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그말도 옛말이 되었다. 지금은 십 년이 아니라 2~3년만 지나도 딴 세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변화가 빛의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제일 큰 피해자는 윗세대의 사람들이다.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절에는 연장자의 권위가 존중받았다.그들이 겪은 삶의 경험도 지혜라는 측면에서 우대를 받았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는연장자가 말하면 일단 좋든 싫든 귀담아듣는 게 예의였고 미덕이었다.
그러나 변화의 주기와 간격이 촘촘해진 지금은 연장자의 경험은 지혜가 아닌 구닥다리로 취급받고 있다.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무색하게 하는 지식과 정보는 이미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젊은 세대는 검색만 하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연장자의 조언을 귀담아들어야 할설득력도 많이 약화되었다.과거의 지혜나 경험도 더이상 오늘의 지혜나 경험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꼰대와 라떼는 말이야'는 말도, 세상이 이렇게 변한 줄 모르고 여전히 자신의 경험을 절대치로 환산해서 충고하려는 사람들, 급변한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생겨났다.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이를 초월해서 누구나 잠재적 꼰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사실 돌직구를 잘 날리는 젊은 꼰대가 더 무섭다.)
어른과 꼰대로 분류하는 기준은신뢰관계에 달려있다.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는데 '이래라저래라'는 식으로 말하면,조언의 내용이나 질을 떠나 꼰대로 내몰릴 수 있다. 반면 평소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건네는 말은 어른이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그래서 나란 사람을 잘 모르면,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가지고 얘기하게 된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거나 혹은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내뱉는 말이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한다.
이제 사람들은 실력이나 인지도가 아닌 내가 마음속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냐를 기준으로 말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뱉어버릴지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니까 내 말을 잘 듣겠지? 내가 이 방면에서 경험이 많으니까 나를 잘 따르겠지?'라는 태도로 접근하면 경계 대상 1호나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말을 내려보내는 건 당연하게 생각한다. 노인이 청년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충고하고 조언하는 걸 당연한 권리이자 마땅한 도리라고여긴다.그런데 이런 생각이 강한 사람일수록,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내는 말을받아들이지못하고 자신이 가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이런 태도는'내가 그냥 말을 말아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야!'라는 자부심은 귀는 작게 만들고 입은 크게 만든다. (자주 사용하는 부분이 더 발달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신뢰관계가 바탕이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구구절절 옳은 말도 한낱 잔소리처럼 들린다.전문가는 전문성이 부족해서 넘어지거나 실패하는 것보다, 전문성을 과신하고 그래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신호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우리는 신뢰의 정도에 따라 나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조절한다. 그래서 관계 형성이 안 돼 있는 사람이 갑자기 훅하고 들어오면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다.신뢰 속에서 하면 조언처럼 들리는 말도, 권위를 주장하면서 하면 잔소리처럼 들린다.조언과 충고를 하고 싶다면, 대화의 기술부터 익힐 게 아니라 먼저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