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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Nov 29. 2021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

십 년이면 강산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그말도 옛말이 되었다. 지금은 십 년이 아니라 2~3년만 지나도 딴 세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변화가 빛의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제일 큰 피해자는 윗세대의 사람들이다. 십 년이면 강산 변하는 시절에는 연장자의 권위가 존중받다. 그들이 겪은 삶의 경험지혜라는 측면에서 우대받았다. 사회 분위기에서는 연장자가 말하면 일좋든 싫든 귀담아듣는 게 예의였고 미덕이었다.


그러나 변화의 주기 간격이 촘촘해진 지금은 연장자의 경험은 지혜가 아닌 구닥다리로 취급고 있다.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무색하게 하는 지식과 정보는 이미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젊은 세대는 검색만 하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연장자의 조언 귀담아들어야 할 득력도 많이 약화되었다. 과거의 지혜나 경험도 더이상 오늘의 지혜나 경험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꼰대와 라떼는 말이야'는 말도, 세상이 이렇게 변한 줄 모르고 여전히 자신의 경험을 절대치로 환산해서 충고하려는 사람들, 급변한 세상의 흐름 읽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생겨났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이를 초월해서 누구나 잠재적 꼰대가 될 수 있다는 이다. (사실 돌직구를 잘 날리는 젊은 꼰대가 더 무섭다.)


어른과 꼰대로 분류하는 기준 신뢰 관계 달려있다.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는데 '이래라저래라'는 식으로 말하면, 조언의 내용이나 질을 떠나 꼰대 내몰릴 수 있다. 평소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건네는 어른이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그래서 나란 사람을 잘 모르면,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가지고 얘기게 된다.  알지도 못하 혹은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내뱉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한다.


이제 사람들은 실력이나 인지도가 아닌 내가 마음속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냐를 기준으로 말 받아들일지 아니면 뱉어버릴지를 결정한다. 렇기 때문에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니까 내 말을 잘 듣겠지? 내가 이 방면에서 경험이 많으니까 나를 잘 따르겠지?'라는 태도로 접근하면 경계 대상 1호나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말을 내려보내는 건 당연하게 생각한다. 노인이 청년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충고하고 조언하는  당연한 권리이자 마땅한 도리라고 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강한 사람수록,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내는 말을 아들이지 자신이 가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다. 태도는 '내가 그냥 말을 말아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야!'라는 자부심귀는 작게 만들고 입은 크게 만든다. (자주 사용하는 부분이 더 발달하건 당연한 이치) 신뢰 관계가 바탕이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구구절절 옳은 말도 낱 잔소리처럼 들린다. 전문가는 전문성이 부족해서 넘어지거나 실패하는 것보다, 전문성을 과신하고 그래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신호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실패다. 


우리는 신뢰의 정도에 따라 나에게 다가올 수 있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조절한다. 그래서 관계 형성이 안 돼 있는 사람이 갑자기 훅하고 들어오면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다. 신뢰 속에서 하면 조언처럼 들리는 말도, 권위를 주장하면서 하면 잔소리처럼 들린다. 조언과 충고를 하고 싶다면, 대화의 기술부터 익힐 게 아니라 먼저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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