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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순진하기는...》

그건 지혜로운 게 아니라 영악한 겁니다!

by 울림과 떨림
'사람이 순진하기는...'


대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심리에는 '나는 이렇게 지혜롭게 처신하는데, 왜 너는 그렇게 어리석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득실을 잘 따지고 손해 보는 일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다.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능해서 꼭 남는 장사를 한다. 호의를 계속 베풀면 호구로 보는 세상에서, 언뜻 보면 이런 사람이 인간관계의 정석처럼 보인다.


그런데 알고도 봐 주는 거라면, 알고도 당해주는 거라면? 아내는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주변의 사람들이 함께 험담하자고 분위기를 조성해도 듣고만 있을 뿐, 맞장구를 쳐 주지 않는다. (대부분 아내가 잘 몰라서 말을 안 하는 줄 안다.) 아내는 지난번에도 커피를 샀음에도, 상대가 이번에도 살 마음이 없으면 또 커피를 사곤 한다. '지난번에 내가 샀는데, 왜 또 내가 사야 하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건만, 아내는 상대가 머뭇거리면 주로 먼저 계산한다. 나 같으면 서운할 수 있는 일을, 아내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수월하게 해 낸다.


간혹 이런 아내를 잘 모르고 '사람이 순진하기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는 속으로 돈이 굳었다고, 남는 장사를 했다고 쾌재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아내도 상대가 뻔히 머리를 굴리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상대를 배려해서 아는 척만 안 할 뿐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알고도 섬기고 대접한다.


주변 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고 훈훈한 정서적 지원을 받는 사람일수록 내면이 강인하다.

김주환 교수가 회복탄력성에서 한 말이다. 이것이 내가 아내를 보면서 정서적 강인함을 느끼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람이 순진하기는...'라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는 그런 생각이 지혜로움보다는 영악함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사람이 순진하기는...'라는 말은 상대를 얕보고 폄하하는 말인 동시에, '내게는 그렇게 손해 볼만 한 능력이 없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바보처럼 살기 위해서는 지혜와 믿음이 요하다. 놀아나지 않고 섬기기 위해서는 지혜가, 그렇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요구된다.


영악하게 사는 사람은 자기 꾀에 빠져 살 때가 많아서, 자신이 최후의 승자인 줄 다. 실 계산기를 잘 두드리면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게 세상 이치다. 주변에 하도 그런 사람이 많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더 악착같이 움켜쥐려고 무한 경쟁을 벌이는 건 아닐는지. 자기만 아는 사람은 늘 손해 볼까 두렵고, 빼앗길까 불안하다. 그래서 많은 걸 소유했음에도 딘가 모르게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 가득하다.


야곱은 누구보다 계산기를 잘 두드렸던 사람이자, 늘 남는 장사를 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의 인생에 대한 총평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였다. 꾀를 부리고 잔머리를 굴릴수록 소유는 늘었지만 그만큼 그의 인생도 꼬이고 어긋났다.


무지해서 당하는 건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알고도 손해 보는 건 지혜와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손해 보려는 마음도 없고, 그렇게 살만한 능력도 없을 때 '사람이 순진하기는...'라고 말한다. 자기를 포장하고 감추기 위해 이보다 유용한 표현이 또 있을까?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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