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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Sep 08. 2021

《때론 그냥 남겨 두는 것도 믿음이다 》

억지로 안 풀어도 괜찮아!

우리나라 학생들이 각종 국제대회에서 입상했다는 소식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종류의 시험을 치르면서 평가와 비교 가운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선생님도 늘 입버릇처럼 정답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반드시 그 정답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사고에도 삶에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만나면 반드시 풀어야 하고 그래서 기필코 정답까지 찾아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관념생긴 듯하다.


학교의 시험 문제에는 속 시원하게 딱 떨어지는 정답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에는 딱 떨어지는 정답은 고사하고, 처음부터 풀 엄두조차 나지 않는 문제들이 태반이다. 남의 문제는 늘 쉽게 풀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나의 문제는 늘 난제처럼 보이는 함정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누구에게나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문제를 붙들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정답을 찾아내려는 근성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근성과 더불어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문제 그대로 남겨두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성경을 부지런히 묵상하고 연구하는 자세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일평생 추구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해되지 않는 교리나 성경의 기적에만 매달리면, 믿음의 진보는커녕 거기에 함몰되기 쉽다. (이때 오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는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다 알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령의 조명 속에서 하나씩 깨달아 가면서 믿고 있을 뿐이다.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진짜 문제다.

이 말에는 문제를 문제로만 바라보지 말고 기회로 바라보라는 당부가 담겨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이렇게 생각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문제를 문제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다.


리허설 없이 날마다 생방으로 살아야 하는 인생이기에, 우리에게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도 많고 답을 찾을 수조차 없는 난제들도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믿음이나 기도로 끝까지 매달리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편향된 생각은 문제를 풀지 못함을 믿음이 부족한 데서 그 원인을 찾게 만든다.  나아가 '아직 믿음이 부족해서 그래. 아직 기도가 부족해서 그래.'라는 말로, 가뜩이나 풀리지 않는 문제로 씨름하는 사람을 정죄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당장 풀 수 없는 문제는 그대로 남겨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생사를 좌우할 만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그대로 품고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것도 대단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때론 그런 결단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서 나가떨어지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의사들은 우리 몸에 혹이 있다고 해서 다 제거해야 한다고 권하지 않는다. 악성이 아닌 이상, 혹 중에는 평생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괜히 건드렸다가 도리어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 이유다. 사도 바울도 육체의 가시를 제거하려고 기도로 몸부림쳤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가시를 네 몸에 그대로 가지고 살라!'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대답은 우리가 기대했던 정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속 시원한 대답도 아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그대로 끌어안고 살겠노라고 반응한다. 문제를 잘 푸는 것도 실력이고 능력인 건 맞다. 그러나 때로는 풀 수 없는 문제도 있고 그래서 그대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때가 있다. 이 땅에 살면서 찾아오는 수많은 종류의 문제들을 다 풀려고 달려들다가는 제 명에 살지 못한다. 문제에 말려서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에 일일이 다 대답을 해 주지 않으신다. 왜 문제가 찾아오는지 그리고 그 해법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알려 주지도 않으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니라 풀어야 하는 문제와 그대로 남겨두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분별력이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정답보다 이런 분별력이 없어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들만 믿음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들도 믿음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수긍하고 수용하는 데도 상당한 믿음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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