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둘째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먹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그런 모습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세 아들에게 똑같이 공평하게 나누어 줘도, 둘째는 항상 형과 동생 게 더 많나고 불만이다.
집에서 나름 서열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먹을 것을 나누어 줄 때 첫째부터 시작해서 순번대로 나누어 준다. 이제는 왜 형부터 먼저 주느냐고 하지 않는다. 순번대로 하는 것은 양치질을 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순번대로 권리를 누렸으면, 책임도 순번대로 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잠자기 전에 양치질을 할 때였다. 사실 이때가 제일 힘들다. 양치질을 한다는 것은 곧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사인이기 때문에, 세 아들은 할 수만 있으면 요리조리 빠져나가려고 난리법석을 피운다. 이 녀석들을 잡아서 양치질을 시키는 것도 보통이 아니다.
온갖 협박과 설득 끝에, 순번대로 첫째가 먼저 양치질을 하고 나오고 이번에는 둘째가 양치질을 할 차례였다. 그런데 둘째가 셋째부터 먼저 양치질시키라고, 자기는 맨 나중에 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다. 그러자 6살 셋째가 가만히 있지 않고, 왜 둘째 형이 양치질을 안 했는데 자기가 먼저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서 둘째 아들에게 그동안 먹는 것을 두 번째로 주었는데, 이제는 세 번째로 주겠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둘째가 발끈했다. '아니 그런 법이 어딨어요?'
둘째 아들의 모습에서 인간이란 존재의 어떠함을 목격한다. 우리 인간은 모순 덩어리다. 그러면서도 그 모순을 인지하지 못한다. 권리는 그렇게 따박따박 요구하고 챙겨 먹으면서, 책임은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하는 건 애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애들은 티 나게, 어른들은 교묘하게 하는 것만 다를 뿐이다. 권리는 당연하게, 책임은 의아하게 여기는 모습을, 누군가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불의는 그렇게도 잘 참으면서, 불이익은 조금도 못 참는다!
하나님께서 세 아들을 허락하신 게, 때론 세 종류의 거울을 허락하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세 아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비친다.
*우리 집에는 세 아들, "멋진 죄인, 예쁜 죄인, 귀여운 죄인"이 살고 있다. 어느 날은 '수식어'에 방점이 찍히고, 어느 날은 '죄인'에 방점이 찍히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