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결핍과 좌절을 경험해야 한다. 결핍되고 상실한 것을 스스로 찾아 메우려는 노력이 바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김혜남-
비교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이런 세상에서 족한 줄 알고 사는 사람을 보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다. 아무래도 능력이 없거나 세상 물정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더 벌어야 해, 더 움켜쥐어야 해, 더 쌓아놔야 해.” 아무리 이런 말로 마음을 흔들어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족하면서 산다면, 그건 어리석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박수라도 보내 주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부족함과 아쉬움을 느끼는 걸 항상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부족함과 아쉬움이 불만과 불평에만 불을 지피는 건 아닌 듯하다. 때로는 의욕과 열정에 기름을 붓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느 뛰어난 작가는 자기 글에 늘 부족함을 느낀다고 했다. 또 어느 피아니스트는 자기 연주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 최고라고 손꼽히는 실력자들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을 보니, 그냥 겸손을 떨려고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하나같이 모자람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자람을 느끼는 것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조금 다른 얘기다. 모자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좀 더 분발하게 한다. 이들에게 아쉬움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좀 더 성장하고 싶은 자극제로 작용한다. 그래서 대가일수록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더 어렵다고 입을 모으는 건지도 모르겠다. 반면 못마땅함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만, 그런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이게 심하면, 자신을 경멸하거나 학대하는 일로 나타난다.
자신을 못살게 굴지 않은 이상, 더러는 부족함과 아쉬움을 느낄 필요도 있다. 우리는 나의 부족함에 눈뜰 때 분발하고, 아쉬움을 느낄 때라야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결핍 하나 없는 사람도 없고, 좌절 한번 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 전에는 이런 것들이, 내 삶에 불필요한 웅덩이라고만 생각했다. 할 수만 있으면 제거하거나 메우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도를 멈췄다. 그중에 내가 미처 몰랐던 도약판도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단계 더 성장하도록 발판과 자극제가 되어 준 것이다. 모자람을 아는 사람이 자라감의 기쁨도 누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부족함과 아쉬움’, ‘결핍과 좌절’을 일방적으로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