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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Jul 29. 2022

나를 위해 싸워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갑자기 가슴이 웅장해진다

하나님의 손보다 내 주먹이 더 가깝다고?

힘도 인맥도 없는 사람은 당하면서 살기 쉽다. 구약에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그런 사람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보호할 힘도 없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사람은 무시와 갑질의 대상이 된다. 괜히 이 세상을 정글에 비유하는 게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의 손보다 내 주먹이 더 가깝다고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걸 보면, 하나님의 침묵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다. 만약 하소연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하고 분한데, 누군가 '넌 빠져있어! 내가 해결할게'라고 말해준다면? 일상에 구원이 임하는 순간일 것이다. 나는 일찍이 동네 놀이터에서 일상에 구원이 임하는 걸 경험했다. 어릴 때 누구에게 맞고 다닌 적은 없었지만, 한번은 동네에서 꽤 거친 녀석에게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가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그날도 친구 서너 명과 동네 놀이터에서 미니 야구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투수가 되어 던지면 한 사람은 타자가 되어 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주먹깨나 쓴다는 녀석이 불쑥 나타나서는 자기도 껴 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급기야 곧바로 투수로 공을 던지겠다며 공까지 가로챘다. 동네 아이들이 구경하고 있다는 걸 의식했던지, 녀석은 연신 연습구를 던지면서 힘을 과시했다. 내가 봐도 공이 빨랐다!


어디서 우리 동생을!

나도 동네에서 야구라면 밀리지 않았다. 나름 공을 잘 던졌고 나름 공을 잘 쳤다. 녀석이 또래에서는 볼 수 없는 공을 뿌려대며 으스댈 때, 나는 매의 눈으로 공의 스피드와 높낮이를 관찰했다. 공이 빠르긴 했지만, 속에서 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동네 야구에서는 오직 직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무리 공이 빨라도 배트만 제때 휘두르면 승산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콧대 높은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연습 투구를 마친 녀석은 나를 보고 타석에 들어와 치라고 손짓했다. '땅! 와~! 홈런이다!' 나는 몇 번째 공인지는 모르지만,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보란 듯이 놀이터 밖으로 날려버렸다. 아직도 그 장면이 눈만 감으면 생생하다. 녀석의 공이 빨랐던 만큼 반발력도 컸던지, 생각했던 것보다 멀리 날아갔다. 놀이터 밖으로 날려 보냈기 때문에 장외 홈런이었다. 여기저기서 몰려든 아이들이 '우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영웅은 난세에 난다고 했던가? 녀석은 홈런을 얻어맞고 창피했는지 행패를 부렸다. 동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욕으로 힘으로 나를 윽박지르며 괴롭혔다. 억울하고 분해서 씩씩거리며 집에 들어왔다. 집에 있던 두 살 위의 형이 '왜 그래? 누가 때렸어?'라고 묻길래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이 XX가! 어디서 우리 동생을!' 형은 말릴 새도 없이 놀이터로 달려 나갔다. 형의 뒷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늘 내 라면에 젓가락만 얹는 악당인 줄 알았는데, 그날은 진짜 친형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너희는 빠져있어! 내가 해결할게!

피를 나눈 가족은 싸울 능력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는다. 일단 가족을 건드린 사람에게 달려들고 본다. 결과는 그다음에 생각할 문제다. 가족이 그렇다. "누가 우리 아들, 우리 딸 건드렸어? 너야?" 정글 같은 세상에서, 나를 위해 싸워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위로를 넘어 가슴을 웅장하게 만든다. 간혹 정치 경제학적 역학관계를 따져서 싸우는 용병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더 이상 얻어낼 것이 없다고 판단이 되거나 손해가 예상되면, 미련 없이 손을 탈탈 털고 돌아서 버린다. 하지만 가족은 끝까지 남아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역시 피와 돈으로 맺어진 관계는 질적으로 다르다. 가족은 내게 뭘 얻어낼 게 있어서 대신 싸워 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냥 아들이고 딸이기 때문에, 그냥 형 동생 언니 오빠이기 때문에, 그냥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싸움에 참전한다. 가족에게 '그냥'이라는 말은 '그냥'이 아니다. 거기에는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많은 사연과 감정이 농축돼 있다.


갑자기 마음이 든든해지는 일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앞에 두고 궁지에 몰린다. 뒤쫓아 오는 애굽의 정예 군대와 정면승부를 벌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하늘 아버지께서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이 출애굽기 14장 14절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쉽게 표현하자면 이런 말이다. "너희는 빠져있어! 내가 해결할게!"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께서 대신 애굽의 정예 군대와 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너희는 빠져있어! 내가 해결할게!' 이 말은 보통 사이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셨고 그들을 자녀 삼으셨다.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를 위해 싸워 준다는 건, 그만큼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돌아보면 하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많이 싸워 주셨다. 감사하다. 갑자기 헛헛한 마음이 든든해지고 없던 힘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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