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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Dec 15. 2021

《의외로 다정하시네요!》

성화, 제어 가능한 상태

1.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기계나 물건이 아님에도, 오늘날 이런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는 게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사람에게 제대로 덴 사람일수록 이 말을 절대 진리라고 믿는다. 사람에게 실망하면 우리는 그에게서 희망을 거두어들이고, 대신 그 자리에 가시울타리를 세운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한다. '이제는 아무나 함부로 믿지 않을 거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것도 지독하리만큼 말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변하니까 사람이다.


고유한 DNA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건, 저마다 고유한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뜻이다. 오리지널 성격과 기질은 가정환경이나 성장 배경을 통해서 더 강화되거나 약화되기도 하지만, 내면에 잠재되어 있을 뿐 소멸하지는 않는다. 가끔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그동안 안 본 사이에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고, 그러한 충격들이 켜켜이 쌓여 생각이나 내면에 파장을 일으킨 덕분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되는 건, 성격이 변했다기보다는 성품이 변한 것이다. 성격이 선천적이라면 성품은 후천적이기 때문이다.


2.

어렸을 땐 다른 사람에게 지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다. 내게 손해 보는 일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어떻게든 이겨야 직성이 풀렸고, 무언가 하나라도 더 손에 쥐어야 성에 찼다. 이런 성격은 고집으로 나타났는데, 고집을 부릴수록 사람들은 나를 덜 건드렸지만 그만큼 더 뒤로 물러났다.


'목사님. 의의로 다정하시네요!' 수년이 흘러 목회자가 된 지금,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햇살 좋은 어느 토요일,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간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시더니, 조금씩 마음이 편하셨던지 본인의 속마음까지 털어놓으셨다. 주일날, 교회 사무실 책상에 예쁜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이 놓여있었다. 누가 놓고 가셨을까 궁금한 마음에 얼른 편지를 열어보았다. 펜으로 꾹꾹 눌러쓴 손편지였는데 요지는 하나였다. '처음에는 목사님이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졌는데, 심방 후에는 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의외로 다정다감하셔서 놀랐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나를 어떻게 봤길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마다 거울을 봤는데, 거기에는 편한 마음으로 다가오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까칠하시네요. 알고 보니 별로네요.' 하는 말보단 백번 천 번 나았다.


3.

전에는 예수님을 믿으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새롭게 될 거라고 믿었다. 물론 죄인에서 의인으로 신분이 단번에 변한 것은 맞았지만,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성격까지는 새롭게 되지 않았다. 쉽게 바뀌지 않은 까칠하고 꼼꼼한 성격은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딜레마로 다가왔다. 예수님을 믿어도 성격은 마치 그린벨트에 묶인 땅처럼, 좀처럼 개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베드로는 다혈질적으로 믿었고 도마는 의심하면서 믿었고 바울은 논리적으로 믿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믿어도 꼭 자기 성격과 기질대로 믿는다. 비록 타고난 성격과 기질은 잘 바뀌지 않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그분을 닮은 성품이 나타난다. 이 성품이 타고난 성격과 기질을 제어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준다. 모세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모세의 혈기왕성하고 쉽게 흥분하는 성격과 기질을 안다면 조금 의아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온유함의 본래적인 의미는 부드럽고 상냥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에 의해 제어 가능한 상태가 성경에서 말씀하는 온유하다는 의미이다. 야생마가 말고삐로 잘 제어되는 것과 같다.


성화는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인해 제어 가능한 상태가 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분께는 어떤 성격이든지 어떤 기질이든지 상관없다. 까칠해도 괜찮고 너무 물러도 괜찮다. 다혈질이어도 괜찮고 소심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제어 가능한 상태로 이끌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별로였던 사람조차 '의외로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데 전문가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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