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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Nov 23. 2021

《셀프 학대 말고 셀프 포옹》

나를 어루만져 주는 일

벌겋게 달아오른 쇠가 한번 식으면 더 차갑게 굳는 법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던 사람이 한번 꺾이면 누구보다 냉랭한 사람이 되기 쉽고,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사람이 한번 식으면 누구보다 냉소적인 사람이 되기 다. 슬럼프는 최고 정점을 찍은 후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기에, 대충 적당히 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슬럼프도 보는 눈이 있어서 낮과 밤으로 열심을 내던 사람에게 찾아온다.


그리스도인이 겪는 슬럼프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헌신했던 사람일수록 더 깊은 침체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슬럼프는 주님께 '한 열심'한다는 사람에게 자주 나타나는데, 이와 발을 맞춰 우리의 영혼에 어두운 밤 짙게 깔린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계시기는 한 것일까?' 하는 의심과 함께 신앙생활 회의까지 밀려온다. 가장 외롭고 쓸쓸 때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어느 때보다 자신을 돌보며 다독여야 하건만, 자신을 격려하기보다 '자정후비(자책, 정죄, 후회, 비난)' 등으로 셀프 학대를 일삼는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기나 하겠어? 전부 쏟아부었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잖아!' 혹은 '네가 하는 게 그렇지 뭐,  너는 밥 먹을 자격도 없어!' 이런 생각으로 몇 날 며칠을 '자정후비'반복하면서 자신을 못살게 구는 것이다.  


더 최악인 것은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우리 주변으로 욥의 세 친구 같은 사람들까지 몰려들어서 괴롭힌다는 것이다. 소위 믿음이 좋는 사람들이 내놓는 처방전은 하나같이 똑같다. '당신이 지금 이렇게 된 것은 말씀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더 열심히 말씀을 읽고, 더 열심히 기도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요.' 이런 류의 말들은 마치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에게 '당신이 이렇게 된 것은 말씀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얼마나 모질고 잔인한 모습인가?


이런 말을 여러 사람에게 듣다 보면, '내가 말씀을 더 많이 읽지 않고, 기도를 더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더 정죄하게 된다. 왜 이때가 제일 힘냐면 다른 사람들의 정죄성 충고를 듣는 것도 견디기 힘든데, 나조차 나를 비난하고 정죄하는데 열심을 내기 때문이다. 밖에서 안에서 정죄와 비난을 일삼으니, 회복은 고사하고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일 벌어진다. 다른 사람은 그렇다고 해도, 내가 나를 향해서 비난하고 학대하면 누구도 견딜 재간이 없다. 아무리 말씀과 기도가 궁극적인 처방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어루만져 주는 일이 절실한 사람도 있다. 영적으로 탈진한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이것을 건너뛰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상처에 소금을 치는 일이다.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도 한때 깊은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때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원인을 분석해 주는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뭐 하고 있느냐!'하고 호통을 치는 일도 아니었다. 천사를 통해 가만히 '어루만져(왕상19:5,7) 주시는 일이었다. '어루만지다'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참 따뜻하게 다가온다. 몸과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엘리야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까?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해 본 사람은 안다. 어루만지는 일이 단순히 몸을 만지는 행위가 아니라 몸과 마음과 감정까지 전부 쓰다듬는 일이라는 걸.


전에 영적 탈진 증세가 막 시작될 뻔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새벽기도 시간에 기도하는데, 마침 하나님께서 천사의 손길을 통해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시는 장면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분께서 나를 안아주신다는 믿음으로, 모으고 있던 두 손을 풀어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이어서 팔과 허벅지를 쓰다듬으면서 기도를 이어나갔다. 그러자 냉기가 가득했던 온몸에 조금씩 온기가 면서, 얼어붙었던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날 새벽, 하나님께서 나를 어루만져 주심을 경험하면서 큰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동물들 상처 입은 곳을 혀로 으면서 회복하는 시간을 보다고 한다. 우리 역시 적 탈진 증세로 괴롭고 힘들 때면, 두 손으로 나를 쓰다듬거나 어루만지면서 기도할 필요가 있다. 셀프 학대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만 더 키울 뿐이다. 영적 침체에 빠졌다면, 이제는 그분께서 나를 안아주시고 어루만져 주신다는 믿음으로 셀프 포옹을 하면서 기도해 보면 어떨까? 제법 따뜻하고 제법 힘이 된다.

(펜글씨: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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