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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Dec 11. 2021

《이런 마기꾼을 봤나》

이제 마스크를 벗어 주세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이제마스크 쓰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뭔가 허전느낌마저 들 때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나서 좋은 점으로, 전 국민의 미모가 상향 평준화된 것을 꼽기도 한다. 웃픈 얘기다.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면서 생겨난 말이 '마기꾼'이다. 마기꾼은 '마스크와 사기꾼'의 합성어다. 이 말은 마스크를 썼을 때는 남훈녀였는데 막상 마스크를 벗었을 땐 사기당한 기분이 든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지금이야 덜한 편이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스타들의 사생활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건 금기다. 그래서 방송 활동을 하지 않을 땐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은폐했다. 이런 '신비 전략'은 대중들에게 더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묘한 매력까지 주었다. 그래서 영화나 방송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곧 스타들의 본모습과 동일시되었다. 자기를 감춘 대가로 호감과 매력과 인기를 얻는 건 묘수인 듯 하지만 그것은 악수를 두는 일이다. 영원히 마스크를 쓰면서 살 수 없는 것처럼, 영원히 나를 감추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본다고 무조건 예쁘게 보이는 건 아니다. 그건 예쁘게 봐줄 마음으로 자세히 볼 때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 대부분은 가까이에서 봤을 때보다는 좀 멀리 떨어져서 봤을 때 괜찮게 보인다. 알면 알수록 정이 뚝 떨어지는 사람도, 모르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무지할수록 호감도가 올라간다고나 할까?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신비 전략'을 통해서 호감을 주는 사람도 아니요, 쇼를 통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람도 아니다. 멀리에서 봤을 때보다 가까이 다가와서 봤을 때, 더 괜찮은 사람이다. 마스크를 썼을 때보다 마스크를 벗었을 때, 더 나은 사람처럼 말이다.


마기꾼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감추고 숨길 게 아니라 차라리 진솔하게 드러내는 게 더 낫다. 이런 마기꾼을 성경에서는 바리새인이라고 부른다. 마기꾼으로는 누구도 주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없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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