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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Dec 06. 2022

 《흔들려도, 다시, 오늘》

오늘, 흔들리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일상 리부트

<책소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걱정 근심이 사라지고, 확신과 담대함 속에서 사는 건 아니다. 그래서일까? 그리스도인도 마음속 어딘가를 두드려 보면, 왠지 모르게 슬프고 아픈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오늘을 살아야 한다. 이 말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도, 세상 사람들처럼 두렵고 떨리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이 책에는 내가 우여곡절 끝에 예수님을 믿고 목회자로 살기까지 그동안 흔들렸던 많은 순간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다시보기' 했던 순간들이, 어느새 내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있었다...


<목차>

들어가는말・12


1 믿음이 흔들리는 그리스도인에게 ・ 15


다행인 줄 아세요・17

어른이 된다는 건・22

하나님 사전에 없는 것・26

실망이 꼭 불신은 아니다・30

그만 재고, 그냥 해・36

다시 일어나는 힘・41

내 마음이 광야 같을 때・46

알았다면 그렇게 기도했겠나? ・ 50

어슬렁거리는 진짜 이유・56

그냥 남겨두는 것도 믿음이다・60

운명은 한끗 차이・64


2 관계가 흔들리는 그리스도인에게 ・ 69


감정 쓰레기 배출 방법・71

MBTI 가라사대・76

작은 그늘이라도 괜찮아・81

경청은 마음 기울이기・86

지금은 공사 중입니다만・90

나를 위해 싸워 준다는 것・94

헤아려 주는 일・100

왜 우리는 칭찬에 인색할까? ・ 105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110

뒤통수 콤플렉스・115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119


3 마음이 흔들리는 그리스도인에게 ・ 125


엉뚱하고도 기발한 방식 ・ 127

이대로 살 자신이 없었다・131

기꺼이 내어 준 어깨 덕분에・137


유혹 앞에선 비굴해도 괜찮아 ・ 143

쪽팔릴 줄 알아야 그리스도인이다 ・ 149

두려움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154

신앙에 천재는 없다 ・ 158

그래도 마이쮸는 먹고 싶어・163

사랑은 한 수 접어주는 일・168


4 일상이 흔들리는 그리스도인에게 ・ 173


실은 하나님께로 향한 길이었다 ・ 175

기억 보관소・180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영역・186

힘겨운 시절은 책갈피처럼 ・ 191

배려의 농도 ・ 196

고인 물 조심・200


보통의 평범한 그리스도인 ・ 205


5 사명이 흔들리는 그리스도인에게 ・ 209


셀프 학대는 그만・211


등짝 스매싱은 사랑이라 ・ 215

알고 보니 진짜 탕자・220


일에 삼켜지지 않으려면 ・ 224

잘 아는 사이, 그냥 아는 사이・228

복기하기에 좋은 날・233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237


<본문 속으로>

거창한 일만 기적이 되는 건 아니다. 압도적이어야 기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에 눈뜨는 것도 기적이다.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그곳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때, 믿음은 비로소 단단해진다. (20-21)


믿음이 실망과 절망이라는 터에서 좀 더 단단하게 빚어진다는 걸 우리는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32)


승리는 이미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된 일이므로 우리는 다만 일어나 경주에 임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믿음은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힘, 곧 재기력이라고 생각한다. 무너졌다면, 쓰러졌다면, 딱 그만큼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면 된다. 믿음은 우리를 마냥 쓰러져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44-45)


광야는 휴대폰 신호가 잘 터지지 않는 대신에 영적 주파수가 잘 터지는 곳이다. 광야는 물리적인 장소이기 전에 마음의 상태다. 예수님은 이것을 ‘가난한 심령’이라고 표현하셨다. (49)


하나님을 사랑으로, 은혜로, 공의로 정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정의 안에 하나님을 전부 담을 순 없다. 겨우 일부만 담을 뿐이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건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 생활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낯선 세계를 만날 때 인식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처럼, 낯선 하나님을 만날 때 믿음의 지경도 한층 더 확장된다. (79)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날 때 진짜 필요한 건 군데군데 드리워진 작은 그늘이다. 그 작음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이고 위로이고 격려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세상은 커다란 그늘을 만든 사람들을 주목하고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에게 오랫동안 고마운 존재로 기억되는 사람은 따로 있다. 내가 힘들 때 작은 그늘을 마련해 준 사람을 우리는 더 고마운 존재로 기억한다. 어쩌면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일지도 모른다. (85)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의외로 벽 같은 이들이 많다. 경험상 다른 사람에게 벽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도 벽 같은 사람일 확률은 99.999퍼센트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잘 들을 수 있을까? (89)


우리는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데도 서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그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정죄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칭찬하는 데는 미숙하다... 때로는 자신의 수고를 하나님 앞에 꺼내 놓고 “하나님, 저 잘했죠?”라고 자랑해도 괜찮다. 느헤미야도 자신의 수고와 헌신을 다른 사람은 몰라 줘도 하나님만은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다. (107-108)


다윗은 부모님과 형제들 사이에서 존재감 없는 아들이었다. 누구도 양치기 다윗이 물맷돌을 던지는 걸 보면서 칭찬하지 않았다. 그걸 실력이나 능력으로 봐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다윗은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불평하지 않고, 있는 것을 갈고닦았다. 그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 물맷돌이 훗날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필살기가 될 줄은 말이다. (135)


오늘도 평범한 일상에서 찾고 발견한 것들이 적지 않다. 시간에 풍화되기 전에 수시로 나만의 기억 보관소에 보내기를 반복한다. 이것이 적어야 사는 ‘적자’ 생존의 시대에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185)


종종 나 혼자 배려하고 나서, 나 혼자 서운해질 때가 있다. 배려를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의 일방적인 ‘다짜고짜, 무턱대고’ 식의 배려 때문이기도 했다. 헤아림이 빠진 배려가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는 걸 잊은 탓이다. 한쪽은 배려한다고 했는데 상대가 몰라줘서 서운하고, 다른 한쪽은 불필요한 배려 때문에 당혹스러울 때가 얼마나 많은지. (199)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1) 목회하면서 흔들리는 목회자들

2) 입시로 흔들리는 학생들

3) 취업으로 흔들리는 청년들

4) 코로나로 신앙이 주춤한 분들

5)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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