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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글 Oct 20. 2020

길 잃은 드라이버A, 조수석B

나와 친구는 마치 길을 잃으려고 드라이브하는 사람들 같았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 우린 주말마다 목적지없는 드라이브를 즐겼다. 친구의 차는 오래된 연식의 스타렉스인데, 반찬사업을 하는 터라 차 안에선 이따금 짠지 냄새가 났다. 처음엔 코를 막았지만, 나중엔 적응됐다. 그러니까 그 냄새는 이미 차 구석구석 베어, 차향제를 놓아도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짠지형과 허브향이 섞여 세상에 없는 냄새가 났다. 그 향은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은 대부도였다. 대부대교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다가, 조금 더 깊숙하게 들어서면 포도밭을 가로질러 조명 한 줌 없는 어둑한 길로 접어들었다. 겨우 차 한대 들어갈 좁은 거리에다 울퉁불퉁한 지면 탓에 오프로드를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자칫 출입구를 못찾은 적도 있었다. 꼭 포도밭을 서리하러 온 것 같기도 했고, 스타렉스에 덩치 큰 사내 둘이 앉아있으니 영화에서나 볼 법한 범죄차량에 앉아있는 기분도 들었다. 그것이 괜히 못마땅했는지 길은 제 길을 내어주지 않는 것 같았고, 덕분에 같은 길을 수없이 반복하며 지나게 되는 것 같았다. 우린 저주에 걸린 것 같다는 싱거운 농담을 주고 받았는데, 그러면서도 도무지 출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급하진 않았는데 그동안의 경험을 미루어보아 꼭 이렇게 헤매야만 주말이라는 짧은 휴식기간이 느릿하게 흐르는 것 같았다. 죽기 직전의 경험이나 스릴이 아니라면 이 정도 고생정도로 주말을 느리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드라이브의 목적은 제법 그럴 듯했다.


앞으론 시간이 엄청 빠르게 지날거야.


삼십대로 접어들며 지인들에게 숱하게 들은 말이다. 그들은 라떼를 외치는 분들이었는데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인생선배들이었다. 나는 그 말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벌써 몇 달 후면 서른 두 살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후회가 된다기보단 나도 그들처럼 라떼의 부류가 빨리 되는 것 같아, 그게 영 아쉽기만 하다. 어쩌면 삼십대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정말 빠를지도 모르겠다. 어느 과학자도 풀지못할 것이고, 푸려는 시도조차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연구가치가 충분하다. 왜냐하면 삼십대라면 누구나 다 공감하겠지만, 체감상 정말 이십대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이기 때문이다.  


포도밭의 사잇길처럼 우리의 시간은 어떤 무언가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아 마땅한 영역일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시간은 공평하고, 정직해야 하는데. 삼십대의 시간은 숱한 목표로 가득 채워지는 때다. 그래서 삼십대의 시간은 분초마다 이질적으로 다른 질량으로 흐른다. 그것은 세상엔 없는 보장할 수 없는 무게다. 저마다 이정표로 포도밭에 말뚝을 박고, 저만의 길을 닦아놓는다. 그러니까 길이 길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덩쿨도 헤쳐야 하고, 포도밭을 뭉개고 가로질러 가기도 한다. 요행을 바라다 잘못된 선택을 한 후에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오프로드에 온 몸을 맡기고 확 꺾이는 커브에 자기 몸을 내던지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삼십대의 길엔 절벽이 없어야만 한다. 우리가 나이를 먹을 수록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덜 꾸게 되는 것처럼. (이 꿈을 꾸지 못해 얼마나 불행한 어른이 되었는지.)


무엇이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나의 정신도 아니고, 육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말마다 오래된 스타렉스의 삐걱대는 정도가 다르듯 육체나 정신은 완벽한 불협화음을 낼 뿐이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자체를 담아내는 것은 무엇일까. 오밤 중에 갑자기 켜지는 가로등이 어제보단 밝을까. 혹은 밝아지려고 아둥대기는 할까. 나는 오늘의 나에게 괜히 비아냥거려보고 싶다. 사람은 영원을 얻지 못한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부여잡고,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것조차 사치일지도 모를 삼십대다.


우린 그런 상실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길로 접어들어야 할 때다.


길을 잃은 드라이버 A와 조수석 B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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