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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Sep 19. 2022

쓸데없이 피곤하게 사는 것도 가지가지다!

'너 앞으로 쟤랑 얘기하지 마! 알았어?'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하기까지, 어느 외국계 회사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할 때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부서 구석에 있는 서류 창고에서 문서를 분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게 일감을 주는 누나가 들어와서 다짜고짜 부당한 요구를 했다. 우리 부서는 오다가다 마주치면, 환한 미소로 서로 고생이 많다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었다. 대부분이 슬기로운 회사 생활을 위한 자본주의 멘트와 미소였다. 그때는 지금의 카톡처럼 메신저로 소통하던 시절이었다. 겉으로는 모두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면서 메신저로 뒷담화하고 있었다.

그날은 나와 동갑내기였던 한 여직원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직장 내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 같았다. 이제 나만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 그 여직원을 완벽하게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누나의 얼굴은 '거부하면 너도 그렇게 될 줄 알아!'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분명 ' No'라고 하면 가시밭길이 예상되었지만 그렇다고 부당한 일에 가담할 순 없어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결국 나는 자기 편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동안 시달리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어디를 가나 편 가르기를 좋아하고 주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 편이 되면 혜택을 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으면 쓴맛을 볼 거라고 말한다. 마음이 맞아서 한 편이 되는 거라면 모를까, 나를 따르지 않으면 '국물도 없어!'라고 하는 건 서로 피곤해지는 일이다. 매사에 아군과 적군으로 잘 나누는 사람은 주로 힘 있는 사람이거나 그 측근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유력한 사람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 좋아한다. '나 OO와 친해. 그분과 나는 특별한 사이야!' 이 말에는, '나에게 밉보이면 앞으로 피곤할 거야!'라는 뼈가 들어있다. 우리는 내 편인지 네 편인지 확인하는 일에는 쓸데없이 부지런하면서도, 정작 주님 편에 서서 살아가는가를 확인하는 데는 한없이 게으르다. 쓸데없는 일로, 쓸데없이 피곤하게 사는 것도 가지가지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께서 따로 데리고 다닐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이는 장차 더 큰 사명을 맡기기 위한 특별 훈련 차원이었을 뿐, 특별 대우 차원은 아니었다. 하루는 3인방 가운데 요한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금한 일이 있었다. 중요한 건, 예수님이 아닌 '우리를 따르지 않아서(눅9:38)' 금했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 예수님과 각별한 우리 3인방 정도는 돼야,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금을 긋고 관계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를 금하셨다. 그분에 대한 관계 독점이,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득이 되기는커녕 독이 되리란 걸 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따를 수 있다는 건 특권이다. 더 많이, 더 크게 헌신할 특권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환상을 봤다거나 특출난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님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에게 특별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특별한 대우를 받는 거로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특별한 대접을 요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믿음을 잘 지키려면 이런 사람부터 잘 걸러야 한다. 빈 깡통에서 나는 소리가 더 요란한 것처럼,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은 없는 사람이 더 소란스러운 법이니까. 솔직히 전에는 소위 능력 많은 목회자로 크게 쓰임 받고 싶었다. 이왕이면 존재감을 마음껏 뿜어내며 사역하고 싶었다. 하지만 능력 많은 목회자가 문제를 일으켜도 더 많이 일으키고 넘어져도 더 크게 넘어지는 걸 보면서, 지금은 크기보다 알맞게 쓰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게 편 가르기를 하면서 트러블 메이커로 사는 것보다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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