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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Jan 12. 2022

<경청, 귀의 기울기가 아니라 마음의 기울기>

1.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새 학기가 시작된 어느 봄이었다. 상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우연히 캠퍼스에서 문제의 그분을 만났다. 평소 몇 번 인사만 주고받았을 뿐이었는데, 그날따라 할 말이 있다 시간을 내 달라고 했다. 30분 정도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것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의 실수였다. 30분이 아니라 무려 1시간 반 동안 그분에게 두서없이 많은 양의 말을 들어야 했다.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건, 자기 말을 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가끔 답변이라도 할라치면 금세 말 허리를 잘라 자기 얘기로 연결했다. 헤어질 때 그는 오늘 대화를 나눠서 정말 좋았다고 했다. 그러나 내게는 숨 막혀 질식할 뻔한 시간이었다. 그 후로 가끔 그를 멀리서 보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먼 길을 돌아갔다.


사람 중에는 벽처럼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 말을 주고받지만, 다시 튕겨 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랄까? 이런 사람을 만나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갑갑하고 답답하다. 튕겨 나온 말은 곱게 자기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주인의 가슴에 박혀서 통증을 일으킨다. 그때 마음의 문도 닫힌다. 물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면, 어느 정도 고이다가 옆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소통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말을 주고받아도 이미 '답은 정해져 있으니 대답만 해'인 사람을 보면, 말문이 턱 하고 막힌다. 말해봤자 안 통하는 사람에게는 그냥 말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말문이 막히면 말길도 막히고 마음 문도 닫히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2.

'겸손은 머리의 각도가 아니라 마음의 각도다' 경희대 이동규 교수님의 두 줄 칼럼 '겸손'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곱씹다가, 겸손 대신 경청을 넣고 곱씹어 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문장이 나왔다. '경청은 귀의 기울기가 아니라 마음의 기울기다' 우리는 겸손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겸손한 척할 수 있는 능력자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머리의 각도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그래서 겸손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겸손한 척할 수 있다.


겸손이 머리가 아닌 마음의 각도 문제라면, 경청도 귀의 기울기가 아닌 마음의 기울기 문제가 아닐까 싶다. 경청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지만, 실제로 귀만 기울여 듣는 척할 뿐 마음까지 기울여서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겸손하지 않고도 겸손할 수 있고, 듣지 않고도 들을 수 있다는 건 생각할수록 엄청난 능력이지 싶다.


3.

솔로몬은 지혜롭게도 듣는 마음을 구했다. 그가 듣고자 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먼저는 위에 계신 진짜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었고, 다음으로는 좌우 신하들과 아래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었다. 그는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실패하면 그에게 맡긴 백성들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이방 여인과 그들이 수입한 우상에게 기울이자, 그에게 맡기신 나라도 기울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성전에서 위에 계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척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기울어 있었다. 듣는 마음이 닫히자 번뜩이던 그의 지혜도 닫혀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청종한다고 자부하는 사람 가운데 의외로 벽 같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벽 같은 사람은 알고 보면 하나님 앞에서도 벽 같은 사람일 확률이 99.999% 일 가능성이 크다. 솔로몬의 듣는 마음이 위와 좌우와 아래로 전부 연결된 것을 고려해 본다면 말이다. 예수님은 똑같이 말씀을 들어도 '들을 귀' 있는 사람이 듣는다고 뼈 있는 말씀을 하셨다. 어떤 사람이 들을 귀를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이 듣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하나님께 마음이 기울어있는 사람이 들어도 더 잘 듣는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꽉 막힌 벽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마음이 어디에 기울어있는가부터 살펴볼 일이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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