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즐거운 비명보다 곡소리가 더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감사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 쉽고, 짜증을 유발하는 불쾌한 소리로 매도되기 쉽다. 말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감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감사가 씨가 마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고마운 마음이 차고 넘쳐서, 감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감사하게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때문에 감사가 술술 나오기만을 엿보거나, 저절로 감사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감사는 감사하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쉽게 할 수 없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불평은 개미 크기의 의지만 있어도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면, 감사는 모든 의지를 총동원해야 겨우 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겁다. 그래서 감사거리는 감사하기로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에게 더 수월하게 발견되고, 여기저기 눈을 비비고 찾는 사람에게 손쉽게 포착되는 것이다.
조건이 충족되고 또 바라던 일이 이루어져서 하는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런 감사는 굳이 신앙을 따지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지하고 포착하는데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감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은혜 아래 살고 있다는 믿음의 고백'과 같다.
'순종이 액션이라면, 감사는 리액션이다!'
몇 년 전, 말씀을 묵상하다가 건져 올린 한 줄이다. 나는 이것을 '순액감리'라고 부른다. 순종에는 반드시 액션이 동반되기에, 액션이 빠진 순종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이런 맥락에서, 리액션이 뒤따르지 않은 감사도 더 이상 감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사하는데 아무 리액션도 없다?' 그런 무반응은 감사하지 않음의 표지이다.
리액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볼링을 쳐 보면 알 수 있다. 볼링에서 스트라이크를 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킹핀을 쳐야 한다. 그러나 킹핀만 잘 친다고 해서 전부 스트라이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킹핀을 잘 맞춰도 쓰러지지 않고 남아있는 핀들이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볼링공에 맞은 핀들의 리액션이 부족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무슨 말이냐면, 볼링공에 맞은 핀들이 사방으로 튕기면서 다른 핀들을 쳐 줘야 스트라이크가 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핀들의 리액션은 스트라이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에게도 리액션을 가로막아 감사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있다. 바로 감사에 대한 오해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문제를 축소, 왜곡, 부인하는 걸 감사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냥 덮어놓고 '다 잘 될 거야. 난 괜찮아.'라는 긍정 심리로 자신의 뇌를 감쪽같이 속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감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제대로 할 수 있다. 곤고한 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놀라운 은혜에 눈을 뜨게 되고, 그에 따른 리액션으로 감사할 수 있다. 참된 감사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처지와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감사의 관건은 긍정이나 부정이 아닌 인정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