은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안주거리였다. 우린 곧장 놀이터로 뛰어갔다. 다행히 새벽 세시였고, 놀이터의 터줏대감들은 달콤한 잠자리에 빠져있을 시간이었다. 우린 체면 따윈 잊은 채, 곧장 구름사디리부터 이젠 몸을 구겨 들어가야 하는 굴다리까지 점령했다. 몸만 컸지, 정신연령은 그때 당시 그대로였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아직은 희미하게나마 무언가가 또 다른 무언가로 대체되지 않은 채로, 지금의 나로부터 탈출해 있었다.
나는 종종 무엇이 우리를 급히 이끌어왔는지 떠올려본다. 시간일까? 나보다 잘 나가는 친구인가. 조급해하는 부모님인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 안의 내가 조급해하고 있는 것인가.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차 안에 몸을 실은 채로, 출발 신호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그것이 단지 분 초 단위의 기계적인 시간이라는 것을 잊고 선. 우리 모두 지금의 자리에서 잊고 선 사람이진 말자.
우린 탈출 지점에서만큼은 시간의 위에서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웃었다. 당신과 당신 친구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